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무서운 이야기인 척했던 감동적인 이야기
라고요.
부제로 붙인 장르 드리프트를 중점으로 얘기해볼까 합니다. 일단 제가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바디호러’라는 태그 때문이었고, 초중반부의 내용 전개에 있어 그러한 방향으로 기대를 충분히 품을 수 있었으며, 그러한 기대를 벗어난 결말로 내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배신감’이 들었었지만, 이 부분은 제가 독자로서 멋대로 품은 기대감에 대한 반응일 따름입니다. 다른 분들은 오히려 가능성과 감동의 마무리를 더 선호하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중반은 확실히 건조한 전문성이 빛을 발했습니다. 지구로 찾아온 외계 생물군체 리바이어던, 리바이어던이 내뱉고 지구에 순환시키는 용수생물, 그리고 용수생물에 대한 전지구적 연구라는 배경은 최근에 상영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아스트로파지 연구를 떠올리게 하죠. 그리고 이걸 연구하는 연구팀의 일부로서 바다와 나리의 이야기가 조명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용수생물의 특성을 조사하던 중, 작은 착각으로 인해 관찰 및 실험 대상에게 감염 당하게 됩니다. 이전까지 조사 결과로 나온 용수생물의 특징이 인간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한 순간, 바디호러로서 공포와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나게 됩니다. 중반부까지는 서술자의 개입을 최소화했기에 독자가 스스로 몰입하고 상상할 여지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실험과 약간의 실수가 초래한 상황, 그로 인해 시작된 격리와 돌파구를 찾기 위한 모색까지. 호러SF로서 손색이 없는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끝끝내 바디호러로 끝나진 않습니다. 엄연히 따지면 이 작품은 바디호러적 연출을 차용한 SF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이 작품이 주도한 공포는 작품 내에서 스스로 와해되고 해체되거든요. 호러 작품이 꼭 절망적인 결말이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공포로의 참여만 다뤄야 호러인 것도 아니죠. 하지만 호러 작품이 스스로 빚어낸 공포를 공포가 아니라 다른 무엇인가, 그러니까 공포라기보다는 더 긍정적인 무엇인가라고 반전을 지어낸다면 얘기는 달라지죠.
물론 사실만 두고 봤을 때 나리와 바다에게 일어나고 전지구적으로 일어날 변화에 대해 공포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여전히 그것은 공포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의 태도는 그것을 전혀 지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작품의 논조가 완전히 뒤집히게 됩니다. 아예 이러한 나리의 변화를, 작품의 논조 변화를 공포로 삼을 수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나리의 대조군인 바다까지 나리에게 동조되어 그 변화에 동참하고 다른 방향의 긍정을 논하진 않았겠죠.
그러니 본 작품은 바디호러적 공포를 유도하며 그 공포를 뒤집는 반전과 그 반전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곧 포식과 경쟁이라는 지구 생물군으로부터 벗어나 엮임과 악수라는 새로운 생물군으로의 변화와 도약을 가리킵니다)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핵심은 ‘잘’ 전달됐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저는 ‘그럴싸하게 던졌다’라고 답하겠습니다. ‘그럴싸하다’라는 건, 겉보기에, 그러니까 초독에는 확실히 고개가 끄덕여지고 납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고 다시금 돌아보면 어딘가 엉성하거나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일단 작품이 계속해서 안정적인 톤으로 이어지고 있고, 후반부로 넘어가서 다소 감성적인 서술이 많아지나, 그것이 작품을 이질적으로 만들 수준은 아닙니다. 필력이라는 다소 뭉뚱그린 기준으로 볼 때 널을 뛰지 않고, 상당한 수준을 끝까지 유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위화감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눈속임’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나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필력이 없었다면 장르가 바뀌는 순간 위화감에 몰입감이 깨져버렸을 테고, 그렇게 되면 후반부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놨어도 독자에게 곱씹을 가치는 거의 없어지니까요. 적어도 본 작품은 그러지 않았고, 그렇기에 아쉬움을 곱씹을지언정 작품의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됐다는 것입니다.
후반부를 아쉽게 만드는 요소는 퉁쳐서 말하면 “분량 배분(압축)의 아쉬움”이겠고, 구체적으로 따지면,
1. 바다와 나리의 후반부 관계 구도에 대한 아쉬움
2. 바다와 나리의 관계성 변화에 대한 아쉬움
3. 반전에 대한 빌드업 부족에 대한 아쉬움
이렇게 따질 수 있습니다.
바다와 나리라는 페어는 상당히 매력적인 페어입니다. 상식인에 다소 딱딱한 원칙주의자처럼 보이는 바다와, 활달하고 변칙적인 나리의 조합은 전통적이고 유구한 조합이죠. 그리고 그러한 매력을 건조한 서술 가운데 잘 살렸습니다. 초중반까지는요.
하지만 후반부에 가서는 거의 대등하게 이뤄지던 두 사람의 관계가 다소 어그러집니다. 나리의 감염이 심화되면서부터 바다는 나리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나리의 직관과 주도에 의해 실험이 이뤄집니다. 바다는 그러한 나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뒤엔 나리에게 감화되어서 나리의 생각에 동조합니다.
즉, 나리는 육체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쪽이고, 바다는 정신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쪽입니다. 그리고 독자는 용수생물에게 감염될 일이 없으니, 독자 입장에서 주인공으로 바라봐야 할 건 나리보단 바다에 가깝죠. 주동인물인 바다가 반동인물인 나리에 의해 변화되는 구도인 셈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는 처음부터 예고되지 않았습니다. 둘은 동등한 관계에서 출발했고, 동등한 파트너십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나리의 감염이 본격화되면서 사실상 나리가 사상을 설파하고, 바다는 저항하는 듯하다가 이내 받아들이고 변화되는 ‘상하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상하관계로 정의하지 않더라도, 후반부에서 바다는 소극적/수동적이고 나리는 적극적/주동적으로 관계를 이끕니다.
더군다나 작중에서 ‘긍정’하는 방향은 나리의 변화입니다. 즉, 나리처럼 바다도 변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리, 리바이어던, 용수생물의 생태가 ‘일방적인 선’으로 다뤄지고, 거기에 저항하는 바다, 인류는 ‘변화되어야 할 대상’인 ‘악’으로 다뤄집니다.(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선악이기보다는 작품이 ‘긍정’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의 선악으로 바라봐주시면 감사합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독자가 이입하고 주인공으로 받아들이는 쪽은 나리보단 바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다소 이러한 구도가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바다는 통제된 환경에서 변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져 변화를 강요 받아 자발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였으니까요. 그 선택에 자율성이 있다고 한들 찜찜함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바다가 나리에게 감화되어 나리를 돕는 과정도 따지고 서술만으로 따지면 서로 부모님에 대한 어색하고 찜찜한 대화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감정적 교류가 거의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연구원으로서 떠드는 것이죠. 건조한 서술 덕에 둘의 동료애가 결말부의 바다의 결정을 납득할 만큼 자라고 피어났다고 보기에도 다소 비약된 느낌이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결국 ‘바디호러적 공포’를 이끌어낸 용수생물에 대해 작품이 대하는 태도가 ‘공포의 존재=악’에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은 존재=선’으로 180도 뒤집는 과정에서 벌어진 문제라고 봅니다. 반전은 분명 예상치 못한 가능성의 제시로서 좋은 충격을 줄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충격이 준비되지 않은 충격, 곧 여지가 열리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들이닥칠 경우 ‘일방적인 주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 역시 있습니다.
물론 SF적 탐구와 탐구에 따른 반전이 작품 전개의 메인인 만큼, 섣불리 예고하는 것은 작품의 재미를 반감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의식(용수생물이란 긍정될 수 있는 변화)과 작품의 재미 포인트(용수생물이란 바디호러적 공포)가 서로 상반된다면…… 독자로서도 주제의식에 대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네, 저는 근본적으로 장르적 연출과 주제의식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물론 초독, 그러니까 쭉 몰입해서 읽기에 문제가 (일단은) 없고,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큼 재미와 완성도를 갖췄다고 생각하지만, 그 결론이 작품과 주제의식에 대한 ‘호의’로 이어지는가에 대해선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익숙하게 접하던 K-SF 감성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접했어도 본 리뷰의 논조는 바뀌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잘 쓰셨고, 그렇기에 아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