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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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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장르를 선언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정의에 있어 엄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언이라 함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주장하는 것, 그 분이니까요. 에이켄님의 소설 「그림자 잡기」는 호러 소설이자 스릴러 소설로 선언되었습니다. 먼저 이 부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공포 소설은, 독자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소설군을 통칭 합니다. 좀 더 세밀한 기준의 예를 들자면 스티븐 킹은 공포 소설의 장르를 세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로스 아웃으로 더럽고 역한 것. 호러로 인간의 힘으로 대처할 수 없는 감정인 것, 그리고 테러로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소설「그림자 잡기」는 어디에 속할까요. 물론 셋 다 해당되는 지점이 있습니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테러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존재에 의해 공격당하여 이에 대처하는 내용으로 정리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릴러 소설은 무엇일까요. 러프하게 말하자면 스릴을 느낄 수 있는 소설 군 모두를 통칭합니다. 좀 더 엄밀하게 따지자면 무언가 쫓기는 이미지를 갖고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려는 목적을 둔 장르 군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는 소설의 내용에서 명징하게 드러납니다.
그림자 잡기라는 놀이를 하던 나는 어느 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에 들었다가 깹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자신을 쫓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 존재는 그림자 잡기 놀이의 규칙에 따라 자신을 추격합니다. 나는 이를 피하기 위해 방공호로 발걸음을 옮기고 거기서 기이한 체험을 합니다. 일제시대 때 학살이 벌어지던 때의 총소리와 목소리가 들린 것입니다. 다만 나는 이것을 정확하게 인지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그렇게 간신히 탈출하여 집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무언가에 쫓긴다는 것은 스릴러로써 성립하게 하고, 기분 나쁘고 소름끼치는 것에 의한 세계 침범이 호러로써 기능하게 합니다. 이 둘이 성립되면서 호러 스릴러로 정의될테구요. 그렇다면 정의는 이 정도에서 멈추고 본질적으로 공포감이 성립되는 근원을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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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에 있어서 규칙은 놀이가 성립되기 위해 설정된 법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연이 섞이면서 놀이는 다채로워 집니다. 그림자 잡기에서 규칙이자 우연은 그림자의 가변성에 의한 것일 테구요. 이처럼 놀이란 즐겁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즉 목적이 즐거움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목적이 바뀌면 어떨까요. 바로 생존으로요.
목숨값이 천칭에 올라오면서 게임의 법칙은 곧 자신을 얽매는 족쇄가 됩니다.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순간 소설은 바로 비극으로 끝나겠죠. 그 비극으로 치달을 것만 같은 긴장감 속에서 소설은 재미를 형성합니다. 이 지점에서 놀이가 내포하는 우연성은 긴장감을 형성하는 촉매가 됩니다. 결과가 정해진 게임은 재미가 없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게임은 사기거나, 뭔가 하자가 있거나 할 겁니다. 이 가변적인 요인으로 판단의 유예와 갈등이 생기고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재미를 느낍니다.
근데 이 재미에 앞서 독자는 게임에 참여한 주인공에게 이입하면서 공포감을 같이 느낍니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곧 독자의 감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인 공포가 재미로 연결되는 것은, 독자의 공포 체험하는 상황이 안전한 곳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공간에서 느끼는 공포는 스릴을 느끼는 매개일 뿐 우리를 위협하는 무언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밤 역시 공포감을 느끼는 주요한 기제 중 하나 입니다. ‘밤’인데 ‘홀로’ 도움 받을 수 있는 사람 없이 ‘나’는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습니다. 아이라는 약자라는 포지션에서 겪게 되는 이런 상황은 상당히 위협을 느낄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소설은 이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내딛습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 때 사용되었다던 방공호 입니다.
4.
소설에서는 방공호로부터 무언가 벌어졌음을 간략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어떤 비극이 벌어졌으나 그 것의 진위를 명확하게 묘사하지는 않습니다. 그로 인해 해당 사건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나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아이가 겪었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밤의 공포는 진짜일 수도 있고 진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양가성 속에서 호러는 환상의 망설임처럼 휘발되어 사라집니다.
보통의 호러는 이런 모호함을 통해서 환상성이 드러난다고 저 개인은 주장해왔는데요. (정확히는 토도로프의 환상문학서설을 인용한 것이지만요.) 이를 통해 소설은 진짜와 가짜 사이를 진동하면서 우리에게 좀 더 깊은 인상을 줍니다. 이 모호함의 기능은 동시에 우리의 삶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잔향을 느끼게 합니다. 어느날 밤 우리가 그림자 잡기 놀이를 한다고 해도, 스티븐킹의 분류에 의한 테러 같은 인물이 우리의 삶이 침범당할리는 분명 이성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지도 모를 것이다라는, 말줄임표를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호러 소설의 백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진짜와 가짜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 지 모를 일종의 교차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