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라봐주세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창밖을 바라보니 (작가: 천가을, 작품정보)
리뷰어: soha, 17년 11월, 조회 86

이 리뷰는 천가을 님의 단편 3개+1개에 대한 통합 리뷰입니다. 리뷰에서 다루는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이 가득합니다.

 

 

천가을 작가의 작품들, 적어도 이 리뷰에서 다루는 작품들에는 공통적인 정서가 흐르고 있다. 그 정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나를 바라봐주세요.’

 

이 리뷰에서는 천가을 작가가 이 주제를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에 대해 탐구해보려고 한다. 이 리뷰는 개인적인 해석에 따른 것이며,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을 수 있다.

천가을 작가가 2016년 10월 25일에 쓴 첫 단편인 ‘창밖을 바라보니’로부터 시작해보도록 하자.

 

 

이 작품은 작가가 이 주제를 탐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소설에는 A, B, C 세 등장인물이 존재하며, 그들은 같은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이 소설에서 사실에 가장 근접한 것은 C뿐이다. A와 B는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말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일까?

A는 5층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두 명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하며, 그들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A는 이 일이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적어도 그가 관측한 내용대로라면 이 결론은 나무랄 바가 없다. B는 편의점 창문을 통해 두 명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관측하며 남성이 여성을 쫓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B는 이 일이 현재는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이지만 이 일을 신고할 경우 자신과 관계가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신고를 하지 않고, 이 일은 그녀와 관계가 없는 일이 되며, 그녀는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

A와 B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가. A와 B는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했다

나. 사건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A와 B는 결국 이 사건과는 관계가 없는 인물이 된다.

작가는 유리창이라는 상징을 덧붙여 독자에게 자신이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A와 B에게 있어 이 사건은 ‘창밖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 일이기에 그들은 사건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 사건은 그들에게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렇다면 C는 어떨까?

C는 자신의 식당 안에 들어와 자신을 숨겨 달라고 애원하던 아이를 식탁 아래에 숨겨 준다. 앞서 했던 것처럼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다. C는 사건에 참여하였고,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된다.

라. C는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하였다.

이러한 두 내용은  서로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각각의 명제들 간의 인과관계이다. 소설 속 묘사만으로는 모호한 내용이 있지만 작가는 1(원인)->2(결과)와 3(원인)->4(결과)의 구조를 소설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사건에 참여하는 일,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일,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일은 모두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며, 그 결과가 된다. 즉, 그 세 가지 일들은 모두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사건에 참여하는 것

2. 사건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것

3. 사건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볼만한 점이 있다. 사건은 인물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위의 세 가지 내용에서 사건을 인물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A1. 인물과의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것

A2. 인물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것

A3.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이 세 가지 내용들은 작가가 주제를 해석하는 핵심적인 도구가 된다. 검은 후드를 쓴 사람들에 쫓기는 아이의 외침이자 작가의 주제인 ‘나를 바라봐주세요.’에 제대로 응답했다면 그 사람은 이 세 가지 항목을 모두 이행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이 항목들을 이행하는데 성공한 C의 독백을 빌려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누구에겐 그저 평범한 소음이겠지만, 어쩌면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그 소리는 도움을 구하는 누군가의 외침일 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러한 주제는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향해 있다. 이 작품 안의 등장인물들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다. A, B, C의 형태로 지칭되는 등장인물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인물들이다. 작가는 마치 뉴스 보도에서 그러하듯이 그들의 나이, 성별, 직업을 병기해둔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무표정과 그들 사이의 웅얼거림을 묘사하며 작가는 “여러분은 A와 B와 다를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는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야.”, “불쌍하군.”, “어쩔 수 없었어.”라고 생각하며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는 독자에게 작가는 C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어떻게 하면 아이를 구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 해답은 관계맺음에 있다.

‘창밖을 바라보니’에서 관계맺음의 조건을 작가가 묘사하였다고 한다면 다음으로 살펴볼 단편에서 작가는 이상적인 관계맺음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예전에 썼다고 언급한 단편 ‘당신만을 위한 책’을 살펴보도록 하자.

 

 

여자와 책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흥미롭게 만드는 점은 작가가 ‘책’을 관계 맺기의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점과 그 책이 가지는 특성이다. 소설을 해석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작가가 주제를 해석하는 세 도구들이 무엇인지 되짚어보도록 하자.

A1. 인물간의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것

A2. 인물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것

A3.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이 소설이 앞서 살펴본 소설인 ‘나를 바라봐 주세요’와 다른 점은 A3에 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A3이 어려운 관계맺음을 이 소설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전문서적란에 꽂혀 있는 어려운 책이며, 이로 인해 다른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당신만을 위한 책’에 등장하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책’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라도 여기에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은 그 안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관계맺음과 ‘누구라도’라는 말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A3에 따르면 관계맺음을 위해서는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누구라도’와 관계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 책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책은 자신을 오랜 시간을 들여 바라봐준 여자와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책은 제목처럼 ‘당신만을 위한 책’이 된다.

관계맺음의 대상이 책이라는 것은 또 다른 재미있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책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자신 안에 들어 있는 모든 글자들을 숨김없이 내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책과의 관계맺음은 적어도 A3 항목에 있어서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또 다른 쟁점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A3는 처음부터 가능한 일일까? 이상적인 관계맺음과는 달리 현실에서 다른 사람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물론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상적인 관계를 묘사하고 싶었다라고 논의를 마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독자에게 약간 석연치 않은 점을 남겨둔다.

이런 식으로 소설을 분석해보면 이 소설에서 그리는 A1과 A2의 비이상성과도 마주할 수 있다. 책과의 관계맺음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그리는 관계는 근본적으로 단방향적일 수밖에 없다. 그녀가 떠난 후 11년이 지날 때까지 책은 그녀를 찾아 길을 떠날 수 없었고, 오직 그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낭만적이고 동시에 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수동적인 관계를 과연 진정한 상호작용이라고 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만한 여지가 있다. 작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약간의 현실성을 희생하면서 책이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여 스스로를 떨어뜨리는 결말부를 만들어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독자는 작가가 보여주는 인간관계가 가지는 허점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니’와 ‘당신만을 위한 책’은 서로 반대되는 곳에 존재하는 단편들이다. ‘나를 바라봐 주세요’라는 외침에 대한 서로 다른 응답, 현실적인 관계들, 이상적인 관계와 그 한계 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이 소설들에 담겨 있으며, 이들은 작가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다양한 방향으로 나타난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소설들을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낼 때 사용할 수 있는 기준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살펴본 작가의 다른 단편들과는 다른 단편 하나를 짧게 살펴보려고 한다. 다른 소설들이 나와 다른 사람 간의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면 이 소설은 나와 나 자신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에서 다룰 마지막 단편은 ‘언젠가부터 우리는 크레파스를 안 쓰게 되더라’이다.

 

 

이 단편은 지금까지 리뷰한 소설 중 가장 어려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리뷰에서 지금까지 시도해왔던 방법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내용이 이 소설 안에 들어 있다.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방금 너는 또 내 행동에 대해 나름대로의 추측을 하고 이해하려고 들었겠지. 하지만 그거 알아? 네가 추측한 건 전부 틀렸어. 그런 억측을 바탕으로 나를 이해하려고 하니까 당연히 말이 통하지 않는 거야.”

이 내용을 보고 느낀 점을 직접 설명하는 대신 본문의 문장 몇 개를 더 인용하겠다.

갑자기 무언가가 턱 하고 막힌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나 가슴에 거울 파편이 박혀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으로 작가가 주제를 해석하는 세 도구들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A1. 인물간의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것

A2. 인물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것

A3. 인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당신만을 위한 책’에 대해 살펴 보았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A3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부분에 따르면 작가는 A3이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단편의 끝에서 ‘나’는 못 그리고 부족한 그림, 완벽하지 않은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장 보고 싶었던 바로 그 그림이구나.”

이렇듯 ‘나’는 스스로의 내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A3와는 다른 방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작가는 여기서 ‘이해한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석하고, 쪼개고,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일 것이다. 이러한 논의와 같은 방향에 있는 본문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거야.

아주 큰 그림을.

“하지만 너무 크게 그려서 볼 수가 없어.”

“하늘에서 바라보면 보일 거야.”

위의 논의가 참이라면 A3를 이에 맞게 수정할 수 있을 것이고, 작가가 주제를 해석하는 세 도구를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A1. 인물간의 상호작용에 참여하는 것

A2. 인물과 관계가 있는 인물이 되는 것

A3-1. 인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받아들인다’라는 말은 ‘이해한다’라는 말과는 다르다. A3-1은 A3보다 훨씬 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인물은 더 이상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을 필요도 없고, 남과는 구별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나를 바라봐 주세요’라는 외침에 이 세 도구는 가장 바람직한 답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단편이 다른 것과는 다른 시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소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작가의 글들은 인간관계를 다루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과 자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글에 비추어 볼 수 있도록 해준다. 따라서 리뷰 처음에도 거듭 언급했듯이 이 리뷰는 작가가 생각하는 집필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향해 있을 가능성이 높으며, 작가의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 또한 작가의 글에 대한 각자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뷰에서 운만 띄워 두고 더 살펴보지 못한 점, 그리고 더 많은 소설들을 리뷰에 포함시키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린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남겨 두고 리뷰를 마치려고 한다. 리뷰에서 언급했던 작가의 세 가지 도구를 바탕으로 다음 인용구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인용한 단편은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누군가의 아픔이기에’이다.

 

 

그러니까, 젊은 작가는 오늘도 한 글자씩 이야기를 이어간다.

맑고 투명한 하얀색의 사람들이 펼치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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