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계와 성장하는 인물들을 그린 작품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flafla, 18년 3월, 조회 456

나는 아무에게도 빚 같은 건 없다. 나에게 빚을 진 사람이 있으면 몰라도.

 

그저 이 소설이 재미있고, 하루빨리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르는 웹사이트 연재본이 아니라 이북이건 출간본인건 내 소유로 만들 기회가 오길 바라는 마음에 이런 리뷰를 남긴다.

어디가서 지지 않는 내 튼튼한 승모근의 7할을 교과서가 키웠다면, 3할은 아마 환상문학이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했듯이 서장을 읽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작가의 재주와 몇 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가 이 작품을 오늘 다 읽을 것이라는 직감을.

 

이 작품은 천재적이다. 인물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삼기 위해 뒤틀려 있지 않고, 캐릭터들은 모두 저마다의 집단에서 뾰족하게 튀어나와있는 일종의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닌 채, 자신만의 행동원칙을 명확하게 가지고 살아 움직인다. 나는 항상 아웃사이더 캐릭터들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빨리 내 손에 어떤 물질적 형태로 쥐어지길 바라고, 현재의 시점에서 나에게 아쉬운 점은 작가가 후일의 만족감을 키우기 위해 뿌려놓은 복선으로 생각하므로, 좋은 점만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늘 이야기 하지만, 좋은 부분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를 가로지르는 단어인 가성비’ 개념을 떠나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더 기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 다양하고, 확고하며 소모되지 않는 캐릭터를 통한 “다양한 시점”의 제공

주인공을 위시로 세워진 세계에는 언제나 일종의 뒤틀림이 존재하게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테면, 인간형이며, 사고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전략도 세울 수 있지만 언제나 본능’에 따라 인간세계를 공격하다 늘 퇴치당하는 오크라던가, 지상 최고의 존재지만 가진 욕구라고는 재미와 물질에 대한 것 밖에 보유하지 않은 드래곤 처럼. 그들은 주인공을 돕거나 주인공에게 퇴치당하기 위해 등장한다.

피어클리벤의 금화에 등장하는 모든 종족을 대표하는 캐릭터들은 자신만의 명확한 캐릭터성을 갖추고 있다. 드래곤들은 자신만의 삶의 목표와, 언약을 맺어야만 하는 사유를 가지고 있고, 오크는 그들의 기원과 전설, 신과 문화를 통해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을 설명한다.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매우 익숙한 진화심리학”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캐릭터들의 시점을 오가며 작가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관점에서 작품을 이끌어 나간다.

나는 매우 예민한” 독자이고,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굳이 그가 원하는 인물을 선택”하여 이야기를 전개할 때, 멀미 대신 흥미를 느낀다. 작가가 선택했을 때, 그 인물은 내 세계에서 깊이를 더하며 마침내 살아있는 인물이 되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많은 인물의 시점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보게 되기를 바란다.

 

 

둘. 빼곡하게 채워진 성장의 서사.

언뜻 보기에 울리케는 성장이 끝난 캐릭터로 비치기 쉽다. 유능하고, 침착하며 똑똑한 캐릭터들은 대개 그렇게 보이기에 마련이다.

그러나 피어클리벤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방법 역시 매우 다양하다. 캐릭터가 다양하고 확고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법에 연애”와 고난에 대한 감정묘사”가 포함되지 않아 아쉬운 독자가 있을 수 있겠다만, 우리는 이제 무분별한 사랑 묘사와 고통에 대한 조명이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셋. 서사의 합리성

참신함은 이미 많은 리뷰에서 손에 꼽은 장점이고, 나 또한 그 점에 영업되어 이 작품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 참신함이 작가의 합리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기본적인 구조는 우리가 익히 봐왔던 환상문학과 유사하다. 주인공이 위기를 겪고,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강한 힘을 얻어 돌아왔으며 그 힘에 매혹된 내 편과 적이 생기고, 주변인들이 곤경에 처하고 그들을 되찾기 위해 주인공이 최선을 다하는.

그런데 그 이야기 안에 살아있는 인물들은 조금 다르다. 힘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달려나가지 않고, 힘이 생겼다고 갑작스레 폭주하거나 뭔가에 해탈해 버리지 않는다. 이제껏 그래왔듯 주변인들과 교류하고 연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껏 캐릭터의 층을 견고하게 쌓아 놓아도, 그들의 선택에 그 캐릭터성이 반영되지 않아 결국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이야기들에 피로감을 느끼는 나는 이 합리적이어서 참신한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야기에 드러나는 작가의 깊이.

 

어떤 사람들은 한 그룹에 여성의 비율이 30%만 되도 여성이 지나치게 많다고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사실 피어클리벤의 금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비는 50%에 가깝다. 그러니 어떤 독자는 이걸 편식이나 편향이나 욕망으로 받아들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정규교육과정에서 문학작품을 아마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수단이라고 이를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에는 작가 본인이 드러날 수 밖에 없고, 독자 역시 작가를 알아챌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많이 해 본 것이 느껴지는 작가와 그의 세계관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그를 통해 내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어떤 틀을 깨게 해주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해야겠다. 따라서, 단순히 여성이 주요 캐릭터의 위치를 차지했다는 사실 보다 이 작가가 그리는 세계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계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인간중심적’인 사람이었는지를 매화 깨닫는다. 대개 인간이 아닌 타 종족과 울리케의 교류를 통해서다.

인간사회의 평화는 타 종족의 몰락으로 이루어졌다. 이 종족은 흔히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약탈을 일삼는 것으로 알려진 종족이라, 아주 오랫동안 인간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왔는데, 사실 이들에게는 지키고자 하는 전통과 문화가 있다. 인간세계가 그러하듯. 나는 이 작품에서 인간사회가 영토확장이나 자원에 대한 욕망으로 이들을 침략하여 노예삼고 자원을 수탈한다 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환상문학이 으레 그러하듯, 이 작품은 핍박과 억압의 서사 대신 연대와 화합이라는 서사를 택한다. 우리는 여기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란 어떤 것인지를 그가 선택한 환상’이라는 전제 하에 살펴 볼 수 있다. 이 세계관은 작가의 관찰, 탐구, 의문, 사유와 고찰을 통해 살을 찌운” 작가가 그의 의지를 더해 만든 곳이므로, 이 세계관의 합리성과 깊이는 곧 작가의 사고의 깊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드러내기를 시도하는 작가를 사랑하고, 내 생각이 틀리다 할지라도 이러한 발견하기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사람이므로, 앞으로도 이런 식의 메시지를 받기를 고대할 따름이다.

 

나이가 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집중력을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이 더 이상 환상문학에 이전처럼 몰입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몇 년 만에 앉은 자리에 100회씩을 몰아볼 수 있는 작품이니, 아마 이 작품을 읽는 다른 독자들도 같은 재미를 느낄 것이라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언젠가 꼭 남겨야지, 라고 다짐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던 내가 이 리뷰를 남기게 된 계기와 관계 없이, 이런 재미있는 작품을 집필해주시는 작가님과 작품을 추천해주신 모 소셜네트워크의 모르는 분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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