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mmer, [비천] 감상 리뷰
리뷰마감일이 임박한 500코인의 유혹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신화 기반 판타지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동시에 조금은 경계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잘못 건드리면 지나치게 장엄해지거나, 반대로 설정만 남고 감정은 텅 비어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았기 때문입니다.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_-)
그런데 이 작품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제게 남았습니다.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가 더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해야 할까요.
인드라와 아수라, 천상과 윤회 같은 익숙한 신화적 장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몇 화 지나지 않아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신화를 쓰고 있는데, 정작 신화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느낌. 오히려 작가님은 신화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난 뒤, 그 자리에 남은 감정의 잔해를 오래 바라보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1. 윤회는 구조가 아니라 감각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반복”이었습니다. 다만 이 반복은 단순히 사건이 반복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이 반복됩니다. 누군가는 다시 만나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상처 입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은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미 오래전에 금이 간 관계를 다른 시간 속에서 다시 끌어안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윤회는 설정이라기보다 감각처럼 느껴졌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작품 안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결국 다시 만난다는 뜻이고, 다시 만난다는 것은 끝났어야 할 감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 작품의 인물들은 대부분 현재를 살아가지 못합니다. 지금 눈앞의 상대를 보면서도 동시에 오래전의 얼굴을 함께 바라봅니다. 현재의 말 위로 과거의 침묵이 겹쳐지고, 지금의 표정 위에 오래된 감정이 덧칠됩니다. 그래서 [비천]의 관계들은 언제나 조금씩 늦어 있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의 그림자를 계속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빛바랜 불화(佛畫) 같은 작품 읽는 내내 오래된 불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처음 그려졌을 때는 분명 더 선명했을 그림. 붉은 안료는 더 뜨거웠을 것이고, 금박은 더 밝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림은 바랬고, 습기와 먼지와 세월이 표면을 갉아먹었습니다. 어떤 얼굴은 이미 절반쯤 지워졌고, 어떤 빛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바로 그 ‘훼손된 상태’가 더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의 감정들은 대부분 이미 금이 가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도 아니고, 완전한 증오도 아닙니다. 사랑은 죄책감이 되고, 죄책감은 집착이 되며, 집착은 다시 윤회처럼 되돌아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샤치의 편지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인드라를 사랑했습니다.” 이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데, 이상하게 아주 늦게 아파옵니다. 행복했다는 말이 현재형이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지나 가버린 시간을 붙잡는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렸거든요. 그리고 저는 이 작품이 사랑을 ‘구원’처럼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오히려 사랑은 사람을 계속 붙잡아두고, 잊지 못하게 만들며, 몇 생에 걸쳐 같은 자리로 되돌려놓는 힘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장면들은 사랑 이야기처럼 읽히면서도 동시에 저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양면성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3. 눈이 늙어버린 사람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누군가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단순히 상대를 향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선은 기억을 더듬고, 어떤 시선은 죄를 확인하며, 어떤 시선은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붙잡으려 합니다. 처음 인드라가 샤치의 눈을 떠올리는 장면부터 이 작품은 ‘눈’을 굉장히 중요한 감정적 매개로 사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탐욕의 눈. 계산의 눈. 권좌를 바라보는 눈. 그 사이에서 샤치의 눈만은 다르게 남습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눈. 그래서 이것을 읽으며 자꾸 <눈이 늙어버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육체적 노화가 아니라 감정의 피로와 기억의 침전이 먼저 눈에 쌓였다는 의미의 표현인데 적절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오래 살아서 피곤한 것이 아닙니다. 너무 오래 사랑했고, 너무 오래 미워했고, 너무 오래 기억했기 때문에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 슬픔은 젊은 비극의 슬픔이 아닙니다. 뜨겁게 타오르는 슬픔이 아니라, 너무 오래 지속되어 색이 바래버린 슬픔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피로감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4. 반복되는 침묵과 의도된 지루함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반부에서는 감정의 반복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이 작품은 사건 중심으로 질주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독자는 계속 비슷한 정조의 침묵과 상실감, 기억과 윤회의 감각 안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이것이 깊이로 느껴질 것이고, 어떤 독자에게는 정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모두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닙니다. 빠른 전개와 즉각적인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분명 답답하게 느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물들은 쉽게 움직이지 않고, 감정은 시원하게 폭발하지 않으며, 이야기는 앞으로 질주하기보다 같은 상처의 둘레를 맴돕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반복이 단순한 실패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가님이 독자에게도 윤회의 감각을 체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감정이 다른 얼굴로 반복되고, 같은 상처가 다른 관계 안에서 다시 열리며, 인물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하면서도 계속 과거로 되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느림은 게으른 느림이라기보다, 감정을 침식시키기 위한 느림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만 이 방식은 분명 독자를 선택합니다. 조금만 균형이 무너지면 감정은 깊어지는 대신 탁해질 수 있고, 분위기의 반복이 작품 전체를 무겁게 붙잡을 위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천]은 아주 아슬아슬한 균형 위에 서 있는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불안정함마저 작품의 일부처럼 보였습니다.
)
흥미로웠던 것은, 이 작품이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배치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공간 안에 감정의 잔해들을 하나씩 놓아두는 작업처럼 느껴졌습니다.
시선.
침묵.
빛이 닿는 방향.
끝내 전해지지 못한 문장.
누군가의 뒷모습.
말이 끊기는 순간.
이런 것들이 이야기 속에 반복해서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는 그것들을 지나치며, 어느 순간 자기 안의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비천]은 모두에게 친절한 작품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분명 무언가를 남기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남겨지는 감각’이 꽤 좋았습니다.
신화를 읽은 것 같기보다, 신화가 지나간 자리에서 아직 식지 못한 감정의 온기를 만지고 나온 기분이 들었거든요. 그런 작품을 더 오래 기억하기도 하고요.
감상문이라 생각하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약간은 추상적으로 표현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저에게 좋은 시간을 허락해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돌아갑니다^^
Ps) 깁니다요 길어.
중반부에 회차당 100매 가까이 이르는 스크롤 지옥.
좀 더 나눠서 올려보실 수는 없으셨던 겁니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