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클리벤의 금화>를 단숨에 읽어내려가는 것은 재밌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168화는 하루만에 읽기에 부담스러운 분량이었지만, 오히려 한 번에 읽었기에 작품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일단 분량에서 오는 압박보다는 과연 이 이야기의 종착지가 어디일지 궁금해지는 흥미가 더 컸다. 조금씩 영토를 넓혀가는 듯한 소설 안에서 다양한 설정들이 드러나고있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아, 마치 내가 울리케가 된 듯 새로운 정보들이 궁금해졌다. 이러한 점에서 이제 겨우 1부 4장인 소설이 예상보다 조금 더 길게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커졌다.
중반 가량 읽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작품의 특색은 바로 여성인물들이었다. 주인공이 여성이니 당연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 보다는 작품 전체의 여성 인물들의 강인함과 이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이색적이다. 긴 분량 내내 울리케의 외모에 대한 것이나, 그녀의 이성적인 매력 따위는 묘사되어 있지 않고 이는 모든 인물들에게 적용된다.
인물들에게 주어진 지위와 영향력이 그들의 미모와 상관이 없고, 누구 하나 외모에 있어 묘사없이 그들의 능력과 행동으로만 공평하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전에 읽어왔던 그 어떤 판타지 소설과도 다르다. 인물의 외형이 이토록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고,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소설이 그려내는 인물들이 더욱 잘 보이기도 했다.
특히 울리케가 까마귀가 되거나 시그리드가 노새가 되어 이야기를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는 점이 놀라웠다. 단순히 주술의 힘을 빌려서라는 설명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인물의 외형에 대한 지나친 묘사가 없었기에 더욱 편안히 받아들여지게 된 것 같다.
소설의 여성들이 외모로 평가받기 보다는 그 능력과 배짱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것이 이토록 새로운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무엇보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만한 외형 묘사 없이도 이 많은 인물들을 엮어냈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라 한다면, 작품은 복잡다단한 인물의 면면을 보여주기보다는 어느정도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일관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울리케를 제외하고.) 이는 이야기가 더 진행되면 될수록 달라지겠지만, 이 다양한 인물들의 ‘반전’매력을 조금씩 보고싶은 마음이다. 또한 교섭의 매개가 ‘대화’가 이 소설의 주요한 흐름이지만, 인물의 대사들이 문어체인데다 개념들을 직설적으로 던지면 읽기에 곤혹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럴때는 그냥 시야프리테처럼 적당히 무시해가며 진행했지만 추후 200화 이후 다시 복습을 해야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들이 주가 되는 이야기라 더욱 즐겁다. 어느 누구 하나 흔들림 없이 자신의 믿음을 가지고 가는, 그러나 그것이 너무 곧아 부러지기 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가지같은 이야기이다. 끝없는 힘의 싸움이나, 더 강인하고 더 위대한 존재, 혹은 더 아름다운 존재들이 끝없이 등장하는 소설이 조금 지루한 사람에게는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정말 즐겁고 소중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