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나 버린 긴장
처음 글을 읽고 나서는 뭐야, 연작인가? 장편인가? 의문을 감추지 못 하며 스크롤을 확인했어요. 이게 끝이야? 슬그머니 긴장을 조일 듯 하면서 장소를 이동하려 하고, 주인공이 막 수상쩍은 느낌 하나를 감지한 듯 했는데 끝이야? 나중에 작가님이 자유게시판에 적어놓은 걸 봤답니다. 아, 이건 장편의 프롤로그였군. 그래서 허전한 느낌이 드는거였다니!
그런거라면 이해가 되면서도, 그렇다면 이 한 부분으로는 어떤 말도 거들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잖아요. 그러니 큰 흐름에 관한 이야기는 말을 아끼기로 합니다. 제가 느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하고자 해요.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수아씨는 배우입니다. 하지만 전업 배우는 아니에요. 영화판은 여성 배우에게 너무 박한 곳이니까. 소속사 대표와 선배들의 조언에 반발심을 느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에 무뎌져야 하는 현실에 내몰려 있고, 그나마 연기를 가르치며 생계라도 이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말하는 예술가지요.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쏟아져나온 영화가 전부 남자들로 득실거리는 영화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말 여자 배우들이 살아남는 건 하늘의 별따기겠구나 싶더라고요. 벡델 테스트요? 우리나라에는 진짜 이른 일이겠구나, 생각이 드는 거여요.
그런 환경에서 수아씨는 배역을 따려고 해요. 감독을 만나러 호텔로 가는 건 정말이지 부담스러운 일일 거여요. 읽자마자 온갖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데 만약 어떤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면 저는 글을 닫겠죠.. 하지만 아직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다행히 동석자도 있답니다. 게다가 여성이고, 감독 정대민의 아내로 알려진 사람이어요. 처음 마주쳤을 때 수아의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느낌의 사람이었다고 나오는 것에 반해, 뒷부분에서는 한기와 함께 그린듯한 미소라는 표현이 등장해요. 인위적인 느낌이다, 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제가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으니 넘어가지요. 아무튼 수상함이 확 밀려오는 인물이기는 하여요. 감독인 정대민이 대본을 보러 올라가자고 할 때 다시 불길한 추측이 해일처럼 밀려오는데 비서가 함께 간다고 말하면서 안전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별로 안전한 느낌이 아닐 것 같은! 기묘한 긴장감을 주는 캐릭터라고요.
감독은 특출난 면모가 보이지는 않아요. 극을 끌어가기 위한 캐릭터처럼 보이지요. 이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보여지는지도 몰라요. 수아의 입장에서 그녀의 절박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시며 어울리고 보여져야 하는 상대라서요. 하지만 기분 좋은 느낌이 드는 사람은 아니군요. 일단 수아가 싫어하는 종류의 두루뭉술한 표현을 하는 작가니까요. 그래도 갑이어요.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하는.
이야기의 진행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건 하단의 #metoo 태그 때문이어요. 할리우드 배우들이 겪을 수밖에 없던 그런 상황들이 펼쳐지겠구나, 하는 찜찜하고 불편한 짐작. 만일 장편에서 그런 이야기가 펼쳐지더라도 직접적이고 상세한 묘사는 보고 싶지 않네요. 많이 괴로울 것 같아요. 그러나 저 태그 때문에라도 그런 포르노적 이야기로만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래서 스스로를 구원하는 사람들의 서사를 기대하게 된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뒷 이야기에 관한 정보 일절 없이 혼자 풀어내는 글이어서 너무 부담이 된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면서, 구구절절한 생각은 여기까지 전하기로 해요.
뒷 이야기를 기다릴게요.
덧붙이건대. 만약 현재 영화계의 익명고발자 여배우A 이야기를 그냥 가져다 쓰신거라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글은 아닐 거라고 믿어요. 같은 제목을 사용하셨으니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