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습니다. 어디까지가 인간인 걸까요.
반은 물고기고, 반은 인간이라면, 반은 말이고 반은 인간이라면, 그러니까 인간이라고 해야할까요? 인어와 어인, 어떤 것을 인어라고 부르고 어떤 것을 어인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걸까요.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는 그것에 관한 소설입니다.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인, 팔이 세 개 달린 농구선수로 말이죠.
아까 언급한 인어로 예를 들자면, 몸통, 허리를 경계로 해서 상반신 부분이 인간이라면 인어로 취급하고, 그와는 반대로 하반신 부분이 인간이고 상반신 부분이 물고기라면 어인으로 구분하고는 합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리가 말이면 미노타우르스, 하반신이 말이면 켄타우로스. 요컨대, 외모도 분명히 인간의 본질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죠.
그렇다고 해서 외양이 인간인 것과 인간이 아닌 것을 완벽히 구분해 주지는 않습니다.
외모는 이전과 동일하지만 장기의 80퍼센트를 기계로 대체한 인간은, 과연 인간이라고 선뜻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신체는 인간의 것과 동일하지만, 인공지능이 조종하고 있다면, 그건 인간일까요? 팔이 세 개 달린 인간과 외계인의 혼혈은 인간인 걸까요, 외계인인 걸까요?
분명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개개인이 다 다를 것입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글의 주제와는 별개로, 아래부터는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이야기하자면, 이 리뷰는 두 번 작성되었습니다. 리뷰를 쓰는 건 언제나 무섭습니다. 그러니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을까, 잘못 짚은 게 있는 것은 아닐까,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걸까요.
고민했습니다. 저는 어디에 집중했었어야 하는 걸까요. 왜냐하면 첫번째 리뷰는 이것과는 완벽히 상관 없는 주제인 노력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리뷰를 쓰면서도 생각이 많았습니다 굳이 우주인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등장하는 영상은 미장센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가족애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 외계인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 가족과 같이 있었던 것에, 추억에 대해서 행복을 느꼈다는 걸까요? 과연, 방해가 되는데도 주인공이 팔을 자르지 않은 이유를 알겠습니다. 비록 모양이 다르더라도 인간이 인간으로 있을 수 있게 하는 것, 작가는 그런 심오한 주제를 말하고자 한 걸까요? 아니면, 제가 처음부터 전부 완벽히 잘못 파악한 걸까요.
이건 글의 여운이 남는 걸까요, 아니면 의문이 남은 걸까요?
간결하고 세련됨이 분명 그 매력인 단편소설이기는 하지만, 서술의 집중이 조금 잘못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