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

  • 장르: SF | 태그: #SF #우주론 #블랙홀 #종말 #쌍생아소실
  • 분량: 186매
  • 소개: 항해 중인 선박들이 반으로 잘려나가는 대형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다. 업무차 현장에 나간 현서는 실제로 사고 선박을 마주하게 되고,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얼마 ... 더보기
작가

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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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상태가 영 이래서 육안으로는 확인이 안 되지만…… 여기 입항 서류 보시면 알려 주신 컨테이너 넘버랑 일치해요.”

“도착했을 때도 이 상태였다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니까요. VDR에도 다 남아 있어요.”

매끄럽게 잘린 컨테이너는 사고가 난 정황을 짐작할 수 없게끔 했다. 영화에서 금고를 털어 가는 악당들을 보면 꼭 최첨단 레이저 총 같은 걸 들고 다니며 두꺼운 금고 문을 잘라 구멍을 내지 않는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조금도 비뚤어지지 않은 반듯한 직선으로 고철 덩어리가 잘려 있었다. 나는 컨테이너 쪽으로 홀린 듯이 다가갔다.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쳐진 곳에 가까워졌을 때, 안전 담당자가 중얼거렸다. 올해로 20년 넘게 이 일을 했는데 이런 건 또 처음 봅니다. 나는 업체와 있을 회의를 위해 사고 선박을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나에게 업무 외의 목적으로 사진을 사용하지 말라고 당부하며 안내했다.

창고 후문을 통해 나온 바깥은 매우 바쁘고 복잡했다. 경찰을 비롯한 수많은 관계자들이 집합해 있었으며, 곳곳에 방송 카메라를 든 취재진들도 보였다. 그리고 개미 떼처럼 몰려든 동네 주민들은 경찰의 저지로 멀찌감치 떨어져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압도한 것은 넘쳐나는 인파가 아니었다.

“지난 5일, 국내 대형 화물선이 일본 가고시마 해역에서 선체 전방 절반이 잘려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지난 오늘, 사고 선박이 경북 포항시 영일만 신항에 돌아왔는데요. 사고 직후 일본 예인선 두 척이 손상된 선체를 안전하게 견인하였으나, 갑판 당직 근무 중이던 두 명의 선원과 현재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과 당국 해양경찰은 사고 접수 후 즉각 구조함과 수색 헬기를 투입하였으나 선원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선체 전반부의 행방도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블랙박스와 항만 레이더 기록을 확인하며 사건 경위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소음이 먹먹하게 배경에 흡수되었다. 자로 잰 것처럼 앞이 댕강 잘려 나가 뒤쪽 절반만 남은, 한때는 거대한 선박이었을 고철 덩어리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한낱 인간인 내가 절대로 보아서는 안 되며 볼 수조차 없을,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의 뼈와 근육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았다. 위압감에 숨이 턱턱 막혔다. 선박을 등진 채로 최신 브리핑을 하는 앵커가 티끌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 티끌이 아니라면 바람에 휩쓸릴 수 있을 만큼 하찮은 초파리쯤 되려나.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한 방울 섞인 기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내 삶에서 한 번은 꼭 일어나야 하는 필연적인 일을 마침내 마주한 듯 심장이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