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평: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
호러를 호러답게 만드는 것은 연출이다. 그렇다면 호러를 규정하게 만들고, 중심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공포의 대상이 무엇이냐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것들을 이야기해보자면, 귀신, 흡혈귀, 생물학 병기, 좀비 등이 있을 것이다. 전부 공포스럽지만 각각의 연출과 스토리는 다르다. 재료의 맛을 살라니는 조리법이 다른 것과 동일하다. 예를 들어 좀비물의 조리법을 확인해보자. 좀비는 죽었다 살아난 시체다. 혼자보단, 다수로 나오고, 한 마리를 간신히 처리한다고 해도 처리해야하는 물건은 잔뜩 있다. 그런 좀비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좀비들이 마을 혹은 도시를 점령한 연출을 사용한다. 또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도 좀비가 된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안타깝게 죽어서 좀비가 된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 만큼 무섭고 슬픈 것은 없을 것이다. 호러의 맛은 연출에 있지만 연출은 재료의 조리법일 뿐, 결국 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제일 중요하다.
위의 예시는 직접적으로 공포를 주는 실체를 가진 것들이지만 어떤 실체를 가지지 않고 공포를 주는 것이 있다. 실체를 가진 공포는 어느정도 쉽게 조리가 가능한 방법(클리셰)가 있지만 이런 실체가 없는 공포의 조리법은 무척이나 까다롭다. 이런 소재는 작가의 연출력만큼 공포를 주기 마련이다. 난 흥미롭게 작품 ‘숙희’를 봤다.
숙희는 작은 사회에서 오는 공포와, 파멸을 중심으로 잡았다. 실체가 없는 공포에서는 그나마 흔한 소재이지만 까다롭긴 매한가지다. 나는 작가의 신중한 손놀림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이 효과적이었는지는 천천히 설명하겠다.
호러 소설을 다른 영화나, 게임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요소가 한정적이다. 다른 곳에서 적극적으로 기용되는 점프 스케어, 흔히 말하는 깝툭튀가 불가능하다. 소설의 구조적 형태에서 나오는 한계인데, 다른 장르는 정보나 감각을 1차적으로 받아드리는 형태이기에, 갑작스런 정보 삽입이 가능하다. 작품-정보-독자. 이런 정보 삽입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소설의 경우에는 2차적으로 정보를 받드리게 된다. 작품-활자/-(독자의 상상)-독자 그렇기에, 갑작스러운 정보 삽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포를 직접적으로 들어내는 것이 힘드니, 다른 방법에 집중했다. 정보제한이 그것이다.
정보제한은 어디까지나 내가 혼자 만들어낸 말이지만, 이런 요소는 흔히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살인마가 칼을 들고 미친듯이 뛰어온다. 살인범의 흉악한 얼굴이나, 날카로운 칼, 발소리가 공포를 준다. 직접적이다. 하지만 정보제한으로 다른 느낌의 공포를 줄 수 있다. 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문 틈에 박혀있는 칼만 보여준다. 문 틈에 박혀있는 칼은 직접적인 공포를 주지 않지만, 이후에 독자 스스로가 공포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근처에 살인범이 있을까?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숙희에서 이런 요소를 활용했기 때문이다. 마무리에 전체적인 감정선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매우 적절하게 사용되었다. 이런 연출을 위해, 화자를 외부인과 이야기의 추적자로 삼은 것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런 주인공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점에서 독자가 이입하기 매우 편하다. 만약 외부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마무리 연출이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을 것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좀더 실감나도록 액자 안에서 평이한 소설 투로 이야기하기 보단, 할아버지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를 진행했다면 독자들이 좀더 주인공에게 이입하기 좋지 않았을까 한다.
제목에 대해선 아쉬웠다. 보통 이런 식으로 메인이 되는 소설 속 요소를 제목으로 차용한 작품에서는 그 요소가 거의 대부분의 것을 표현해야한다. 무난하지만 좋은 제목이 되기 힘들다. 모든 포커싱이 그 요소와 얽혀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숙희는 분명 중요한 캐릭터이고, 또한 사건의 중심이 되긴 했지만 중반 이후부터 공포는 마을 사람들과 숙희의 어머니가 주기 때문에, 숙희가 중심에서 떨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숙희라는 제목은 조금 아쉬웠다. 무난하고 어울렸지만 숙희의 비중이 축소되는 부분이 있고, 소설 내 포커싱이 어느정도 분산되어서 아쉬웠다.
소설의 첫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숙희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그게 이 소설의 전부 아닌가? 제목부터 숙희고, 첫 부분이 숙희의 이야기임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설명은 구구절절하고 독자를 피곤하게 한다. 이런 부분은 굳이 설명해줄 필요 없다.
1 부분에 묘사가 설명으로 대체된 부분은 아쉬웠다. 글의 전개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었지만 묘사를 통해 긴장이나 후반부의 괴리감을 불러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몇몇 요소들에서 좀 더 활용할 여지들이 보였다. 그래서 만족스럽지만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