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이영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여러 특징들이 떠오른다. 독특한 문체와 서술방식, 개성 있는 캐릭터, 치밀한 서사 구성과 인지와 상식에 대한 도전 등이 그것이다. 지금까지 이영도 타자는 장편소설을 통해 이영도만이 독자에게 선물할 수 있는 즐거움을 여지없이 선사했다. 오버 더 초이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책을 펼치지 전까지 ‘이건 재미있을까?’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지만 역시는 역시다. 오버 더 초이스는 분명 재미있다.
그렇다면 오버 더 초이스의 재미는 어디서부터 출발할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가장 먼저 책을 펼치면 오버 더 초이스의 첫 문장이 여타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나는 티르 스트라이크다. 삼십여 년 전부터 티르 스트라이크 하고 있다. 당신들은 티르 스트라이크 해본 적이 없을 테니 알려주는데 요즘은 티르 스트라이크 하기 좋은 시절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깜짝 놀랄 문장이다. 하지만 이영도 타자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읽자마자 웃음이 나왔을 것이다. 자기 자신은 일반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타인을 ‘할’ 수도 없다. 그것에 대해 의심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짧은 문장 하나만으로 오버 더 초이스는 독자에게 기이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할’ 수 있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타인이 ‘나’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나는 어디까질까. 내 생각과 기억? 내 머리? 아니면 몸뚱이 전체?
이영도 타자의 소설들이 단어의 의미관계를 뒤흔들어 의미를 변화시키거나 단어의 개념적 의미를 제외한 의미변화를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다. 오버 더 초이스도 마찬가지이다. 이영도 타자 특유의 문체와 단어선택은 기존의 틀에 박힌 어휘에 지친 독자들을 시원하게 환기시켜준다.
오버 더 초이스는 기존의 시리즈와 다르게 장편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오버 더 시리즈에서 보여준 단편 소설의 행보와 크게 달라진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오버 더 초이스는 발상에 충실하고, 서사에 충실하고, 주제에 충실하다. 죽은 자의 부활이란 발상은 이영도 타자 특유의 치밀한 서술과 맞물려 몰입감을 증폭키며 소설의 주제를 구성하는데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죽음을 몰아낸 세계’라는 거대한 주제는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그 전말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캐릭터들을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는 서사적 장치들이 사건 파악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티르 스트라이크가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이러한 착실한 서사는 오버 더 초이스의 빠트릴 수 없는 재미다.
이영도 타자의 소설에는 항상 독특한 캐릭터들이 빠지지 않았다. 말투가 독특하거나, 생각이 독특하거나, 행동이 독특한 캐릭터들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오버 더 초이스의 캐릭터는 기존의 이영도 소설들과 다르게 실험적인 화법의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판타지 소설에 익숙한 독자가 느끼기에 자연스러운 캐릭터들이 오히려 이영도 소설이기 때문에 심심해 보인다.
물론 인물들의 종족이 무척 다양해 캐릭터가 단조롭다는 느낌을 주는 건 아니다. 인간, 엘프, 오크는 판타지 독자라면 어디서 한번쯤 들어본 종족이며 미노타우르스나 유니콘은 판타지와 안면이 없는 독자들도 상상할 수 있을법한 종족이다. 하지만 야채뱀파이어나 카닛, 아니제이와 같은 종족은 무척 특이하고 생소하다. 아니제이가 인간으로 변신하는 장면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비록 ‘이영도스러운 말투의’캐릭터는 등장하지 않는, 지극히 평이한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지만 캐릭터들의 매력까지 평범하지는 않다. 또 한 가지. 가이너 카쉬냅도 빠지지 않았다. 반갑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오버 더 초이스는 이전 오버 더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오버 더 시리즈와 세계관과 주제를 일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오버 더 시리즈가 취향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오버 더 초이스 역시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일 수 있다. 큰 변화 없이 이영도 타자의 느낌 그대로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장황하고 낯선 문체에 거북함을 느낄 수 있다. 변함없이 주제를 토로한 뒤 사라지는 신기루같은 결말도 그대로다.
오버 더 초이스는 무려 10년만의 신작이다. 소설을 잊고 독자를 잊기에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버 더 초이스는 잊지 않은 소설이다. 이영도 타자가 잊지 않았고 독자가 잊지 않았으며 우리들이 알던, 바로 그 이영도 타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이영도 작가의 그 느낌 그대로를 즐거워했고 그리워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버 더 초이스는 반드시 성공적인 선택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