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대하는 법 감상

대상작품: 저녁을 먹고 (작가: reoalice, 작품정보)
리뷰어: 라이트, 4시간 전, 조회 4

〈저녁을 먹고〉는 아주 짧은 단편이지만, 읽고 나면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는다. 익숙한 사물 하나에서 시작된 균열의 순간이
삶 전체로 번져나가는 감정의 흐름이 섬세하면서도 서늘하다.

이모의 부고를 들은 화자는 엄마의 자살 이후 이모의 집에서 지냈던 시절을 생각한다. 삶의 방식이 전혀 달랐던 두 사람 —
치열함으로 불행을 밀어내려 했던 이모와 유약함 속에서도 다정했던 엄마를 떠올리며 화자는 ‘불행’이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싶은 걸 하면 행복해질 거야.”

이모와 달리 삶을 감성적으로 바라본 엄마의 태도는 오히려 이모의 치열함보다 더 강한 힘으로 화자에게 남는다. 치열하게 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 속에는 삶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단단한 유연함이 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 속절없는 무너짐의 끝에서 엄마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그 죽음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치열함의 마지막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화자는 이모가 말한 불행을 가져오는 이빠진 그릇들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흔적들이 담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밥을 먹는다. 그 행위를 화자는 불행을 먹어치운다고 말한다.

‘불행을 먹어치운다’는 말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먹는다”가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행위라면 “먹어치운다”는 단어에는 훨씬 더 전투적인 생존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그녀는 엄마를 덮쳤던 불행, 그리고 이모가 평생 두려워하며 피해 다녔던 불행을 이제는 스스로 삼켜 없애버리듯 “먹어치운다”고 말한다.

그건 불행을 이기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불행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에서 생을 굳건히 이어가겠다는,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이 짧은 단편이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아마도 마지막 문단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불행을 견디는 대신 일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하루를 보내고 그 하루 속에서 살아간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흘러가며, 그 안에는 누구나 자신만의 역사를 쌓아간다.

불행 또한 그 일부다. 불행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다.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 이에게는 불행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살아 있는 하루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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