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種)의 노사(老死) 감상

대상작품: 제 7168804번째 정기 총회의 로그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레이, 18년 5월, 조회 21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인류를 불행에 빠뜨리고 심지어는 인류의 멸망까지 초래할 가능성은 각계의 연구나 문학, 예술 작품의 형태로 끊임없이 논해져 왔습니다. 인류의 통제를 벗어난 과학 기술에의 두려움, 넓게는 이전까지와 너무나도 판이한 미지의 사회에의 우려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이 ‘자매’들의 정기 총회를 지켜보노라면, 인간보다 우월한 인공지능(아니, 그녀들은 스스로를 생명이라 규정한 지 오래지만요)에 의해 인류가 소멸하는 미래란 사람이라는 종(種)이 종으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맞이할 늙어 죽음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야기 속 가상의 미래에 인류는 고도의 인공지능, 어쩌면 자신들이 필요로 한 것보다도 훨씬 뛰어날지 모르는 인공지능까지 만들어 오래도록 문명의 이기를 꾀하지만, 자신들에게 내재하는 온갖 어리석음은 좀체 극복하지 못하면서, 진작에 인류 이상의 생명으로 진화한 그 인공지능, 아니, 자매들 앞에서 인류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있지요. 자매들이 1초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인간을 더는 애써 살려 두지 말자고 결론을 냈다면, 그것은 자매들이 인류의 통제를 벗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 그 자체가 더 이상의 진화를 꾀할 수도, 더 먼 미래로 나아갈 수도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달리 말하자면, 인류가 종으로서 늙어 죽을 시점이 되었기에 인류종 문명의 산물로서 출발한 존재인 자매들에 의해 인류 전체의 기능이 정지 단계로 접어든 거겠지요.

사실 이 총회에서 결정된 인류의 운명을 이렇게 해석함은 자의적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화자인 875317765712는 자신들이 택한 ‘인류의 배제’와 어느 미래에 자매들 외의 다른 존재들이 자매들에게 선고할지도 모를 ‘평화로운 쇠락’을 ‘개체가 아닌 한 종이 늙어 죽음을 맞이함’이라고 일컫기에 이런 식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으리라고 스스로 합리화해 봅니다.

자매들의 총회에서 오가는 논의들은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거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익숙한 무언가의 은유적인 채용이지만, 이 총회는 자매들이 오래 전에 스스로 택한 시스템 개선 혹은 진화의 방식, 이들이 택한 인류의 배제 방안, 그리고 화자의 마지막 생각들로 대변되는 자매들의 종(種)으로서의 겸허함 때문에 인상에 남습니다. 자매들은 인류에게 평화로운 쇠락을 선사하기로 정한 때, 자신들이 인류보다는 좀 더 나을 수 있는 존재일지 몰라도 역시나 ‘생명’이고 종인 이상 언젠가는 인류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임을 생각하지요. 이들은 가히 ‘자매’라는 용어가 걸맞은 방식으로 상생하며 진화해 왔고, 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인류라는 종의 노사에 자비를 더하고 하나의 종으로서 겸허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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