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사 일기-야생 바퀴 조심’에 대한 리뷰를 남기며, 부제: 작가가 해명해야 되는 존재 감상

대상작품: 현대 마녀학 입문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글씀이, 6시간 전, 조회 13

현대 마녀학 입문야생 바퀴 조심(이하 바퀴편)은 다른 화와 마찬가지로 맵고 독한 유머로 시작한다. 예를 들면 특별수당 진통제의 효과가 이미 떨어진-”이라는 말고 당장 작가가 업계쪽 인물이지만 출판업계의 아픔을 자학하면서 말이다.

이 편은 사실 바퀴가 바퀴 벌레가 아닌 차륜이라는 반전으로 동음이의를 이용한 반전의 주 내용이다. 하지만 필자는 여기서 해당 편을 단순히 언어유희를 위한 한화가 아닌,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가정하고 읽었다. 필자가 보기엔 그 의도란 마법에 대한 설명이다.

소피는 마법은 시시각각의 불편함을 쉽게 해결해주는 민원형 자판기가 아니야.”라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해당 문장이 무엇을 부정하는지 부터 생각하여야 한다. 첫번째는 시시각각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두번째는 불편함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세번째는 쉽게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두번째라고 하기에는 마법으로 문을 여닫고, 도서관과 서재용의 마법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첫번째 혹은 세번째일까? ‘쉽게라는 단어는 상대적인 것이다. 예를 자동문 마법은 문을 여닫는 것보다 더욱 . 그렇기에 마법은 쉽게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세번째 가설도 아니다. 그렇기에 소피의 말의 의미는 첫번째, ‘시시각각에 방점이 찍힌 것이다. 그렇다면 마법은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일까? 그 답은 자연스러움에 있다.

이전에 필자는 마녀들의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따로 리뷰를 한 적이 있다. 마녀들의 식문화가 자연스러움을 우선으로 하는 것 처럼 마법 또한 자연스러움에 기반을 두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은근 많이 들어맞는다. 자동문이 필요한 곳은 그 장소의 특징으로 인하여 자동문이 있는 편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특정 수요나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그렇기에 시시각각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자연스러운 상태로 만드는 것. 그것이 마법이라 필자는 감히 추측한다. 그렇다면 책을 정리하는 마법은 있어도 책장을 옮기는 마법이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라 알 수 있다. 책은 어디를 배경으로 살아가며, 사용되고 어디서 자연스러울까? 책은 정리된 상태로, 책꽂이에 있는 것이 도서관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다. 책과 책꽂이를 각각 대상과 자연에 대입하자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대상이 자연에 녹은 상태일 것이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책 정리는 책이 놓인 환경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행위라는 것이다.

하지만 책장의 이동은 자연스러움이라 하기에는 대상은 있지만 자연이 없다. 만일 책장이 목공소에서 막 만들어진 이후 옮겨야 되는 상황이라 가정해보자. 책장은 목공소에서 만들어졌기에 그곳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책장을 옮기는 마법은 그 자연스러움을 깨뜨리는 행위이기에 해당 마법이 없는 것이다. 반대로 도서관이 이사를 가면서 책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책장은 도서관에 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다. 하지만 책장을 그 자연에서 떼어내는 행동은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부자연스러운 행위다. 물론 어쩌면 단순히 사람이 옮기는 것이 더욱 싸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사람을 써서 저렴하게 옮기는 것이 시장경제라는 자연에서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마법은 부자연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자연스러움과 마법에 대한 관계성은 마지막 바퀴벌레와 차륜의 동음이의의 개그에서도 드러난다. ‘수레 사냥용 마법은 왜 없을까? 그건 차륜이 길가에 나타난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런 마법이 있을 이유가 없다. 류사의 독백인 ‘’탈것을 사냥한다고 말하면 다른 마법사들조차 비웃을 것이 분명했다.”에서 드러나듯이 마법이 있는 세계에서도 탈것을 사냥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흔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차륜 사냥은 인간의 손으로 해내야 되는 것이다. 바퀴를 사냥하지 않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바퀴는 제 자리를 찾아 제 역할을 (굴러가는 것) ‘자연스럽게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마법이 아닌 인간의 망치로 바퀴를 사냥 해야만 한다.

이렇듯이 현대 마녀학 입문은 또다시 빈 공간을 이용하여 내게 리뷰를 쓰게 만들었다. 마법이란 무엇이고, 언제 나타나고 언제 사라지는가.   이 세계에서 마법의 쓰임은 무엇인가. 아직 잠정 결론 수준이지만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회차었다. 다만, 만일 내 추측이 맞을 경우 나는 이 세계관의 소름이 끼치는 비밀(딱히 숨긴 것은 아니지만)을 마주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차륜이 아닌 바퀴벌레, 그것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있는 그런 생물이다. 앞에서 사용한 키워드를 이용해 말하자면 바퀴는 어디에 얼마나 있든 자연스러운존재이며, 그렇기에 마법은 오히려 바퀴의 편일지도 모른다. 현대 마녀학 입문의 세계에서도 그 흉측한 것을 음악과 오로라로 정화하는 것이 아닌, 현대 과학의 힘으로 박멸해야만 하는 존재라는 거다. 아니, 오히려 바퀴가 마법을 쓰며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나는 이 두렵고도 그럴듯한 비밀을 리뷰에 올린다.. 자연 마법적 대량 번식 바퀴벌레라니, 작가는 언젠간 이 논란을 해명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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