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중독이 시작되는 순간 감상

대상작품: 살아 있는 식물은 검역을 거쳐야 합니다 (작가: 렌시, 작품정보)
리뷰어: 뇌빌, 3시간 전, 조회 5

정체나 효과, 위험성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뭔가에 빠져드는 건 어떻게 시작되는 걸까, 에 대한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운 타국 생활,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더 발전되진 않은 후배와의 관계, 결정적으로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느낌. 집에 들어오는 길 마주친 사람에게서 과일을 사 오는데, 평범한 (하지만 먹어 보니 무척 맛있는) 사과와, 뭔지 모르지만 무척 궁금한 정체 불명의 검은 과일이 들어 있었지요.

신경 쓰이는 점들이 있다 보니 사과 하나씩 맛 보고 이상한 과일을 어쩔까 생각하는 부분의 묘사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나라면 어쩔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사과야 어떻게든 먹겠지만 (맛도 있었다니까요…) 검색해도 찾을 수 없는 과일이라면 과연 어쩔 것인가… 정말 무서운데, 더 무서웠던 것은 그런 사소한 고민을 나눌 만한 친구나 가족이 주인공에게 없었다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경우라면 버리기 전에 같이 맛 보는 것 아닐까요?) 각종 범죄나 사기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피해자를 고립시키려 하는지 이해 되기도 했어요. 흔히 아는 과일이야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사서 먹는다지만, 이런 일이 없으려면 최소한의 인증/규제 체계가 있어야겠구나 농반진반 생각해 봅니다. :tears-joy:

여튼 정체 불명의 검은 과일에서 “경이”를 맛본 주인공은 금세 그 과일에 집착하게 되고, 뭔지는 몰라도 심어 보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외롭고 취약하지만 상당히 진취적인 분… 이상한 과일답게 식물은 금세 쑥쑥 자라고 그만큼 주인공의 집착도 나날이 강해지지요. 귀국한 후배의 조심스럽지만 선명한 구애에도 식물 이동을 구실로 거절하기에 이릅니다. 너무 안타까운 순간이지만, 최소한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관계라는 데에서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평생 충성해라!)

딱 여기에서 호러로서 끝나도 인상적이었을 텐데, 소중한 인연 덕분에 한 번의 고비를 넘고 나서 맛보는 조금은 웃기고 소름끼치는 결말도 참 좋습니다. 왠지 자기 계발, 건강 관리 이야기스럽지만, 세상의 모든 외로운 분들이 자기만의 인간관계 안전장치를 가지길, 온갖 위험에 취약한 지경으로 스스로를 몰지는 않기를 바라 봅니다. 그리고 작가님 어떤 과일 맛을 상상하며 쓰셨을지 궁금합니다.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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