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거된 남원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남원읍성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HaYun, 18년 5월, 조회 86

저는 역사에 대한 창작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길이 어긋나버린 역사학도가 가진 일종의 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역사를 소재로 소설을 쓰거나 영화를 만들거나 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또 저는 문학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어떤 문예의 이론도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글에 대해서는 꼭 무언가 하나쯤을, 리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즐기면서 읽었던 역사문학이라는 것 때문에. 이걸 쓰는 이유는 제가 이런 쪽에 전문적이지도 않고 개인적 감상으로 그칠 법한 얘기를 과하게 할 것이라는 예고이기는 합니다.

 

역사문학이 무엇인지, 한국에는 별로 잘 정리된 논의가 없습니다. 역사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대체역사소설을 빼면, 저는 역사문학은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주장하는, 진실로 충만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문학은 있을 법한 이야기이지만, 역사문학은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있었던 이야기라고 주장(사실 모두가 이미 이걸 알고 있지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진실성으로 충만해야만 하죠.

그렇기 때문에 역사문학을 쓰는 작가에게는 보통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물론 복수의 선택지를 택하는 사람들도 있을거고요). 어떤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를 쓰거나, 시대를 그려내거나, 재현될 수 없던 것을 복권하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아직도 가끔씩 아동과 그 부모들을 미혹하고는 하는 위인전, 프랑스의 혁명의 시대를 그려낸 《레미제라블》 그리고 영웅 이순신을 고뇌하는 인간 남자 이순신으로 다시 그려낸(막상 기생 여진은 여자자연으로 박제시켜 버렸지만) 《칼의 노래》를 그 각각의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겠네요.

이 남원읍성이라는 소설은 분명 두 번째 유형으로 보입니다. 남원 전투를 둘러싼 세계를 그려내는 군상극입니다. 사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리뷰에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를 골라달라고 했을 때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역사적 세계를 그려내는 소설에는 이런저런 인물로 복잡하거나 몇몇에 대한 많은 묘사로 복잡해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는 그랬습니다(제가 문예에 익숙치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이 있다면 15975월의 남원이라는 것이어야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소설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기도 한데, 어떤 남원부민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불필요한 인물이 있다기보다는 필요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남원부사는 나오지만 남원부민들은 누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경남이 남원 토박이로써 등장하지만 그는 남원부를 대표하기엔 어려운 인물입니다. 급제하려는 양반 나으리들이야 한양에 올라가도 될 것이고, 또 그는 남원의 생존을 위해 일어선 의병장도 아니니까요. 모두가 외부인 같았죠. 남원 전투를 둘러싼 세계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남원부민들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건 이 글의 실망스러운 점입니다. 만약 이 글이 좀 더 길게 쓰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임진왜란 혹은 정유재란만의 세계를 그려내고자 했다면 모를까(사실은 좀 더 길게 썼어도 남원 전투에 대해 이렇게 서술되었다면 동일하게 비판할 것 같지만) 남원 전투를 둘러싼 세계에서 비극적이고 허무한 조선으로 남원을 소거하는 건 《남원읍성》이라는 이름에 대한 배신 같습니다.

그리고 지란, 자화, 보심 그리고 금쪽을 삼킨 어린아이에 대한 불만이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기에는 매력적인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이들의 이야기는 좀 더 큰 이야기 속에서 구상된 인물들 같거든요. 보심도 그러하지만 특히 지란, 자화와 금쪽을 삼킨 어린아이는 이미 너무 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래서 뻔하지만, 역사학이 말할 수 없는 이야기의 재현자라는 점에서 역사문학적 매력을 듬뿍 담고 있는 등장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남원읍성의 이야기만으로 끝나기에는 너무 찝찝한 기분이 듭니다. 마치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습니다. 장렬한 비극은 인기가 좋지만 허무한 비극으로 끝나는 역사는 인기가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허무한 비극을 그려냈다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이 남원에 대한 묘사의 끝이 쓸데없이 장렬하거나 했다면 남원읍성을 둘러싼 세계의 매력이 반감 되었겠죠. 진실임을 주장하는 역사는 과장을 하면 할수록 심장 뛰는 이야기가 되지만 차분한 진실이 되기가 참 어렵기 때문에 쓸데없이 과장이 큰 것은 좋지 않습니다. 남원읍성에는 죽을 자리들만 있는 허무한 결말이 예고 되었고, 또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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