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밑에서 연고 없이 살아가는 노숙자 슐러에게는 그림을 좀 그린다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러다, 어떤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자신이 어느 정도인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니르젠베르크’ 성으로 들어가 살게 됩니다. 이 ‘니르젠베르크’ 성의 성주 ‘칼스텐’이 예술을 사랑하고 돈 없는 예술가들에게 숙식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제공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운이 있나 의아하긴 하지만 다리 밑에서 배곯는 상황보다야 훨씬 낫지요. 게다가 얘기를 들어보니 감금되어 살거나 성 안에서 일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고요. 당연히 예상치 못했던 일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슐러는 점점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36화까지 연재된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는 ‘니르젠베르크의 천사, 야행성 동물, 밤의 매복자, 머리맡의 그을음, 꿈꾸는 자들의 정원’ – 현재까지 총 다섯 챕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시작은 “이런 길이 있는지 몰랐어요. 비밀 통로인가요?”라는 슐러의 질문으로 시작하고요. 보잘것 없는 주인공이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되어 겉보기엔 그럴 듯한 공간(니르젠베르크 성)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갈수록 행운인지 불운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에다가 성은 겉보기랑 달리 음침하고 그러다 꿈자리까지 뒤숭숭해지고….이런 설정입니다. 설정만 보면 호러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끔찍하다거나 센 묘사라거나 등은 없습니다.
웹 연재라는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분량이 길지 않고, 그렇다고 ‘읽은 것도 없는데 끝나네?’ 이런 허무감이 들지 않게 적절하게 다음 화로 넘어갑니다. 이 리듬이 아주 좋습니다. 저는 다음화를 바로바로 누르면서 계속 읽었어요. 물론 이 리듬에는 단순히 적절하게 분량을 끊어줬느냐를 넘어 소설 자체의 장점에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만요. 첫번째 챕터인 ‘니르젠베르크의 천사’에서는 사건보다는 캐릭터와 배경, 이야기의 발단을 소개하느라 좀 호흡이 느립니다. 그러다 회를 거듭할수록 복선이 쌓이면서 이야기가 점점 강해지고요.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아마 결말까지 가면 이 재미가 폭발하지 않을까 싶은데 읽어봐야 알겠지요. 굉장히 매끄럽게 술술 읽히는 소설입니다.
그런데 이 매끄러움이 좀 삐그덕거린다고 느껴진 부분이 첫번째 챕터였어요. 몇 가지가 있어요.
우선 이런 설정의 소설에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주인공은 인간이기도 하지만 하나가 더 있죠. 사건이 발생하는 니르젠베르크 성이 다른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설정을 설명하는 첫번째 챕터에서 기괴한 성 묘사-외부 묘사나 내부 묘사나-가 성공적이라고 보이지는 않았어요. 이미지가 잘 안 떠올랐어요, 설명이 좀 간략한 느낌이라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다음으로는 성주 칼스텐 캐릭터의 문제랄까 그렇습니다. 말은 가난한 예술가 지원이라고는 하지만 보나마나 검은 속내가 있을 것 같은, 선해보이지는 않는, 비밀이 있을 것 같은, 사건의 원흉일 것 같은데….말이 많습니다. 말이 재밌는데 많아도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도 않아요. 칼스텐은 가난한 예술가의 친구를 자처하며 “그랬소, 저랬소” 존대를 합니다. 하인 취급이 아니라 존중하는 의미라는 건 알겠습니다만 이런 ‘~소’ 말투가 지금의 소설에서 이전만큼 많이 쓰이는 말투가 아니지요. 이 말투가 등장하는 것만으로 낯설고 어색한 느낌을 받아요. 그런데 칼스텐은 이 말투로 시종 고수하면서 말까지 많습니다. 칼스텐이 등장해서 말만 하면 이야기가 늘어지는데, 칼스텐은 주로 첫번째 챕터에서 등장해요. 저는 이런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소설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초반에 슐러와 독자에게 많은 기본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요. 그런데 그게 왜 꼭 칼스텐 입을 통해서 제공되어야 합니까? 원흉으로 보이는 당사자가 직접 얘기를 해주니 나름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읽어보면 별 정보가 아니예요. 이 캐릭터만 나오면 언제 퇴장하나 싶은 거예요. 나중엔 말만 많아서 친구 없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더불어 어쨌든 다른 신분의 사람이 꼭 이런 말투를 고수해야 존중이 되는건가, 한 명이 반말을 하고 한 명이 존대를 한다고 해서 친구가 되지 못하나 이런 의문도 들었어요. 칼스텐이 중요한 캐릭터 같은데 몇 살인지부터 시작해서, 성격이나 외모나 뭔가 계속 흐릿해요. 물론 칼스텐 덕분에 디트마일이나 다른 조연들이 상대적으로 생생해지기는 합니다.
계속 도입부인 ‘니르젠베르크의 천사’를 지적하게 되는데 그만큼 뒷부분이 좋았기 때문에 이 도입부가 아쉬웠어요. 어떤 묘사에는 리체르카 작가님이 너무 조심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표현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좀 기가 죽어있다는 느낌이랄까요. 좀더 막나가도 될텐데…좀더 약을 팔아도 될텐데…. 니르젠베르크의 천사 5~8화 부분에서 느꼈습니다. 뒷 화를 읽을수록 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초반에 느꼈던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웠던 걸지도 모르겠지만요. 아예 뒷부분에서 슐러가 위험에 처한 부분을 1화로 가져와 시작하고 슐러가 입성하는 과거로 돌아가는 구조가 어떨까 싶기도 했습니다.
36화까지 읽고 나니 결말이 꽤 앞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어떤 결말이 날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이제 캐릭터들한테 정이 붙었기 때문(칼스텐 제외)에 빨리 안 끝나고 좀만 더 오래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면 외전으로 좀더 봤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요.
덧. 밤의 매복자(2) 편의 시취 / 시독은 한자 병기를 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