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대한 서사의 여정은 앞으로 시작입니다 <개구리 제국> 공모(감상)

대상작품: 개구리 제국 (작가: 앉은황소,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8시간 전, 조회 12

 

 

< 본 리뷰는 해당 작품을 장편연재 최소 기준인 400매 분량을 감상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앞으로 진행되는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평가가 바뀔 수 있다는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

 

 


 

현시대보다 발전된 문명을 맞은 인류가 우주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종족과 접촉한다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소재 중 하나였습니다. 그것이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라는 이름의 세부적인 장르로 묶여 있는 것만 봐도, 당장 ‘우주(space)’라는 소재가 주는 미지와 광활함은 많은 영감을 주는 것이 사실로 보입니다.

 

이 장르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서야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꼽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서 제시해야 하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고 분석합니다.

 

첫째,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가? (배경을 우주로 넓히는 주제적 목적성)

둘째, 인류는 어떻게 ‘우주’로 나가는가? (우주를 정복할 수 있는 기술력의 개연성)

셋째, 결국 ‘우주’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가? (우주라는 소재의 창작성)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은 <개구리 제국>이라는 작품은 혹자가 생각하는 ‘우주’에 걸맞은 테두리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개구리 제국>은 우주로 향한 인류가 또 다른 행성에 사는 이종족…… 아니, 양서류(?)와 교류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소설로, 장르적인 재미와 빼어난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개구리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설정에 비해, 제국과 부족을 넘나드는 거대한 서사를 다룬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입니다.

 

다만 그 장르에서 보이는 테두리를 갖춰놓았음에도, 그 안에 채워놓은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글에서는 <개구리 제국>이 더 나은 소설이 될 수 있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다듬어야할 요소를 ‘인간’과 ‘개구리’ 두 종족의 행적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개구리’라는 친숙한 소재

 

어찌 보면 이 소설에서 가장 독특(?)한 소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 바깥에 있는 행성을 찾아갔는데,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이 개구리(?)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독자들을 한 눈에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작가님은 수많은 형태의 외계인들을 창조할 수 있음에도, 굳이 ‘개구리’라는 친숙한 형태의 종족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많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독자들이 모를 수가 없는 ‘개구리’의 이미지를 그대로 빌려온다는 것은, 곧 그 이미지를 그대로 쓸 수 없는 변주를 강요받는 셈이니까요.

 

잠시만요……. 외계행성에 사는 개구리라고 하셨어요?

 

 

 어? 설마….??

 

뭐, 어쨌든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개구리 종족의 모습은 ‘문명을 만나지 못 한 원시인’이나 다름없습니다. 강과 숲을 터전으로 삼아 부족과 함께 공생공사 하는 모습이며, 족장이라는 이름의 지도자를 두고, 예언이라는 미신을 신봉하며, 자연의 파괴에 몸부림치며 삶을 부르짖는 모습들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문명과 떨어진 ‘원주민’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국’으로 대표되는 집단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들의 모습은 문명과 발전을 꾀하는 여느 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철도를 놓고, 철을 가공하며, 공장을 운영하는 듯한 묘사를 보면 어느 국가의 개화기를 다루는 듯한 인상도 받습니다. 그 중심에는 ‘황제’라는 지도자를 세우며, 자신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종족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다만 ‘얼음’은 알고 ‘과자’는 아는데, ‘얼음과자’라는 개념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양서류답게 지능은 개구리나 다름없구나 하는 소소한 인상도 받았습니다.

 

즉, 이 작품에서 보이는 주요 갈등은 힘과 세력으로 통제를 강요하는 ‘제국’과 그로 인해 터전이 망가지는 ‘부족’ 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도 제가 읽은 초반부 이야기는 대부분 이들 간의 싸움을 중재하는 인간 가족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 여기까지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이 간략하게 정리된 설정들에서 ‘개구리’라는 설정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보이시나요?

 

사실 일반적인 독자라면 위와 같은 줄거리를 읽고 ‘개구리’라는 소재 자체를 떠올리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아마존을 비롯한 부족들이 문명을 이룬 사회와 맞서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관이 너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복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문명과 비문명과의 싸움은 너무 흔하게 다뤄져 왔고, 그 사이서 보이는 힘의 차이는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 <개구리 제국>은 그런 보편적인 사고들을 가공 없이 재사용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자연파괴와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 등 그 안에서 보이는 갈등 또한 너무 보편적이라 인상을 주지 못 하는 것도 한 몫 합니다.

 

 

누군가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도 이 작품과 많은 것이 겹쳐 보입니다. 자연을 터전으로 삼는 외계인 부족, 이익을 노리며 그들을 탄압하는 또 다른 종족, 그 사이서 옳은 길을 선택하려는 어느 주인공의 모습까지…….

 

물론 저는 <아바타>가 훌륭한 영화라는 것은 부정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아바타>가 좋은 ‘설정’을 바탕으로 한 좋은 ‘각본’을 갖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 편입니다. 실제로도 많은 평론가들이 <아바타>의 단점은 진부한 주제에 있다고 할 만큼, 줄거리 면에서는 큰 감흥을 받지 못 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다만 <아바타>는 영화라는 특성상 시각적인 퍼포먼스를 한계까지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파란 족제비(?) 분장을 한 외계인과 나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종족의 모습들이 인상 깊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 3D영화라는 장르를 창조해냈던 시각적 효과에서 비롯됩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을 거둬내고, 흑백으로 갈라지는 소설로 내놓는다면 어떨까요? 분명 그 인상이 주는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개구리 제국>은 영상을 배제한 <아바타>라는 느낌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아바타> 보다는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글로 묘사할 때 파란 피부와 기다란 사지를 강조할 뿐 인간의 행동원리를 빼닮은 ‘나비족’에 비해, 이 작품은 ‘개구리’라는 선명하고 공통된 이미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아쉬운 점은 작가님이 이 ‘개구리’라는 소재의 활용법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인상에서 비롯될 뿐입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처음으로 부족 소개가 나오는 ‘2회’를 여러 차례 정독한 바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지난 후에 이들이 ‘개구리’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탓이죠. 제가 처음 읽을 때는 이들이 ‘젖꼭지를 훤히 내놓은 채 새까만 피부를 자랑하는 밀림의 원시부족’ 정도로 이미지가 그려지며 줄거리를 쫓아갔습니다. 사실상 양서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미지였음에도 특별한 위화감을 느끼지 못 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부족의 모습이 인간과 다름이 없었다는 반증이라는 생각도 작게 구겨두는 바입니다.

 

 

2. 납득이 안 되는 ‘누리호’ 일행

 

원래부터 문명과 떨어져 있는 개구리들에 비하면, 우주선을 타고 이 행성에 정착을 꾀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는 독자로서 공감할 지점이 무척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도 이들은 지구로부터 얻을 수 없는 막대한 이득을 노리며 이 행성을 찾아냈다는 개연성 있는 설정 덕에, 이들이 개구리들의 싸움에 끼어드는 그럴 듯한 명분도 갖춰져 있습니다.

 

다만 이들이 오히려 ‘인간’적인 사고를 하는 덕분일까요? 그들의 행동은 인간이라면 납득이 되지 않는 허황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문제점은 이들이 ‘개구리’ 종족을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누리호’ 일행은 선한 인성과 교양을 갖춘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내부적으로도 갈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화목하며, 인류의 새 터전을 개척하겠다는 숭고한 목적 하나만을 우직하게 바라보는 단단함마저 갖추고 있습니다.

 

이런 선하고 도덕적인 행동원리는, 또 다른 행성에서 만난 양서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누리호’ 입장에서는 개구리 따위야 한낱 원시인으로 비춰질 정도로 기술적 교양적 격차가 큰 편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교만하기는커녕 고개를 숙이고 대화를 시도하는 예의를 갖추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제국과 부족 간의 갈등을 손수 해결해줄 정도로 헌신적이라는 인상마저 듭니다. 사실상 교양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미개인…… 아니, 미개양서류들에게 갖추는 예의치고는 정말 심하게 몸을 사리는 셈입니다.

 

냉정히 말하자면, 누리호 일행은 개구리들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누리호 일행은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 된 입장에서 토착주민들과 교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들은 단순히 이방인이 아닌 개척이라는 이름의 ‘침략’을 기도하는 세력입니다. 애초에 힘의 균형이 맞지 않는 이상, 둘 사이에 동등한 교감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명분은 있습니다. 후발대가 도착할 때까지 행성의 갈등을 해결하고 주민들의 지지를 얻겠다는 그럴 듯한 명분이 있죠. 하지만 언뜻 봐도, 이 명분은 너무 도덕적이며 비효율적인 무언가입니다. 누리호 입장에서는 어차피 행성을 침략할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오히려 이들을 굴복시킬 방향을 찾는 쪽이 효율적입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이냐? 인간과 개구리들이 화합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겠다는 데 뭐가 불만이냐?”

 

말이 좋아 화합이지, 여권도 안 끊고 행성에 들어온 이들과 섞여 살 수 있다는 발상이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실제로도 작중에서 ‘활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라며 인류들이 개구리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리호 일행이 아무리 행성 주민들의 인권…… 아니, 양서류권(?)을 주장한다고 해도, 더 똑똑하고 권한이 많은 인간들이 침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이상, 누리호 일행의 방식은 몽상가들의 발버둥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습니다.

 

물론 피가 흐르고 생각이 다양한 인간에게 딱딱한 설계논리를 적용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 느낄지도 모릅니다. 사실 앞선 논리에 대해 ‘개구리들이 인간처럼 사고하는 삶을 직접 목격한 누리호 일행이 감회되었다’는 변명을 달면 뒤로 나타나는 헌신적인 태도들을 설명할 수 있는 기준이 되겠죠. 개인적으로 이 변명을 작가님께서 의도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리호 일행이 개구리들에게 감회될 만한 기준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힘든 편입니다.

 

영화 <아바타>를 떠올려봅시다. 나비족은 표면적으로 인간과 무척 비슷한 종족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은 이득을 찾는 인간과는 무척 거리가 멀죠. 그렇기에 작중에서는 ‘아바타’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주인공이 나비족과 교감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을 충분히 묘사하려 애씁니다. 인간이 느끼는 기준을 나비족이라는 이종족의 기준으로 옮겨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죠. 그 상대를 ‘여성’으로 지정하여, 마치 연인과 같은 분위기를 형성해 관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드는 것도 한 몫 합니다. 전체적인 주제가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 <아바타>지만, 그 내부적인 인물의 관계형성은 무척 교과서적인 시나리오를 따르는 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교감의 과정이 거의 배제되어 있습니다. 누리호 일행이 그들의 삶에 빠져들고, 공감하며, 특정 누군가와 친분을 맺는 그 어떤 과정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다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주장하는 것이 전부죠. 그리고 그 옳다고 믿는 일이, 기존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적인 기준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을 뿐입니다.

 

특히 이런 기준에서 떨어진 인물이 바로 ‘지연’인데, 이 친구는 작중에서 ‘능력과 인성을 동시에 갖춘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다만 그 인성 면에서 지나치게 개구리들에게 공감하는 면을 갖추는데, 그에 대한 근거는 ‘이들도 사람이랑 비슷하다’는 인간의 시선으로 재단한 가치관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그녀의 행동은 행성 주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다는 누리호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나, 독자 입장에서 그녀는 목적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이 양서류들에 대한 공감 하나로 이뤄지는 자기주장으로 비춰집니다.

 

(13-P.4) 황제의 뻔뻔한 언사에 화가 난 지연이 갑자기 달려들어 마이크를 빼앗아서 말했다. “그 사우바기의 백성들이 당신들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 알기나 해? 수만이…. 아니, 수십만이 죽었다고!”

 

사실 그녀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남들보다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외계행성에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개구리’들을 보고 인간과 같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일반인 기준으로 지나친 공감능력을 보여준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의 근원을 분석하자면, 작중에 나오는 모든 관계들이 인물 대 인물이 아닌, 집단과 집단으로 엮여 있다는 데에서 비롯됩니다. 영화 <아바타>가 나비족이라는 거대한 집단과 교감을 다루면서도, ‘네이티리’라는 여성 나비족을 대표로 내세워 주인공과 교감을 표현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유는 명확합니다. 절대로 집단적 사고 체제는 하나의 인물로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죠. 물론 제국 측에서 ‘황제’가 이 집단의 대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입니다만, 그조차도 ‘제국’이라는 집단에서 오는 가치를 우직하게 주장하는 평면적인 인물상 탓에 관계를 형성한다는 느낌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가족들과는 평범하게 하하호호 웃다가, 황제랑 대화할 때만큼은 사극 말투를 쓰는 수혁은 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리호’ 일행 또한 하나의 인물보다는, 그 집단으로 사고를 같이 하다 보니 납득이 안 되는 행동들이 자주 관측됩니다. 가령 15회차에 등장하는 수혁과 황제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15-P.47) “난 당신들의 정체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당신들이 우리 제국을 무너뜨리러 온 침략자라 선포하겠소. 이 제국의 모든 신민이 목숨을 걸고 당신들과 싸우게 될 것이오. 당신들의 힘이 월등하니 결국엔 이기겠지만 그 정착에 성공하기 전까지 우리 제국민들의 수많은 피를 보게 될 거요,”

 

사실 이 대사가 나왔을 때, 침략자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며 박수를 치는 게 마땅합니다. 당장 황제 본인조차 그들의 기술력이 제국을 압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리호 일행이 사실상 ‘침략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도 명백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즉,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인류 쪽에서 직접 고개를 숙이면서 봐주고 있는 셈인데, 황제는 자신들(?)을 인질 삼아서 요구를 하는 엉뚱한 태도를 보이는 셈입니다. 이 협상과 강요는 듣도 보도 못 한 방식이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쯤에서 누리호 일행이 취할 태도는 명확합니다. 자신과 개구리 사이의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것이죠. 막말로, 활이나 찍찍 쏘고 다니는 양서류 주제에, 인간이 씨를 말리겠다고 덤비면 자기들이 뭘 어쩌겠나요. 어차피 후발대가 와서 개척을 시작하면 이들은 노예가 되거나 가축이 될 것이 훤한데, 그런 미래를 가늠조차 못 하는 오만방자한 개구리들에게 본 떼를 보여주는 게 이들로서는 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런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일행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나름 현실성이 있었겠지만, 그들의 도덕성이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것만 줄곧 관찰하는 형편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과장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인간의 역사는 늘 침략과 정복으로 이뤄져 왔고, 그에 따라 축적된 데이터가 있습니다. 당장 새로운 터전을 찾아야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는 작중의 인류 입장에서는, 더 인간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점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 효율적인 선택을 굳이 무시하고 멀리 돌아가야 하는 납득성이 환경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아주 단순한 문제점들을 살펴보았지만, 이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특히 집단과 집단 간의 거대한 싸움을 다루면서도 조급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것과 더불어, 그를 표현하는 언어와 문체의 간결함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님이 소설적으로 내공이 깊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앞서 설명했듯이 <개구리 제국>은 아직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들이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에 그쳐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그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 또한 표면적인 줄거리에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 작품은 벌써 3000자를 넘기며 연재를 진행 중입니다. 물리적으로 분량이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소설로서 시작되었냐고 묻는다면 그 뒷면의 느슨하게 풀려 있는 서사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아직 채워갈 이야기들이 많다는 반증으로도 다가옵니다.

 

과연 <개구리 제국>이 그 서사를 완성시켰을 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요? 한 명의 독자로서 가슴이 뛰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이 멋진 작품과 잠시나마 함께 거닐었다는 자부심을 가져가며, 이 비루한 글을 마치겠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멋진 집필 활동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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