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가 말한다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펄펄 끓는 전래동화 (작가: 피같은내술,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8년 1월, 조회 51

연재 중인 작품에 대해 언급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작가가 그리는 큰 그림을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 큰 그림이 더 보이지 않아 힘들었다. 하지만 1부 선녀와 나무꾼과 2부 별주부전에 이어지지 않는 점이 있어 그 점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옛이야기에는 누락된 사실이 있다. 예를 들어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런 사실들이다. 누락된 사실들이 있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듣거나, 살아가면서 생각이란다 하게 되면 이런 허술한 점을 이상하게 느끼게 된다. 이때야말로 옛이야기를 다시 이야기하기에 좋은 시점이다. ‘펄펄 끓는 전래동화’ 또한 이 이상함을 메우려는 시도일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은 선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그 비어있는 틈을 채운다. 물론 선녀와 나무꾼 편에 좋은 평가를 주기는 힘든데, 하늘 위 세계는 다들 고자들이고, 선녀가 씨를 받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내용은 조금 단순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반사회적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든 게 아니라 조금은 식상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은 심지어 이곳에서도 다른 작가가 연재했을 정도로 흔한 소재다. 그러니 조금 더 가보면 어떨까? 선녀가 선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약물을 사용해 나무꾼을 강간할 정도의 하드코어한 인물이라면? 어제서야 흥미가 동하기 시작한다. 또한 이를 위해 다른 씨받이 무당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확장한다.

본 작품은 이렇게 기존 전래동화를 비틀고, 그 이야기의 빈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별주부전은 별로였다. 이는 별주부전의 베이스가 되는 두 이야기-별주부전과 심청전-가 서로 빈틈을 메꾸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편 연재의 호흡을 끌고 가기 위한 떡밥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어둡게 반짝이던 작가의 상상력은 찾기 힘들다.

선녀와 나무꾼의 본래 이야기에서 선녀의 시선은 없었다. 선녀는 대상화된 트로피에 불과하다. 선녀와 나무꾼은 오롯이 나무꾼을 통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선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기만 해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선녀와 나무꾼과 같은 방식으로 이 이야기를 리메이크한다면, 심청전에서 가장 대상화된,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어야 할 것이다. ‘심청’ 말이다. 아니면 뺑덕어멈, 그것도 아니라면 도시의 평범한 아낙A. 심청전은 심봉사의 이야기지 심청의 이야기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심청은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와 같은 위치임에도 끝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명나라 황제의 신부 후보로 성형이 되어 연꽃에 실릴 운명에 처한다. 심청전의 본래 얼개와 단 하나의 차이점도 찾을 수 없다. 물론 이 장의 제목은 별주부전이니 심청전이 재해석 되지 않았다고 하는 비판은 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별주부전은 어떨까? 별주부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등장인물은 누굴까? 최소한 별주부는 아닐 것이다. 별주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한 결국 별주부전의 다른 판본이 될 뿐이다. 따라서 심청전은 기존 심청전의 이야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아버지를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자신을 팔아넘기고 그 때문에 전통적인 행복을 손에 넣은 이야기가 된다. 별주부전 또한 마찬가지인데 용왕에게 이용당하다 토사구팽당하는 별주부가 나올 뿐이다. 이는 재해석이라기 보다는 관료라는 속성의 부각일 뿐이다. 바로 전 편에 선녀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보면 이 차이는 너무 커 보인다.

아직 두 장이 연재되었을 뿐이고, 이것으로 전체 그림을 보기엔 좀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장에 나와는 그 선녀와 2장에 나오는 그 별주부가 너무 갭이 크단 생각이 드는데, 이는 별주부가 본전에서도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동적인 인물이기 때문일거라 생각한다.

한 달간의 재충전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다음번에는 제일 소외된 캐릭터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작가 본연의 상상력을 보는 것이 옛이야기를 다시 한번 보는 것보단 즐거운 일이니 말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