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요약>
그냥 콱 죽어버릴까. 살면서 누구나 한두번쯤은 떠올려보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걸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데 여기, 한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박복한 남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박규한. 자신이 ‘루저’의 부류에 속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으며, 그럼에도 사회의 구성원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 부단히 노력한 남자. 하지만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가시피 권고사직 당한 남자. 6개월간의 구직활동에도 취직이 되지 않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도, 월셋방에서 죽으면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폐를 끼칠까, 지하철 선로에 뛰어들면 기관사에게 트라우마를 남기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는, 소심하면서도 선량한 마음씨를 간직한 남자이기도 하다. 고민 끝에 향한 양화대교에서 만난 것은, 초현실적인 미모를 가진 두 명의 예쁜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원래 한강 물 밑에서 지내다가, 가끔씩 지루해지면 뭍으로 올라온다고 자신들을 규한에게 소개한다. 그러면서 물 밑에서는 돈 벌 걱정 따윈 할 필요 없으니 같이 가자고, 규한이 마음에 든다며 유혹해온다. 하지만 규한이 유혹을 거절한 순간, 미녀들은 갑자기 무섭게 변하며 규한에게 왜 얼른 죽지 않느냐고 화를 낸다.
일상으로 돌아온 규한은 여전히 아웃사이더지만, 조금씩 자신만의 중심을 잡으며 사회에 적응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단편은 마무리된다. 그가 다시 살기로 결심한 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의 도움이 컸다고 덧붙이며.
<감상>
살면서 누구나 느꼈음직한 자살충동과 사회생활의 고충들을 소재로 해서 공감도 잘 되고, 주인공이 비록 하찮고 소심하지만 선량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초반에 독자가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어 인물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양화대교로 향하는 부분까지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나타난 물귀신들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문득 ‘박복하다’는 단어의 뜻이 궁금해져 사전을 검색해 보았다. ‘복이 없다. 또는 팔자가 사납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복도 지지리도 없고 팔자도 사나운 남자, 박규한.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SNS가 발달한 요즘 세상, 타고난 외모나 재능, 배경을 가진 이들의 화려한 삶이 실시간으로,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세세하게 전세계 대중에게 빠짐없이 노출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화려한 일상은 때때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우리들의 삶을 한층 박복한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삶에 좌절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행복을 느끼는 요령을 하나씩 터특해나가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박복하다, 즉 복이 없다는 건 수동적으로 부여된 조건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삶을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복하다는 현실에 주저앉기보다는, 스스로가 바라는 현실을 능동적으로 하나씩 쟁취해나갈 필요가 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박규한의 소설 속 마지막 모습이, 내겐 더 이상 인생의 ‘루저’가 아닌 ‘위너’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