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나를 모른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출입국사무소 (작가: Victoria, 작품정보)
리뷰어: 한켠, 18년 4월, 조회 220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거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 있으니 우울증이 있는 분들은 주의하여 주세요.

 

나는 거부당했어요이것마저 실패했어요나는 어쩜 이렇게 잘하는 게 단 하나도 없을까요.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내 서류가 잘못되어서 날 입국시켜 줄 수 없다고 했어요내 서류에 모론(moron 멍청이)협회라고 적혀 있대요그런 기관은 없다며이 서류는 가짜라고 했어요.그런데그 말은내가 모론이 아니라는 말이잖아요. ‘모론은 엄마아빠가 날 부르던 말이죠엄마아빠가 날 모론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모란이라고 들으려고 노력했어요.엄마아빠가 아니라 내 머릿 속에서 모론이라는 말이 들릴 때에도요나는 모란이지 모론이 아니라고그런데 이제는 그 꽃이 필 때까지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운다는 모란도 싫어요꽃이 피지 않는 허브였으면 좋겠어요아니허브처럼 쓸모 있는 식물도 싫어요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잡초였으면 좋겠어요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게.

그래요, 어쩌면 나는 모론이 아닐지도 몰라요밖에서는 한번도모론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난 늘 무람이 앞선 애였죠.흠 잡히지 않으려고늘 잘하려고요남들은 날 모범생이라고 했어요난 늘 어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어요어린애들이 부모에게 관심 받고칭찬받으려고 하듯이요엄마아빠는 내가 공부를 잘 하면, 1등을 하면 날 칭찬해 줬어요난 그게 사랑인 줄 알았어요내가 2등을 하면한 문제를 틀리면, ‘모론이라고 했죠난 내가 벌받을 짓을 한 줄 알았어요난 공부만 했어요.처음엔 엄마아빠가 시켜서 했고조금 커서부터는 내가 스스로했어요엄마아빠는 공부만 잘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했죠친구가 없으면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좋은 직업을 갖고돈을 많이 벌면 매력적인 사람이 될 거라고 했죠.나는 공부 말고는 한 게 없어요내가 뭘 좋아하는지다른 걸 잘 할 수는 있는지조차 몰라요남들이 내게 말 붙일 수 있는 화제거리는날 좋아해 줄 수 있는 건 성적 뿐이죠나는 그게 늘 불안했어요성적이 떨어지면 남들이엄마아빠가 떨어진 점수만큼 날 덜 사랑할까 봐.

왜 그렇게 부모들은 맹수를 좋아할까요아들의 이름을타이거라고 짓고 인간이 아니라 골프선수로만 기른 아버지가 그렇고 스스로를 타이거맘이라고 부르고 아이들을 나 같은 모범생으로 양육했다며 책까지 팔아먹은 예일대 로스쿨 교수도 그렇고요사자는 벼랑에서 새끼들을 떨어트려서 살아남는 강한 새끼만 기른다는 전설은 어디서 나왔을까요왜 스파르타 전사 훈련시키듯 학생들을 가둬두고 몰아붙이는 학원에 날 보냈어요스파르타와 아테네 중 고르라면 아테네를 고르실 분들이왜 자식을 호랑이로사자로 길러야 할까요세상은 정글이니까 가장 강한 맹수가 되어 백수의 왕이 되어야 한다고요?

 나는 라이언킹을 볼 때마다 생각했어요왜 굳이 갓 태어난 심바 앞에 모든 동물이 예를 표해야 하나심바는 그냥 아빠를 멀리 떠나 하쿠나마타타 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할 수도 있는데왜 심바에게 물어보지도 않았을까요알아요심바의 아버지도, ‘라이언킹이 되는 것 외의 삶은 생각조차 안 해 봤겠죠그러니 아들에게도 라이언킹의 삶을강요라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정해줬겠죠때로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데려가기도 해요누구는 그걸 소유욕이라고 하죠.그런데엄마아빠도 만약나보다 먼저 여기 오게 되었다면 날 데려왔을 거예요엄마아빠가 정한 삶의 기준만큼 살지 못 하면 안 사는 게 낫고부모 없는 아이들은 그런 기준선 아래로 떨어질 확률이 너무나도 큰 사회니까요그런데엄마아빠는 그런 사회에 아이들을 내놓기 전에 왜 사회를 바꾸진 않았어요나만 사자가 되면 되는 건가요주토피아처럼 모든 동물이 서로 갈등하긴 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사회를 만들지 않고요?

내가 몰라몰라처럼 나약해서 이런 짓을 했다고 하겠죠. 그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걸요. 변호사 시험에 떨어지고 막막했어요나의 이십년 넘는 삶은 오직 외길직진이었어요이제 내게 길이 없어진 거예요.변호사가 아닌 나는 상상할 수 없어요이걸 누구에게도 무람 없이 말할 수가 없었어요애꿎은 내 손만 물어뜯었어요내게는 실패한 나도 사랑해 줄 부모가추억을 나눈 친구가 없었고나 혼자였으니까요나는 고립되었어요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못 했어요절망했어요내가 만약 공부변호사 말고 다른 걸 알고 할 줄 알았다면이러지 않았을 거예요나는 지금 말할게요.더는 착한 아이일 필요가 없으니까요나는 나를 이렇게 몰고간 엄마아빠를반항하지 않은 나를 원망해요.

나는 처음으로 공부말고 다른 걸 해 봤어요역시나 실패했네요.결국 이렇게 된 내 인생이 불쌍했어요이제 삶에서지겨운 공부에서내 인생에서엄마아빠의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행복했는데엄마아빠에게 상처줄 수 있어서내 진심을 이런 식으로라도 알릴 수 있을 것 같아서 통쾌했는데.

나는 변호사가 되지 못 했지만처음으로 나 자신을 변호했어요.출입국 사무소 직원당신은 날 모론이라고 했어요동시에모론이 아니라서 입국시킬 수 없다고 했죠당신이 누구건,과거에 어땠건위악이건 아니건 상관없어당신에게 모욕당할 입국자는 없어. 당신은 날 몰라. 나는 모론이 아니야이건 내가 이 일을 벌이기 전에 했어야 했다는 말이었어요나는 이제 내가 살던 곳으로 추방되겠죠나에겐 무량한 날들이 남겠죠그렇지만 더 이상 무료하지는 않을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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