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 어벤저’는 RPG 게임을 떠올리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퀘스트라든가, 파티라든가 그렇게 RPG 게임의 형식을 많이 차용하고 있으니까요. RPG 게임에 익숙하다면 이 소설의 설정들이 훨씬 더 쉽게 다가오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주인공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RPG 게임엔 NPC라는 게 있습니다. Non-player Character라는 것으로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를 뜻합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를 가장 먼저 맞이해 주는 존재가 바로 이 NPC 입니다. 처음 만나는 이 NPC들은, 안 그런 경우도 가끔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친절하게 플레이어인 우리를 대해 줍니다. 궁금한 것도 잘 알려주고 모험을 위한 필요한 물품들도 선뜻 건네주기도 합니다. 마치 이제 막 저 험난한 세상으로 나갈 태아를 그런 세상에 맞설 수 있게 충분히 키우고 보호하겠다는 엄마의 태처럼 말이죠. 우리에겐 정말 더없이 고마운 존재들이죠.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NPC는 그야말로 불쌍한 존재입니다. RPG의 세계는 늘 위험에 처하는데, 그 위험에 대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죠.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아무 것도 못 합니다. 그저 우리의 선한 마음과 자비에 기댈 뿐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전무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약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다리를 오를 수 없는 이들은 마냥 휘둘리고 당할 뿐입니다. 그토록 많은 RPG 게임을 하면서도 NPC가 가진 이러한 운명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지금 하게 되었네요. 바로 이 소설 ‘소프트 어벤저’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NPC거든요.
이름은 폼프 필리우. 그는 ‘푹신인’입니다. 사람처럼 생겼지만 피부가 껴안기 좋게 푹신푹신하고 말랑말랑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소프트 타운’에서 삽니다. 네, 제목의 ‘소프트’는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죠. 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이 ‘소프트 타운’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RPG 게임을 시작하는 마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플레이어에게 처음 시작하는 마을이야말로, 그에겐 늘 고향과 같은 곳일테니(패배와 좌절을 겪을 때마다 늘 돌아가는 곳이기도 하구요.) 단연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 곳 사람들의 등급(아마도 전투력이 기준인 것 같습니다.)은 0도 아니고 -1 입니다. 한 마디로 전혀 싸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죠. 그런데도 폼프는 모험가가 되길 꿈꿉니다. 정의로운 기사가 말이죠. 푹신인에게 절대 불가능한 꿈이니 듣는 푹신인마다 비웃고 충고를 보낼 밖에요.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할 계기 또한 생깁니다. 그가 정말 아끼는 여자 푹신인 하나가 마을에 놀러 온 ‘특별한 사람’에 의해 심한 성추행을 당한 것입니다.
늘 착하고 순박한 푹신인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게 폼프는 성추행을 한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합니다. 전 재산을 털어 열심히 먹어서 몸을 크게 불린다음 그들을 찾아 위험과 죽음이 들끓는 대지로 발을 내디딥니다.
소설은 에피소드 별로 전개됩니다. 각 에피소드마다 중심이 되는 도시가 있고 주어지는 퀘스트가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파티의 구성원이 모이기도 하고 주인공이 특별한 도구를 통해 성장하기도 하며 세계가 간직한 은밀한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야기는 재밌습니다. 유머와 갈등이 적절하게 잘 섞여 계속 ‘다음회’를 보도록 이끕니다. 특히 캐릭터를 잘 빚어 놓았습니다. 그 중 주인공의 성격 묘사는 정말 뛰어납니다. 아주 약한 자로 태어난 자신에 대한 비애나 넘볼 수 없는 꿈으로 인한 불안 같은 감정선이 잘 살아 있고 그런 것이 이야기와 유기적으로 잘 엮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간간히 내놓는 독백이 무심결에 마음에 와 닿을 때도 있습니다.
사회가 멋대로 정해놓은 구분선에서 가장 아래의 단에 있는 자의 심정을 잘 묘사해 놓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거기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한없이 연약한 NPC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는지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바로 그 NPC가 실은 지금 우리 사회의 흙수저를 대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걸.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은 벌써부터 불가능한 일이 되었고 점점 심해지는 양극화 속에서 이제 우리 사회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빨리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근대는 개인이 능력만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선언했지만, 현대는 거꾸로 태어날 때의 신분이 현재와 미래를 결정하는 중세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RPG가 지금도 인기 있는 게 그 때문은 아닐까요?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지금을 중세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겨서.
구획의 벽은 점차 높아지고 그 아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올려다 보는 것밖엔 없는 사회가 되어갑니다. 작가는 바로 그런 사회에 넌더리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대한 흙수저의 울화랄까 분노 같은 것을 담아 흙수저 NPC 영웅 서사를 이렇게 만든 것이겠지요. 이것은 폼피가 자신의 내면을 토로할 때도 엿보이고 누군가를 위해 싸울 때도 나타납니다. ‘거악의 파편’ 편에 나오는 ‘들인’은 정말 흙수저 중의 흙수저를 나타내고 있고, ‘복수의 별’에 나오는 ‘푸른 주먹 기사단’은 교묘한 거짓말로써 흙수저를 착취하여 자신의 탐욕을 채우고 지배를 공고히 하는 우리 사회의 ‘적폐 세력’을 드러내고 있으니까요. 그 마음이 과감하게 제목에 ‘어벤저’를 쓰도록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재밌게 읽은 것 같습니다. 저도 흙수저인 지라 주인공을 막 응원까지 하면서…
아울러 주인공과 파티를 이루게 되는, 젬월드 카드에 푹 빠진 버터의 묘사도 좋더군요. 개그를 담당하는 캐릭터인데,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머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작가가 정말 즐기면서 쓰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동물에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종종 동물로 변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는데, 가만히 보면 동물로 변하는 계기가 다 자신의 현실적인 욕망을 실현 시키려 할 때입니다. 타인을 이용하거나 해치는 것을 통하여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 하는 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들의 해 – 마지막’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야기가 아직 완결되진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아직 복수를 못했다는 뜻이죠. 마지막에 복수를 해야 할 이들을 밝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2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과감히 부숴버린 NPC 주인공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기대되네요. 현실의 흙수저도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얼른 다음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