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s come true? 감상

대상작품: 차가운 겨울밤의 거리에서 (작가: Clouidy, 작품정보)
리뷰어: 블루라쿤, 17년 9월, 조회 55

한 줄 평: 지금도 기억나? 나 아직도 글쓰고 있다. 

 

 

내 지인들이 간혹 이야기하던 이야기가 있다. 난 낯가리고 소심한 인간이라, 적당히 웃어넘기면서 아무말 않고 넘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무슨 말인가 함은 즉슨, 야, 뭔놈의 소설은 소설이야. 요즘 대세는 웹툰이야. 정 그렇게 스토리같은 짜고 싶으면 만화가를 해, 요즘엔 만화 스토리만 짜주는 사람도 있다잖아. 그런거 하면 되지 패망으로 가는 소설을 왜 쓰냐. 생각 차이일 것이다. 그들은 내 미래를 걱정했다. 그걸 알기에, 화 낼수 없었다. 그들의 주제 넘은 충고에는 나에 대한 걱정이 있었다.

불행히도 나는 고집불통 바보멍청이라서 아직도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쓴다며 핑계를 대며 놀러 다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설을 쓴다. 언제나 난 소설가가 될거야 라며 말하며 살았지만, 절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한 적이 딱 한번 있었다. 군대에서였다. 군대에 있던 시절에, 나는 어떤 활자의 세계를 넘어서, 사회를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아득바득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꿈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밥을 먹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며, 안전하게 자기 위해 집 살 돈을 벌어야 했다. 그 세계에선 꿈을 꾼다는 건, 바보였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굶어죽겠다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의 나는 더 재밌는 소설, 더 잘쓴 소설만 생각하며 살았는데. 사회는 죽느냐, 사느냐의 세계였다. 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인맥이 필요했고, 상식이 필요했다. 나는 모든게 결여된 인간이었다. 이대로 사회에 나가면 굶어 죽기 딱이었다. 난 차갑게 땅바닥에서 자다가 얼음덩어리가 되서 죽은 내가 보였다. 난 두려웠다. 나도 돈을 벌기 위해 살아야하는 구나, 그때 진지하게 내 재능을 검증해보고, 내 현실을 검증해보고 알았다. 난 천재가 아니다. 난 재능이 부족하다. 범재도 아닌 아둔한 최악이다. 나보다 더 잘난 사람, 나보다 더 글을 잘쓰는 사람들도 굶어 죽었다. 그런데 글을 쓴다고? 넌 글을 쓸 자격이 안된다. 빌어먹을 자격. 나는 자격이 없었다. 세상은 자격이 필요했다. 내가 착각했었다. 자격은 하늘에서 부여된 값진 것이 아니었다. 아둥바둥 살면서 남의 것을 뺏어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사업가가 되려 했었다. 돈을 벌고 싶었다. 그렇게 빌어먹을 돈이 문제라면 벌겠다. 어짜피 남의 것을 빼앗아가면서 살아가야하는 세계라면 가장 악독하고 잔인한 사업가가 되서 돈을 갈취하며 살겠다. 이건 생존의 문제니까. 남들도 그렇게 사니까. 그게 뭐가 나빠.

나는 내 안에 있는 과거의 잔재들을 지웠다. 예를 들어, 상냥함이나 착함은 내 돈과 시간을 뺏으니 없애야 한다. 도덕성은 행동을 제한시키니 도덕성을 버려야 했다. 겸손함은 무시받기 쉬우니 오만하고 거칠어져야 한다. 결국 이 어설픈 연극을 계속하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살아남기 위해서야.

그 변화는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전혀 좋은 변화가 아니었다. 색채의 의미가 사라져, 세상은 흑백사진처럼 형태만 구분된다. 맛있음과 맛없음은 가격의 의미로 구분된다. 사랑은 전부 멍청이들의 망상되고, 봉사는 돈이 안되는 헛짓이 된다. 사람은 값어치로 만들어진다. 값어치가 없는 인간은 알 필요가 없었다. 난 비싼 인간이 되어야 했다. 비싼 사람이 되지 않으면 죽고 비싼 인간만 살아남을 것이다. 사람은 돈이다. 모든 건 돈이다. 빌어먹을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다. buy와 live는 같다. 그땐 그렇게 믿었다.

결국 내가 틀렸다는 걸 알게 된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내 안에 잠든 열등감과, 독선, 아집들이 사고를 일으켰다. 우울감이 내 몸을 잠식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사람은 없고 돈만 보였다. 난 고독해졌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니 날 위로하는 동기들과 선임이 돈으로 보였다. 그로테스크한 심상이 날 잠식했다. 우울감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았다. 뿌리 깊은 독을 지워버리지 않는 이상, 어떤 행위를 해도 이 우울감은 다시 날 잠식할 것이었다.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맛있는 음식이 좋았고, 달콤한 사랑에 빠지고 싶고, 친구와 우정을 나누며 즐겁게 노니고 싶었다.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으로 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돈이 그렇게 중요해? 뭘 하고 싶어? 생존 하는 것 이상으로 무엇을 바라니?

꽤 긴 시간동안 나는 내 스스로와 이야기를 나눴다. 방황은 계속 됐다. 그 후, 나는 다시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의 나는 맛있는 음식을 감탄하며 먹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사랑 이야기에 열광하며, 사람을 사람으로 본다. 그때의 나쁜 버릇들이 간간히 나오지만, 조금씩 고치고 있다. 글을 쓸때가 난 제일 행복하고 즐겁다. 난 아마 계속 이렇게 살겠지.

그럼에도 내가 소설세계로 돌아온 건 특기할 만한 일이다. 소설계가 힘들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쓰면 굶어 죽는다는게 마냥 틀린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난 소설을 쓴다. 아직 출판도 못한 애송이 작가이지만 나는 글을 쓴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나에게 그것은 의미가 없다. 내 글이 순수든 장르든, 호러든 스릴러든 내 이야기에서 중요 하지 않다. 만화 스토리를 써내는 것 역시 나쁘지 않지만 난 소설을 쓴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믿는다. 난 활자와 이데아 사이를 넘나들며, 황금같은 문장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나에게는 소설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었다. 많은 작가님들은 앞의 말을 공감할 것이다. 난 영화 카메라가 없어서 소설을 쓰는게 아니고, 그림 작가를 못그려서 소설을 쓰는게 아니고, 시나 시나리오를 몰라서 소설을 쓰는게 아니다. 소설이 좋기에 소설을 쓰는, 간단 명료한 진리에 입각해 쓰는거다.

차가운 겨울밤이 주는 메시지는 나에게 방황하던 시절 나에게 던지던 물음을 떠올리게 했다. 아직도 내 어머니는 공무원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며 날 직책한다. 나는 그때마다, 어머니가 말하는 공무원이 가치있고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전혀 행복하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전 글을 써야 겠습니다. 하고 사과드린다. 소설 주인공이 3명의 사람을 만나듯, 나 역시 그런 사람을 만난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설득으론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을 뿐이다.

내 어린 시절에 주변에 같이 글쓰던 사람들은 더이상 글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 ‘배신자’로 말하면 편하겠지만 그들을 배신자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은 어느 누구도 배신한 적이 없으니까. 나 역시 한번 배신하고 다시 돌아온 2중 스파이인 셈이니, 그들을 탓할 마음이 전혀 없다. 여기에서도 어떤 누군가가 ‘배신자’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배신자’보단 그들을 ‘모험가’라 칭하고 싶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 모험을 떠난 것이다. 마치 향수에 이끌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안타까워 하거나 미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새로운 고향을 발견해서 잘 살고 있을테니까. 가끔 그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글은 창작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다른 많은 사람도 이 소설에서 용기를 받았으면 좋겠다. 진정 그걸 원하다면 포기할 필요 없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살을 에고, 잔뜩 싸인 눈이 당신을 고립시키더라도, 보물을 찾기 위해 떠나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은 아름답다.

 

이 후, 소설에 관련되어 아쉬웠던 부분.

제목이 공간적 배경만 설명하는 것은 아쉽다. 내용 구성은 좋으나, 제목이 내용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차가운 겨울밤의 거리를 보고, 강한 흥미를 느끼거나, 주제의식을 엿보긴 힘들다. 제목 짓기가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제목은 소설의 완성도를 높힌다. 비유하자면 제목은 사람의 얼굴인데, 호감가는 얼굴을 보면 첫인상이 좋으면 이후의 태도도 좋아보이듯, 제목이 가진 힘은 강력하다. 저급하게 비유하자면, 소개팅을 나갔는데, 스타일은 완전 내 스타일이다. 근데 얼굴이 민낯이라 호감이 떨어지는 그런 기분이다.

주인공 남자에 대한 공감을 더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정보가 적다는 점으로, 주인공을 자신에게 투영하기에 나쁘지 않지만, 남자는 관찰자가 아닌 사건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다. 주인공에 대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장치들이 구비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주변 대적자로 나타나는 세 사람 역시 그렇다. 한 캐릭터로 느껴지기 보다. 갈등하는 시기에 만나는 군상의 관념으로 느껴졌다. 위와 같이, 독자가 투영하기엔 나쁘지 않았으나, 생동감이 흐려졌다.

포크 가수를 중심으로 두었는데, 포크에 대한 분위기가 너무 적게 느껴졌다. 포크 가수라는 요소를 어디에 바꾸더라도 상관없지 않은가? 만약 데스 메탈 가수나, 시인으로 바꾸더라도 아무런 지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포크를 중심으로 다루었다면 포크라는 요소의 맛을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무리의 설명이 사족으로 느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마지막에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든다. 빼버린다고 해도 큰 지장은 보이지 않는다.

 

만족스럽게 읽었다. 한번 쯤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