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잔혹해질 수 있는 존재가, 고작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대지신 데헤못은 유일하게 원하는 것이 없던 신이었다. 창조주 아버지에게 권능을 받을 때조차 “남는 걸로 주세요.”라고 말할 만큼 언제나 받아들이는 자였던 그가, 처음으로 원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인간 왕자를.
그는 원하면 왕국 하나를 삽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그가 한 번만 몸을 떨면 샨 왕자의 카필라 왕국도, 아소라 공주의 콜리야 왕국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그런데도 그는 그러지 않는다. 힘이 없어서 포기하는 사랑이 아니라,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거두는 사랑이다. 그것이 이 이야기의 첫번째 안타까움이다.
데헤못의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찾아온 것이 아니다. 다섯 살 왕자가 대지를 손으로 쓸어내리던 날, 명치 언저리에서 처음 올라온 따스한 기운. 세자가 된 날 신당에 이마를 댄 왕자의 절. 그 작은 행위들이 수십 년에 걸쳐 지하 깊숙이 퇴적되어 사랑이 된다. 대지가 그런 것처럼. 오랜 시간 눌리고 쌓인 것이 마침내 광맥이 되는 것처럼.
“저는 마치 제가 커지는 것처럼 그의 성장을 보면 들떴습니다. 지하 동굴 속에서 저 혼자 샨을 엿보며 쾌재를 부른 적이 몇 번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두 번째, 더 근본적인 안타까움이 있다. 수신 에라기딘이 아소라 공주를 직접 만나고 돌아온 뒤 깨닫는 것이 그것이다.
에라기딘은 그 말에 샨이라는 왕자가 왜 이 공주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드디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오만하고 자존심 높으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샨 왕자 역시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었다.
아소라 공주가 샨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아름답거나 용맹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 확신이 두 사람 사이를 잇는 실이었다.
그렇다면 데헤못은? 그는 창조주 아버지에게 권능을 받을 때조차 “남는 걸로 주세요.”라고 했다. 언제나 받아들이는 자, 언제나 배경으로 존재하는 자. 그는 자신이 누군가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전부를 자신이 갖는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데헤못이 아소라에게 진 것은 사랑의 깊이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다른 싸움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그만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데헤못은 그 시점에 이미, 그 싸움에서 지고 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샨에게 사랑받고 있고, 샨은 내게 바뀌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소라 공주의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끝내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앎이 그녀를 당당하게 만들고, 그 당당함이 다시 샨의 사랑을 확인시킨다.
데헤못은 그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는 샨이 자신을 기억조차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했다. 존재를 인식받지 못한 채로 사랑한다는 것은, 짝사랑이란 처음부터 자신을 지워놓고 시작하는 일이다.
삼남매 신 연작은 내내 가족 드라마 같은 신화이자, 신화 같은 가족 드라마였다. 마지막 편도 그 기조를 끝까지 유지한다. 태양신이 어머니에게 볼 뽀뽀를 억지로 당하며 버둥거리는 장면, 수신이 궁전 경비병에게 “어휘력이 너무 빈곤하다”고 핀잔을 주는 장면. 이 가볍고 유쾌한 순간들은 데헤못의 마음이 가지는 무게를 흩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주변이 환하고 시끌벅적할수록 데헤못의 아픔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뭐가 옳은지는 사랑 앞에서 아무 소용없어. 화염 앞에선 대지조차 굳어버리니까.”
어머니인 불의 여신 바흐파테가 건네는 말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이 소설이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드러내는 말이다. 사랑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불 앞에서는 대지조차 굳어버릴 뿐이다.
결말에서 샨 왕자가 신당에 엎드려 땅에 입 맞추는 장면은 소설 전체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큰 장면이다. 샨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 절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데헤못은 안다. 그 입맞춤을 데헤못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로 받는다. 자신의 기억 속에서 샨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으로.
끝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신이, 그럼에도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형태는 결국 그것이었다. 아무것도 빼앗지 않는 것. 아무것도 무너뜨리지 않는 것. 그리고 그래도 여전히, 거기 있는 것. 그가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