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자의 SF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더 비기닝 [The Beginning] (작가: siehoo,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7년 12월, 조회 133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 아쉬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한국이 살아남은 과정이 너무 자의적입니다. 일본 열도를 지진이 침몰시키고, 중국은 자국에 핵을 날리고, 유럽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통치고 아프리카는 언급도 되지 않죠. 그럼에도 한국은 멀쩡함. 아무튼 멀쩡함! 이라고 하면 이상하단 생각이 드네요. 특히 최근 한반도도 지진의 영향을 받는다는걸 떠올려 보면 너무나 자의적이고 편의적인 설정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작품 내부적으론 사실 큰 문제는 없지만 이게 현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가란 의문을 품게 되는 디테일이 너무 많습니다. 아까 말했던 아프리카를 제외한 것이나, 만주쪽에 핵이 떨어지고 환태평양 조산대가 격렬하게 활동했지만 한국은 괜찮음! 하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나 혹은 ‘한국 연방’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통일 기조는 다릅니다. 한국과 북한의 통일 정책에서 연방국가를 말하는 것은 북한이고 한국은 한 나라가 되자는 기조인데, 작중 북한이 붕괴하고, 김씨 일가가 도주했다는 설정에서 여전히 김일성의 연방국가를 이야기 하면 이 디테일 괜찮은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또한 의문이 드는 단어는 ‘진화’ 입니다. 진화는 이 소설의 핵심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로 쓰였네요. 진화에 어떤 목적과 방향성이 있나요? 물론 창조론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합니다. 생물은 유성생식과 돌연변이 등을 통해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그중 생식에 도움이 되지 못한 유전자들은 도태되지요.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어떤 유전자는 왕성하게 생식을 하는 데 도움이 되어 다음 대량으로 퍼지지만 이 때문에 자원을 다 소모해 멸종하기도 합니다. 이건 한 세대에서 반짝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세대를 아우르는 하나의 경향이고 현상입니다. 그러나 작중에서 진화는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이는 디지몬이나 포켓몬스터의 진화를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소설 내의 진화는 ‘진화’로, 제가 이 분단에서 정의한 진화는 그냥 진화로 작성하겠습니다.

굳이 ‘진화’ 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작중 등장인물의 입으로 도구를 쓰는 것은 진보에 불과하지만 유전자를 개조하는 것은 진화다!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작중에서 유전적 변화=진화 라고 설정하는 장면일 테니, ‘진화’를 작품 내에서만 통용되는 특수한 단어라고 봐도 무방할거 같습니다.

이건 큰 문제는 아닙니다. 일관된 용법으로 쓰이니까요. 다만 각성 같은 용어로 쓰였거나, 혹은 설명이 좀 더 충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네요.

 

SF라는 장르는 어떻게 정의될까요?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데이먼 나이트의 “내가 손가락을 들어 SF라고 가리키는 것이다!” 지만, 이건 너무나 자의적이고 직관적이죠.

편의를 위해 발달한 과학기술에 따른 변화된 미래상을 그리는 장르라 정의하겠습니다. 그 때문에 맨 처음 디테일이 현실과 다르다고 열변을 토한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닌 유사한 다른 세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생각하면 저런 비판은 의미를 잃지만, 동시에 이 작품의 장르 또한 SF가 아니게 될 테니까요.

제가 파악한 소설의 기초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구는 의지를 가지고 있고, 인류의 방종을 더이상 견디지 못해 인류를 말살하려 합니다. 이런 위기 때문에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진화’를 하게 됩니다. 누가 ‘진화’를 하는지는 어떤 선택과정이 개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을 포함해 등장인물들은 아직 이 원리를 파악하진 못했죠. 그러나 급변하는 자연환경 때문에 ‘진화’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 와중에 과학기술을 통한 신체개조를 통해 ‘진화’를 선택하는 사람들 또한 등장합니다. 그 와중에 기존에 ‘진화’를 독점하는 가문들이 있고, 이들은 인류의 진화를 막기 위해 ‘진화’한 자들을 죽이려 합니다.

소설 내적으로 볼때 대립각이 뚜렷하게 서지는 않습니다. 41화나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의 실체는 커녕 자연적 ‘진화’와 인공적 ‘진화’를 한 사람들의 관계조차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아요.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이미 진화한 집단은 새롭게 진화한 사람을 모두 적대하는 걸까요? 그러면 자연히 ‘진화’ 한 사람과 인공적으로 ‘진화’ 한 사람을 굳이 구분한 이유는 뭘까요?

작중에서 이 둘은 다른 종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러면 총 세게의 대립각이 있는 걸까요? 이미 진화한 기득권,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호모 인텔렉투스, 그리고 과학기술을 통해 본인들을 업그레이드 한 호모 아티피셜. 인류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린다면, 비욘드 어스에 나오는 세가지 대립축-순수, 조화, 우월-을 떠올리게 만들지만, 분명 발달된 기술에 따른 변화된 미래상을 보여주는 SF가 되겠죠.

물론 그렇게 진행되지 않아도 과학기술과 자연선택의 대립이 그려질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분명 SF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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