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노래 [메르시아의 마법사]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메르시아의 마법사 (작가: 김성일,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9월, 조회 155

1. 들어가는 말

전작인 [메르시아의 별]뿐 아니라 프리뷰, 공지, 추천사 등 다 읽지 않고 아무 사전 정보 없이 1화부터 읽어 나갔다.  [메르시아의 마법사(이하 메르시아)] 마지막 화 45화를 다 읽고 시계를 보니 아침 7시 반이었다. 밤을 꼬박 새운 것이다. 그 정도로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처음에는 전작인 [메르시아의 별]과 연재란에 있는 다른 메르시아까지 읽고 리뷰를 쓸 계획이었지만, 먼저 올라온 애스디님의 [[메르시아의 마법사] 리뷰 – 멸망한 나라에서 희망을 부르다.]가 워낙에 양 작품을 아우르는 좋은 리뷰이고,  작가의 공지까지 읽고 나니 마음이 변했다. 본 리뷰는 감상만을 적은 것이며, [메르시아]을 딱 한 번 읽고 나서 적은 것이라 내용 파악을 잘못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즉 스포일러로 보이는 부분이 스포일러가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러 확인 절차 없이 처음 느낌 그대로 적고 상당히 두서 없는 글이 될 거다.

 

2. 메르시아의 마법사

 다 읽고 나서 첫번째로 떠오른 건 이 소설이 내가 지금까지 브릿g에서 읽어본 장편 중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은 소설 내부의 공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메르시아]에는 총 세 명의 주인공 – 에메르, 아리엔, 유마 – 이 등장하는데 한꺼번에 나오는 게 아니라 한 회에 한 명만 나온다. 세 캐릭터의 이야기, 즉 세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보통 이런 형식의 소설이면 매회 바뀌는 주인공이 1인칭 시점을 사용해 자신의 감정이나 사상을 밝히는데 중점을 둘텐데 주인공만 바뀔뿐 3인칭 시점을 그대로 유지한다. 주인공이 셋이라는 말은 주인공이 속한 공간도 셋이라는 뜻이다. 두 명의 주인공이 번갈아 등장해도 까딱 잘못하면 한 축이 느슨해지는데 [메르시아]는 무려 셋이다. 그런데도 셋 다 끝까지 중심을 지킨다.

세 주인공은 각각 자신과 과거를 회의하거나 사명을 완수하려 하거나 책임을 지려고 한다. 초반엔 마치 이들의 운명이 예정되어진 것 같다. 그러다 이들은 자신이 궁금했던 사실을 찾고 선택하고 결정한다. 소설밖의 나는 계속 이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길 바랬고 바랬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원했던 걸 찾고 자신의 힘으로 선택한다.

 

3, 책임의 ‘유마’

처음에는 세 주인공이 같은 시간대의 다른 공간을 점하고 있는 줄 알았다. 1, 2화에 등장한 두 주인공 얘기까지는 함께 사건을 따라갈 뿐이었는데 ‘유마’가 주인공인 3화에서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유마’가 주인공인 회마다 이 느낌이 점점 강해져서 잠시 독서를 멈추고 내 안의 이 느낌이 뭔가 따져봤다.

유마가 등장할 때만 평야가 펼쳐지고 사람과 말이 달린다. 소설 속 공간이 좌우로 쫙 펼쳐진다. 검은 왕의 세력이 유마 일행을 가로막긴 하지만 어쨌든 건물이나 고성`높은 산 이런 지형물이 방해물로 등장하진 않는다. 마법의 힘이든 기계의 힘이든 사물이 가로막을 뿐이다.

처음에는 ‘동경’인 줄 알았다. 우리는 도시화된 세계에 살고 있고 또 좁은 한국이니까 공간에 대한 동경인 줄 알았다. 또 이게 판타지 장르 자체가 가진 힘인가란 생각도 했다. 창조된 세계가 ‘동경’이란 감정으로 힘을 얻는건가 했다. 하지만 읽을수록 ‘동경’이 아니었다. 장르 자체의 힘도 아닌 것 같다.  ‘그리움’이더라. 그 땅을 향한, 그 공간을 향한. 그리고 이는 [메르시아] 소설 자체가 가진 힘이었다. 

초반 실날같이 느껴지던 그리움은 회가 진행될수록 더 커진다. 절절하다. 때로는 애틋하고 가끔은 서럽다. 그리움이 커질수록 이 공간은 파괴될 것이고 사라질 것이란 예감이 드니까. 유마의 ‘메르시아’는 계속해서 읽는 나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이토록 강하게 끌어당기는 공간이라면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유마 파트가 강해질수록 상대적으로 ‘에메르’는 미묘하게 약해진다.

 

4. 회한의 ‘에메르’

[메르시아]의 시작은 습격 당한 에메르이다. 1화부터 배경 설명 대신 사건을 배치해 몰입감과 속도를 높인다. 나는 소설속 세계가 아무리 낯설다 해도 사건과 캐릭터가 선명해질수록 그들이 속한 배경도 저절로 선명해진다는 쪽이라 이 방식이 좋았다. 덕분에 계속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소설들은 초반에 이 낯선 세계가 얼마나 낯선지를 설명하려 하는데 내 입장에서는 대부분 그게 별 도움이 안 되고 몰입을 방해할 뿐이다. 읽다보면 세계를 당연히 알게 되기에 배경 묘사는 왠만큼 사건과 캐릭터가 선명해진 후 뒤에서 읽는 걸 선호한다.

시작부터 에메르는 많이 다친 것 같은데 시작부터 용(용으로 봤음)이 나타나 왕이 되라고, 그게 당신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첫 느낌은,

지가 뭔데?

였다. 지금까지 용이 나오는 소설이라고는 [피어클리벤의 금화] 딱 한 편 본 내 입장에서는 ‘여기도 또 용이 나오네, 이 장르에서 용은 뭔가 신성한 존재인 것 같다, 음….괴상하군’이었다. 더불어 혹시 판타지 장르는 남자가 왕이 되는 게 정해진 세계인가, 그럼 마법사는 구색맞추기로 여자 하나 꽂아넣나, 하지만 [엑스칼리버]의 멀린은 아저씨였지….머리가 아픈데,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니 1화가 제일 어렵고 낯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사건 중심이니까 무사히 다음화로 넘어갔던 것 같다.

에메르는 일찌감치 왕이 되라는 계시를 받았기에 독자인 나는 그에 걸맞은 행보를 기대하게 된다. 메르시아 세계에서 왕이란 게 뭔지, 어떤 식으로 옹립되는지, 어떻게 왕위 쟁탈을 풀어나갈지 궁금했다. 하지만 에메르는 계속 회의하고 때로는 회한에 젖는다. (회의`회한 단어를 딱 붙이기에는 약간 미묘하게 결이 다른 느낌도 드는데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에메르가 계속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이 더뎌지지는 않는다. 단지 그 방식이 너무나 낯익다. 너무 익숙하다. 회한에 잠긴 중년 남자 주인공. 중년의 여자 주인공이었으면 에메르처럼 옛 남자 수시로 찾아가거나 회한에 잠기지 못했을 거다. 물론 이건 에메르 탓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그간 너무 많이 본 캐릭터였다. 캐릭터로만 봤을 때 에메르가 가장 통속적이다.

 

5. 사명의 ‘아리엔’

아리엔 이야기는 유마나 에메르에 비해 좀더 개인적인 여정을 그린다. 어떤 고난이 닥칠지 모르지만 그래도 마법사니까 잘 해결할 것 같고 여차하면 중도 포기하고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다른 파트보다는 좀더 안심하고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등장인물도 적었고 다른 둘에 비해 고생을 좀 덜하겠거니 싶은 느낌이랄까. 아리엔이 소설의 완급을 조절해줬던 것 같다. 아리엔이 구사하는 마법이 신기해서 더 보고 싶기도 했다.

 

 

[메르시아의 마법사]는 다 읽고 나면 전작인 [메르시아의 별]이 너무나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기꺼이 더 알고 싶다는 말이 맞겠다. 나는 여기서 만난 캐릭터들을 더 알고 싶고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너무나 궁금하다. 알고자 하는 희열같은 게 샘솟는다.

 

***몇 가지 덧붙임

1) 일대일 싸움 묘사가 아주 선명해서 이미지가 바로 그려진다. 상대적으로 패싸움 묘사는 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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