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고 싶었던 짐승들이 울부짖던 그 밤은 무엇을 남겼나?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짐승 (작가: 붕붕,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8년 1월, 조회 94

신원섭 작가의 ‘짐승’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인간이 되지 못한 짐승들이 인간이 되기 위해 애쓰는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이는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또 어떤 이는 태어난 환경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또 어떤 이는 타고난 자신의 성적 성향 때문에 또 어떤 이는 자신보다 잘난 이를 질투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서 짐승이 되어버린 이들이 이 소설엔 가득 나오며 바로 그들이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갑니다

소설은 미셸이란 여자의 전화를 받은 오동구로 시작합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늘 여자에게 배신당해 온 그는 미셸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기고 있는데 그런 그녀가 자신이 금방 사람을 죽였다면서 전화해 온 것입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는 그녀를 위해 시체를 처리해 주기로 합니다. 겁이 많아서 혼자 하지는 못하고 늘 단짝이었던 친구 최준에게 같이 하자고 부탁합니다. 흙수저 최준은 오동구를 늘 자기보다 훨씬 보잘 것 없는 녀석으로 여기고 있는 남자로 그런 사람이 오동구의 부탁을 들어준 것은 오직 오동구가 그에게 그 일의 대가로 삼천만원이라는 돈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오동구는 미셸의 사랑이 자신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여기고 최준은 그 돈이 빚쟁이의 삶에서 자신을 건져내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들에게 찾아온 인간이 될 기회는 뜻밖에 나타난 방해자로 인해 곤란을 겪습니다. 그가 바로 오동구에 이어 화자가 되는 장근덕이라는 남자입니다. 아니, 곤란은 그가 더 심했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술에 몹시 취해 기억의 필름마저 끊겼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자기 옆에 왠 여자 시신이 하나 놓여 있었으니까요. 화들짝 놀라면서도 평생 생각하는 게 모자라고 용기도 없어서 단 한 번도 연애를 못해 본 그는 얼굴도 몸매도 예쁜 몸을 보니 죽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성적으로 끌립니다. 오죽하면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차에 갑자기 찾아온 관리인과 여자를 돌려 보내면서 그들이 힐끗 본 여자 모습으로 자기에게도 이제 여자가 있다고 여기겠지 하고 생각할까요? 그러고 보니 장근덕은 오동구와 꽤나 비슷한 인물입니다. 그 역시 여자에게서 받는 사랑이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마늘과 쑥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 뒤를 이어 화자가 되는 사람은 전직 형사 이진수입니다. 그는 현재 경찰에서도 잘리고 아내와도 이혼했는데 그 이유는 소아성애자이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성벽 때문에 인간 사회 그 어디에도 발을 디밀 수 없는 짐승이 된 것이죠. 그런 그에게 고등학교 동창인 도미애가 찾아옵니다. 오래 전에 가출한 자신의 여동생을 찾아달라고 말이죠. 돈이 궁했던 이진수는 결국 도미애의 의뢰를 받아들입니다. 바로 뒤이어 도미애가 찾고 있는 여동생 도미옥이 등장합니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 도미애, 도미옥 자매는 어떤 부부에게 입양되었는데, 도미애는 모범생이 되어 부부의 눈에 든 반면, 도미옥은 마음을 잡지 못하고 겉으로 나도는 애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양부모와 도미애만 탓하다 결국 도미애가 모아 놓은 돈을 훔쳐 가출하고 맙니다. 언뜻 보면 그녀는 양부모가 싫어서 가출한 것 같지만 사실 그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은 언니, 도미애였습니다. 자신보다 뭐든 다 잘 하는 언니를 그녀는 아주 많이 질투했던 것이죠. 바로 그 질투가 도미옥을 짐승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소설엔 인간이 되지 못해 늘 절망과 절규의 하울링을 하고 있는 짐승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그들이 미셸이 죽인 여자 시신을 둘러싸고 벌이는 사건들이 이 소설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작가의 승부수도 하나 있습니다. 바로 작가가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 것, ‘시신은 과연 누구냐?’에 대한 것이죠. 읽으면서 작가가 왜 시신의 신원은 알려주지 않을까 궁금했었는데, 거기서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마련해 놓았더군요. 이 소설은 하나의 트랙을 빠르게 달리는 경주용 차처럼 좌고우면하지 않고 결말까지 이야기를 일직선으로 이끌어 가는데다 묘사 보다는 대화가 많아서 더욱 읽는 이를 몰입시키는 힘이 있는데 거기에 이런 반전까지 곁들이니 더욱 읽고 난 뒤의 포만감이 컸습니다. 분명 다른 것 욕심내지 않고 이야기에 마냥 빠지고 싶다면, 이 소설은 꽤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합니다.

이야기 하나로 만족했지만 그래도 의문이 드는 걸 어찌할 수 없네요. 소설의 인물들은 결국 인간이 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인간으로 되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그건 소설 속 인물들의 공통점을 통해 밝혀지지 않을까 합니다. 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바깥 것을 통해 인간이 되려 했다는 공통점 말이죠. 오동구와 장근덕은 여자, 최준과 이진수는 돈, 도미옥은 도미애에게 이기는 것. 바로 그것이 그들을 실패하게 만든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을까요? 내가 변하지 않고, 오직 바깥의 것에 기대는 것으로만 구원을 추구했다는 것에. 지금 우리가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행동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그들의 시도가 실패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것 하나는 분명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것을.

에필로그와 같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들에서 살아남은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신의 감옥에 갇히는 것을 보면, 작가는 분명 은연중에라도 이것을 알려주려 한 것 같습니다.

문득 홍상수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왔던 이런 대사가 생각나네요.

“우리 사람 되기 힘든 거 다 알아. 그렇다고 괴물은 되지 말자.”

맞습니다. 괴물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것이 날 사람으로 남게 만드는 진정한 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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