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설국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설국 설명을 읽고 이 소설을 보면 아 설국도 그러겠거니 하는 게 느껴져요.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 훌쩍 떠나 도착한 ‘설국’, 그러나 크게 변하지는 않는 일상. 우연히 마주치는 축제와 거기서 만난 소녀와의 풋풋한 로맨스,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삶과 계속해서 그 와중에도 마냥 아름답기만 한 자연…
특히 캐릭터들이 귀엽습니다. 어린 나이의 캐릭터를 묘사하기는 늘 힘듭니다. 에바참치꽁치나 오지고 지리고 렛잇고, 이거 완전 첫사랑각 아니냐 인정? 어 인정. 이런 말을 시키기엔 영 어색하고, 어설프게 ‘설이는 내 깔이다.’ 이런 표현을 썼다간 이게 요즘 청소년들이 진짜 하는 말이에요? 라는 질문이 붙습니다. 일종의 편견을 이용한 것이지만 고령의 양육자들이 보살핀 시골의 아이들이라면 작중에서 나오는 그런 말투도 어울리겠죠. 특히 일부러 어른을 따라 하는 듯한 느끼한 말투를 쓰는 것으로 캐릭터 성이 명확해집니다.
또한 배경 묘사가 좋습니다. 다양한 매체에서 태백이나 영월, 강원의 눈꽃축제를 봤기 때문인지, 글 때문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떤 노스텔지어가 느껴져요. 미려한 풍광이라기보다는 사실 반쯤 망한듯한 이벤트-작중에서는 풋살장, 공무원들의 의욕은 좋았지만 참여자는 적은 축제들. 어째거나 빠지지 않는 단골 품목들 그런 것들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것이 소설의 완결성을 담보해 주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계속해서 이 글을 보고 싶어요 하는 독자의 말이 아니라, 소설의 구조에 대한 의문입니다. 3막 구조를 떠올리며 이 소설을 읽어보면 두 번째 막에서 끝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되돌릴 수 없는 극적 사건으로 막이 내려야 합니다. 나는 기차를 타고 할머니집으로 옵니다. 되돌릴 수 없는 극적 사건이죠. 이 도시의 또래 친구 ‘설이’와의 만남? 되돌릴 수 없는 극적 사건이죠. 첫사랑의 자각? 으음… 글쎄요?
저는 설국을 읽지 못했으니 ‘소나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소나기는 어떻게 끝나나요? 소녀의 죽음을 내가 알게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소녀를 되살릴 수는 없고 따라서 되돌릴 수 없는 극적 사건입니다. 때문에 나의 첫사랑과 함께, 소설은 끝납니다.
눈꽃축제에서 1번째 막은 이 도시에 도착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2막은 설이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들이고요. 그렇다면 3막은 어디에 있나요? 이 이야기를 끝내는 결론부는요? 단순히 보이 밋 걸. 원래 그 도시에 터줏대감인 느끼한 후에게 설이를 부탁받았다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습니다.
이는 ‘후’의 캐릭터성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위에서 말했듯 후의 캐릭터성이 명확하기 때문에 이는 구체적 갈등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히 혼자 오바하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감정은 백현 혼자만의 설익은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해 극적 사건을 겪어야만 세 번째 막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겨울방학이 끝나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누군가 죽거나, 그런 사건들이요. 동백꽃을 생각해 봅시다. 끝에서 점순이와 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에는 되돌릴 수 있는 관계에 불과하죠. 눈꽃축제에 그런 장면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마지막에 /끝/이 아닌 /계속/이 더 어울려 보입니다. 다음번에는 /끝/이 정말로 어울리는 작품으로 만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