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시작에 대해서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로그라이크(Roguelike) (작가: 붕붕,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8년 7월, 조회 90

4살 아들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 fail 이 뜨자 좋아 하더라

그래서 fail 이 무슨 뜻인지 묻자”실패” 라고 대답하더라

그래서 실패가 무어냐고 묻자 아들이 “다시 하는 거야” 라고 했다고

-이영아 교수, 국민대 게임 교육 연구원

fail. 아마 아이가 하는 게임이니 실제로는 GAME OVER 혹은 YOU DIE 라는 뜻이었겠죠? 게임에서 목숨이 가볍게 다뤄진다는 의견이 있지만, 별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뭘 하기엔 내 목숨은 하나고 유니크 하지만 게임이라면 몇 개를 걸어도 괜찮으니까요. 진행상황은 좀 날아갈 수 있지만, 목숨이 날아가는 것에 비하면 가볍지 않나요?

그런데 게임에서는 왜 재도전이 가능한 걸까요? 게임에는 ‘명시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현실에 비해서요. 지금도 세계의 규칙을 규명하기 위해 랩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을 수많은 연구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에 비하면 게임의 규칙은 훨씬 명확하죠. 게임의 규칙들은 현실과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죠. 물리엔진을 떠올려 보세요. 현실을 따라하려 노력하지만 의도적으로, 가끔은 실수로 현실과 전혀 다른 규칙들이 적용되고 고인물, 아니 유저들은 그 규칙에 적응하고 그 규칙을 사용해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붕붕작가의 로그라이크로 돌아가 보죠. 이 소설의 도입부는 주인공이 자판기를 통해 다른 규칙들이 지배하는 세계로 빨려들어가면서 시작합니다. 물론 로그라이크라는 간판, 8비트 전자음악 등이 이것이 게임일 거라는 강력한 암시를 주는 장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이걸 이세계물이 아닌 게임판타지의 일종으로 해석하는 까닭은 이곳이 현실이 아닌 이곳만의 규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제가 파악한 이 게임의 규칙은 대략 세가지 정도인거 같습니다.

첫째, 돈을 많이 넣을수록, 더 비싼 음료와 더 강력한 시작 무기를 얻는다.

둘째, 죽으면 게임은 끝나며, 자판기가 있는 방으로 돌아온다.

셋째, 난장이는 적이며, 잡으면 두당 천원이 정산된다.

이정도면 충분할까요? 게임이라고 인식하기엔 충분하겠죠. 그렇다면 이건 게임 판타지 장르일까요? 게임 판타지의 전형적인 장면들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인공이 장비를 파밍하고, 더 강한 적을 만나고 그 적을 잡아 장비를 파밍하는 과정이요. 이 과정이 구구절절하게 묘사되기 보다는, 다 알죠 찡긋? 하고 넘어갑니다.

그러나 한 편의 게임을 대리체험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 어쩌면 겜판이라고 해도 될거 같아요.

다만, 소설의 제목이 로그라이크잖아요?

로그-라이크. 아스키 부호로 이뤄진 그래픽의 초창기 PC RPG 게임인 Rogue를 닮은 게임이라 해서 로그라이크죠.
로그라이크의 핵심은 뭘까요? 층층이 쌓인 구조? 다른 구조로 갈 때마다 랜덤하게 배치되는 각종 요소들? 시간이 지날때마다 만복도가 떨어져 결국은 다음 층으로 가야 할 것을 강제하는 시스템? 저는 영구적 죽음이야 말로 로그라이크의 핵심이라 생각해요. 로그라이크는 세이브가 없고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에요. -다음장-을 본 다음에 점수를 정산한 다음에는 제로에서 시작하죠.
이전 회차에서 계승되는 것은 게임 내적의 스테이터스나 아이템, 골드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경험 뿐이에요. 그러기에 정산이 되어서 플레이어 아닌 장비가 강해지는 모습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이게 로그라이크가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어요. 로그라이크의 핵심이 영구적 죽음이라 말했지만, 반복성 또한 로그라이크의 중요한 요소니까요.

그러나 저는 이 게임이 끝나는 조건과 재시작의 조건을 명확히 알기 힘들단 생각을 합니다. 돈을 넣으면 음료가 나오고, 초기장비를 가지고 게임을 시작합니다. 그럼 돈이 없으면요? 아마도 자판기가 그냥 잡아먹지 않을까요? 아주 간단하게 선배 게이머의 시체라도 뒀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마지막도 암시로 끝납니다. 이미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해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서 플레이어로서의 정체성을 잃었지만, 현실로 돌아갈 수 잇을까요? 재시작이라고 계속 이야기 했지만, 돈이 계속 이어지잖아요? 그렇다면 그것은 끝이 아닌거고, 그렇다면 재시작이라고 할 수 없는게 아닐까요? 이 게임은 사실 계속되고 있는 것이죠.

단순히 취향의 문제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저는 이걸 게임 판타지로 읽었어요. 수없이 난장이들을 죽이고, 엔딩으로 가는 루트를 찾은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치명적인 실수였죠. 지갑은 다시 얊아지고 바닥을 치고 천원까지 떨어지고 선배의 시체가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때 솔의 눈을 마시고 맑은 머리로 기책을 떠올려 회복하고 우연히 히든 피스를 찾고 그런 장면들. 그렇습니다. 장편을 써 달라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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