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비평

대상작품: 감겨진 눈 아래에 (작가: 전혜진,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7년 5월, 조회 458

우리는 지금 ‘뭔가 굉장히 틀린 말을 대단히 당당하게 말하면서, 일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남자들과 함께 세상을 살고 있다. 굳이 페미니즘을 들먹이면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허구헌날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의 목소리나, 인터넷 상에서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목소리는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아도 매일같이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여성 혐오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행위가, 나아가 여성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숱한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 번쯤 경험해 보지 않은 여성들이 있을까. 그러니 이 작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는, 근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소설 속 허구적 상상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이라 정말 무시무시했다.

여자를 사람이 아니라 걸어다니는 자궁 취급하며, 그저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가축으로만 보는 듯한 정책이 부족한 인적자원을 위한 거라는 국가의 말이 실제로 19세기 즈음엔 있었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와닿는 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고도 소름이 끼쳤다. 여자를 징집해다 강간해서 인적자원을 늘리는데 쓴다는 발상자체도 무서웠지만, 그것이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라 현재의 어느 지점에서 선을 그으면 언젠가는 도달할 지도 모를 미래의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 말이다.

여자들을 덜 가르치고 안 가르쳐서 일찍 결혼시키면, 짐승들 짝짓기 하듯이 아이들을 낳아 댈 지도 모른다니… 어처구니없지만 실제로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법한 이들이 떠올라 마냥 소설 속 남의 얘기 같지 않게 들렸다.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인격체라고 말하면 경멸적인 어조로 페미냐고 물으며, 그녀들을 멸시할 수 있는 온갖 낯설고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 내던 평범한 젊은 남자들’은 2017년의 지금 이 세상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국가의 말도 안 되는 인권 침해 정책에 반발해 프랑스로 망명을 결심한 세실의 부모. 그리고 20년도 한참 넘는 세월이 지나 완전히 성인이 된 세실은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여행을 떠난다. 한국은 여자가 혼자 여행할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실은 실제로 그곳에서 여성들의 인권 침해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경험해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국수속 중에 공항 경찰들에게 붙들려 짐짝처럼 군대로 끌려 가고 만다. 그곳에서 군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신체 검사를 받고는 3급으로 판정받아 강제적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병역을 완료하기 전에는 나갈 수 없으며, 그것은 2년 안에 한국 국적의 아이를 임신해서 아이를 낳거나 복무 기간을 100프로 채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원래 여자의 몸은 아이를 낳게 만들어져 있으니, 이런 취급을 받더라도 죽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뒤로 세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차마 입에 담기도 끔찍한 지옥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너무도 무시무시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지만, 작품을 읽는 내내 어쩌면 가까운 시일에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말겠다는 공포에 휩싸이고 말았다. 요즘 미드로 만들어져 화제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를 다시 읽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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