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게에 SF의 과학적 정합성에 대해 수다글을 올린 것은 사실 이 작품 때문이었습니다. 뱃속에서 사라진 쌍둥이 얘기로 시작되어 선박의 반쪽이 잘려나가는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했어요. 뭐지, 뭐지, 하면서 계속 읽어가던 저는 작중 물리학회의 발표를 보고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사이비과학을 사실처럼 발표했기 때문이지요. 순간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몰입이 깨지고, 그 탓에 뒷부분을 읽는 데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쏟아부어야 했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게 과학적 정합성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댓글도 달고 자게에 글도 올리고 했는데, 어제 다른 분들 댓글 읽어보고
루주아 작가님과
아침은삼겹살 작가님의 자게 글과 댓글들을 보다보니 제가 이 작품에서 몰입감을 잃은 것은 과학적 정합성의 문제와 함께 개연성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바다에서 배나 해양생물들이 칼로 자르듯이 반쪽이 잘려나간 상황(더더군다나 사라진 부분과 남은 부분의 질량이 정확히 같음. 사라진 부분이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 그걸 어떻게 측정한 건지도 의문)을 작중의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봅시다.
1. 진공 양자 에너지가 불안정해서 높은 에너지의 전자기파가 생겼다.
2. 전자기파가 시공간을 왜곡했다.
3. 시공간 왜곡으로 사건의 지평선이 생겼다. 이것은 블랙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4. 배와 해양생물들이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 때문에 반으로 잘렸다.
5. 물체가 사라진 것은 블랙홀 너머로 정보가 소실된 것으로 봐야 한다. 사건의 지평선은 블랙홀 너머로 소실된 정보가 저장되는 곳이다(홀로그램 우주론)
일단 물리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1, 2, 3, 4 다 각각의 개념을 다시 확립해야 할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5는 사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정보라는 것이 우리가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하는 그런 종류의 정보가 아니라 물질의 엔트로피, 질량, 운동량 같은 물리량이라는 사실에서, 작품 후반에 사람들이 기억을 잃고 치매 환자처럼 행동하는 게 머릿속 정보가 사라져서 그렇다는 설정이 너무 좀 비약이 아닌가 싶지만 그건 그냥 과학적 상상력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뇌 속에서 어떤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치매 환자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1, 2, 3, 4에 대해서는 수긍이 힘드네요. 제가 아는 상식으로 반박하자면
1. 진공 에너지는 말 그대로 진공 상태의 에너지다. 하지만 바다는 진공 상태가 아니다.
2. 전자기파가 시공간을 왜곡하는 게 아니라 질량을 가진 물질의 중력이 시공간을 왜곡한다. 전자기파는 빛, 즉 광자가 일으키는 파동으로 광자는 질량이 없다. 따라서 중력도 없고 시공간 왜곡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저 직진하던 빛이 왜곡된 시공간을 따라 휠 뿐이다.
3. 시공간의 왜곡이 사건의 지평선과 블랙홀을 만드는 게 아니다. 블랙홀이 (엄청난 중력으로) 사건의 지평선과 시공간의 왜곡을 만든다. 즉, 선후 관계가 잘못되었다.
4.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물체가 빨려들어갈 때는 앞과 뒤의 중력 차이에 의해 물체가 스파게티처럼 길게 늘어지면서 부서진다. 칼로 자르듯이 반으로 잘리지 않는다.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는 그 경계 안으로 발을 들이밀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고 그렇지 않으면 빨려들어가지 않는 지점을 말하는 거지, 칼처럼 물체를 자르는 도구가 아니다. 블랙홀의 질량이 아주 클 경우는 스파게티화가 일어나지 않거나 조금만 일어날 수 있지만, 역시 그렇다 해도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에서 물체가 반으로 뚝 잘리지는 않는다.
저는 물리학 책 몇 권 읽어본 게 다이고 물리학자 전공자가 아니라서 저의 반박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쪽으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도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작품이 단순히 과학적 정합성을 해쳤기에 수긍이 힘들다는 게 아닙니다. 물리학자들이 저런 발표를 할 리가 없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물리학회의 발표 장면은 ‘개연성’이 없습니다. 저 학회에 모인 사람들이 정말로 물리학자라면, 저런 가짜 과학을 발표했을 리도 없고, 설사 그랬다 해도 엄청난 반박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SF에서 요구되는 과학적 태도가 아닙니다.
물리학자들이 얼마나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인지를 아시나요? 루주아 작가님 말씀처럼 과학은 엉망진창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 사실이라고 아는 사실이 나중에는 거짓으로 밝혀질 수도 있고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늘 의심을 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수적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의심하려 해도 의심을 하는 그 기준이라는 것이 일단 확립이 돼 있어야 하니까요.
위대한 과학자인 아인슈타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가 정적인 상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우주는 팽창한다는 가설을 내놓았죠. 아인슈타인은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훗날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증거를 찾아냈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죠.
또 아인슈타인이 틀린 게 있습니다. 바로 양자역학에 대해서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반박 논문을 냈는데 그 중 유명한 것이 EPR 역설입니다. 하지만 후대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틀렸음을 증명하는 많은 증거를 내놓았습니다. 아마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었다면 그 역시 내 실수였다고 인정했겠죠.
후대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 말이 다 맞다며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면 우주의 팽창도 양자 얽힘도 알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실 아인슈타인 그 자신이 했던 연구도 결국엔 앞선 대가인 뉴턴의 역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한 것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자는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작중 물리학자들은 현대 물리학을 뒤집는 가설을 발표하면서 증거도 대지 않고 반박도 당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넘어갑니다. 현실에서 저런 발표를 했다면 전 세계 물리학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겁니다. 블랙홀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 같은 사람도 인간의 의식에서 양자역학이 어쩌고 하는 증거도 없는 얘기를 하다가 유사과학 한다고 비판 받았다는 사실을 아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함부로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저는 작가님이 1, 2, 3, 4, 5에서 등장하는 개념을 잘 알고 쓰신 게 아니라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가의 피상적인 태도는 독자가 느끼는 작가와 작품의 신뢰도에 영향을 끼칩니다. 안 좋은 방향으로요. 그래서 댓글에도 말씀 드렸고 이렇게 리뷰를 쓰고 있는데…대안을 제시하자면…작중 내의 현상을 반드시 과학 용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시는 게 어떨까 하는 점입니다. 다음은 제가 이것과 같은 내용으로 썼다면 물리학회의 발표 장면을 어떻게 바꿔 쓸까에 대해 생각해보고 내린 예시들입니다.
1. 어느 물리학자가 위와 같은 가설을 발표했다. 그 결과 그는 물리학계의 뭇매를 맞는다. 하지만 정보가 자꾸 소실되는 바람에 후속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세계가 멸망한다.
2. 물리학자들이 저 현상이 사건의 지평선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소실과 비슷한 현상이라는 합의는 보지만 세부 내용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다 세상이 멸망한다.
3. 물리학회에서 자신들은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발표한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하고 정말로 세상이 그렇게 멸망한다.
마지막으로, 배니싱 트윈과 반이 뚝 잘린 선박과의 연관성은 좋았습니다. 그걸 통해서, 사라진 정보가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라 어딘가에 다른 형태로 저장돼 있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소설 후반부에서 서서히 조금씩 모래성이 부서지듯이 세상이 멸망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저도 세계 멸망 소재를 좋아해서 그걸로 단편을 써서 과학소재 단편소설 공모전에서 수상했습니다.(한 마디로 작가님과 공모전 동창(?)입니다) 그 단편은 ‘판타스틱 리조트 작동 매뉴얼 서문’이라는 작품으로 현재 브릿G에서는 비공개되었지만 리뷰는 남아 있습니다. 저도 그 소설에서 조용히 조금씩 멸망하는 세계를 보여줬기에 배니싱 트윈에서 보이는 멸망 모습에서 뭔가 그것과 동일한 아스라한 감성을 느꼈습니다.
다만 소설 중반에 물리학회 장면은 개연성을 심하게 떨어뜨린다는 생각입니다. 모르겠습니다. 이걸 핍진성이라고 해야 할지, 개연성이라고 해야 할지…아무튼 그 장면을 보면서 물리학자들이 저렇게 할 리가 없는데?가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그 장면이 납득이 되는지 어떤지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물리학자들을 포함해서 물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들은 저 장면을 보고 분명 말도 안 된다고 헛웃음을 지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위험을 굳이 안고 가야 하나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초반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처음에 이게 과학적 정합성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물론 정합성의 문제도 있는데 더 큰 것은 개연성의 문제 같습니다. 저는 이 세상의 멸망 이유를 굳이 과학자들이 가짜과학으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풀지 말고 그냥 미스터리로 남겨 두는 게 더 공포를 자아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제안을 드렸고요. 받아들이는가 아닌가는 작가님의 자유겠지요. 다만 ‘나 말고도 저 장면을 지적할 독자들이 없을까? 비록 직접적으로 지적은 안 하더라도 작가에 대한 신뢰를 잃고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이 듭니다. 솔직히, 죄송한 말씀이지만, 작가님이 댓글에 부연 설명 주신 것도 저는 수긍이 안 갔습니다. 블랙홀라는 소재에 좀 너무 뭐랄까, 집착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그냥 현대 물리학에서 밝히지 못하는 사상 초유의 현상이 일어났다, 이 정도만 해도 플롯은 훌륭히 성립할 것 같고, 차라리 그런 느슨한 암시와 설명이 멸망물이 안겨주는 공포라든가 무력감 같은 정서를 더 잘 유발할 것 같습니다.
긴 리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