0.
만약의 생1
창밖으로 검은 재가 흩날렸다 달에 대하여
경적 소리가 달을 때리고 있었다
그림자에 대하여
어느 정오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다 왜 다음
생에 입을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냐고
그림자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개켜 넣을 수납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어김없는 자정에는 발가벗고 뛰어다녔다
불을 끄고 누웠다
그리움에도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밤
신은 지옥에서 가장 잘 보인다
지옥의 거울이 가장 맑다
1.
오랜만에 리뷰를 씁니다.
재미있다, 재미없다는 감상도 낯 뜨거워지는 찬사도 괜찮다고 하셨으니 영이가 좋았다 세연이가 좋았다, 다시 영이가 좋았다 결국엔 세연이가 좋았다로 끝나는 감상을 남겨보도록 할게요.
시는 아마도 영이가 꿨을 법한 악몽이 아닐까, 작지도 않은 몸을 웅크린 채로 지쳐 잠들었을 때 꾸던 꿈에는 더 이상 웃는 얼굴의 가족들도 아닌 시리고 맑은 지옥만이 남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습니다.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불행은 얼마나 사람을 바닥으로 내모는지. 게다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인 영이가 느꼈던 상실감과 무력감은 상상할 수조차 없네요. ‘싸우기 전의 두근거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두려운 감정에 따라오는 설렘’ 이런 것만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으니까.
등굣길에 마주친 어쩌면 동급생일 수도 있는 시체를 보고 전혀 아무 감정이 들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영이의 감정상태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물론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세연이도 마찬가지고요.
놀라거나 무섭거나 슬프거나 겁에 질리거나 했어야 할 평범한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는 남녀 주인공은 고작 “니가 죽인거야?”라는 질문으로 모든 감정을 퉁쳐버립니다. 그 상황에 ‘누가’ 그러했는가를 궁금해하다니..
등장부터 싸움질에 부모를 죽인 패륜아 타이틀을 달고 나온 영이와 다르게 예쁘고 똑똑하다는 세연이에게도 어떤 과거가 있을지 불쑥 반항심같은 호기심이 따라오네요. 동호회라는 이름을 설명하면서 미묘하게 신이 나 있는 부분이라던지, 내가 만약 선생이라면 하는 가정에서 눈이 반짝인다던지. 세연이에게 죽음이나 권력이 대체 어떤 의미인건지 말이죠.
세연이에 대해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눈에 띄는 미심쩍은 부분들이 보여요.
가령 21화에서는 관리자가 시간을 벌어주고 세연이가 뉴스에 자막을 넣는 식으로 영이와 대화를 시도하죠. 그리고 풀어야 할 암호는 “인생 최악의 날은 언제?”라는 힌트를 달고 있고요.
영이에게 인생 최악의 날은 당연히 불이 난 그 날이겠지만 꼭 이거여야 했을까요? 생일로 해도 되잖아요. 세연이가 영이 생일 알아내는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독자는 알고 있지만 세연이가 영이의 최악의 날이 언제인지를 어떻게 알았을까요? 확실히 의심스러운 부분이긴 한데 그 동안 쌓아온 신뢰(?)로 의심을 약화시키고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의심이 나중에 사실인 걸 알게 됐을 때는 약간 억울하기도 했어요. ‘어떻게 알았지??’ 라고 질문해놓고, 영이가 내내 그러하듯 ‘세연이가 모르는게 더 이상하지.’하며 납득하게 된달까요. 의심이 들려고 할 때마다 ‘세연이라면 가능하지.’하며 합리화했던 것들이 사실은 차츰 쌓이고 쌓여서 마지막에 ‘이거였구나!’하고 희열을 줄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2.
기왕 결말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계리에서처럼 이번 장편에서도 수미상관이 보여서 안정감있고 즐거웠습니다.
“니가 죽인거야?”라던 세연이의 살벌했던 첫번째 질문보다 더 확신에 차있고 고등학생다운 풋풋함이 있는 “니가 그런거야?”라는 영이의 질문으로 상응하게 만들며 이야기를 안정감있게 만들어주셨어요.
작가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내재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특히 최근에 쓰신 단편 <내가 열지 않았어>에서도 느낀 점인데 꿀렁거리는 파도 위에 올라앉은 것 같고 산들바람을 타고 있는 그런 일정하지 않은 리듬감이 있어요. 문장의 길이 때문일까요. 단어를 신경써서 고르고 배치하시는 걸까요. 예를 들어 세연이에게 잘 붙는 묘하다는 표현이라던가요. 조금씩 변형되는 단어의 나열로 인해 느껴지는 걸까요.
어쨌건 영이가 바이크를 타고 달려나갈 때의 속도감과는 다른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피고름냄새가 강해졌다, 약해졌다하며 글을 읽는 내내 따라다니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걸 보시면 더 확실하게 느낄 수도 있을거예요. 이 단편은 내재율 뿐만 아니라 외형률도 어느정도 갖춘 장편시 같았어요.
3.
이계리 리뷰에서도 언급했던 공간을 다시 한번 끌고 와야겠네요.
공간에 대한 활용도가 정말 높은 작품이라고 봐요. 학교였다, 햄버거 가게였다, 비닐하우스였다 하는 배경 말고 닫힌 공간, 열린 공간 혹은 시골과 도심이라는 공간에 대해서요.
2화에서 영이는 세연이에게 상의(라고 부르고 도움! 이라고 읽습니다.)를 하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공들여 고르죠.
그리고 교실에서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이용해 세연이를 ‘옥상’으로 부르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세연이는 ‘여기’도 괜찮다며 교실에 있길 고집하고요. 영이는 ‘부엉이 다방’에서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골목’으로 도망가고, 세연이의 ‘방’과 세연이가 보내준 ‘차’에서는 잠이 들며, 동호회 사람들에게 잡혀 눈을 뜬 곳은 ‘비닐하우스’였고요.
공통적으로 영이는 닫힌 공간에서는 제 역량을 발휘하질 못합니다. 영이의 공간은 열린 공간이에요. 누군가를 제압 할 수 있는 옥상이라던지 달릴 수 있게 쭉쭉 뻗은 도로라던지, 하다못해 도망가서 숨을 공간이 있는 골목이라던지.
반면에 세연이의 무대는 닫힌 공간이라 교실에서도 방에서도 심지어 비닐하우스 안에서도 제 역량을 발휘합니다. 비닐하우스는 선생의 무대라 생각했지만 선생은 세연이 말처럼 유령이에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네요. 특정 공간을 부여하려고 애써봐도 줄만한 공간이 없어요. 사실 필요치도 않아 보여요.
영이와 세연이를 팀으로 묶어보면 어떨까요. 학교, 깔끔한 오피스텔, 맥도날드 .. 모두가 문명화된 도시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간이죠. 아, 영이의 경우 비닐하우스에서 도망쳐나올 때는 흙바닥에서 뭔가에 찔리기도 하고, 주차장 바닥이 주는 감촉에 안도감을 느끼기도 해요. 어느 공간으로 싸움을 이끌어야 하는지 보이는 대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은 비닐 하우스 내에서 영이와 세연이를 해치워야 했을 거예요. 촌스러운 부엉이 다방이나 오디오 수리점, 비닐하우스 같은 곳은 영이와 세연이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무대가 아니거든요. 선생이 상처를 입고 도심으로 도망칠 거라고 세연이가 예상 한 그 때부터 선생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어요. “늑대는 죽었다.”는 말이 가물가물하게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줄이 끊어지면서 짓이겨지며 나온 말이라 약간 신빙성이 떨어지긴 해도요.
4.
서두에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불행은 얼마나 사람을 바닥으로 내모는지.”라고 썼어요. 이건 사실이지만, 영이와 세연이가 겪은 일도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불행이었고, 우리 주인공들은 극복을 했죠. 그 때와는 다르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까지 영이가 영이답고, 세연이가 세연이다워서 너무 좋았습니다.
죽은 아이의 용의자로 수의사(아마도 김원장)가 지목되었고, 홀로 자살한 기업체 사장의 뉴스도 흘리듯 지나가던데 여전히 둘 사이의 연결고리 없이 각각 다뤄지고 있을 걸 보니 씁쓸하기도 했고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하고 2부가 빠른 시일내에 나오길 학수고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