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페이지에서 읽기 : https://paper.wf/amudoge/20251011_britg
‘재미있습니다’라는 말은 모든 작가가 듣고 싶어하는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듣고 싶다 못해 당연히 들어야 하는 말이라고 여기기까지 하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물론 간혹 젠체하기 좋아하는 작가들은 “재미있다는 건 통속적이라는 소리고.” 하고 볼멘 소리 하기 바쁩니다만 그네들은 그네들 나름의 문법이 있으니 무시하면 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북부대공>의 불가사의한 점이 바로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작가님이 이 리뷰를 읽으신다면 기분 나쁘게 들릴 걸 압니다. ‘재미가 있으면 있는 거지, 그게 불가사의까지 할 일인가.’ 아니, 근데 잠깐만 들어보십시오. 가끔은 ‘이상한데’ 재밌는 게 늘 있단 말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감상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입장이란 말입니다.
예. 확실히 작가의 ‘서술’은 서투르고 급한 면이 있습니다. 조선 왕국의 시조인 ‘이성계’를 모티브로 했음이 분명한 ‘북부대공’인 ‘이성수’는 ‘대고려제국’의 남방인 ‘황산벌’로 내려와 ‘아기장군’이 이끄는 왜구를 무찌르고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 실제로 있었던 ‘황산대첩’이 모티브군요.
그리고 여기에 드워프와 트롤, 오크, 다크엘프가 가세한다는 미묘하고 기이한 점은 일단 후술할 것이므로 당장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왜냐면 이 점은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오는 면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작가가 ‘직접 말하기’ 식으로 설명을 하든, ‘보여주기’ 식으로 드러내든 독자에게 납득시켜야 할 부분은 적지 않습니다. 작품은 원고지 19매 분량의 굉장히 짧은 일화만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당장 독자에게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북부대공’이라고 말해지는 이성수는 충분히 소개되지도 않았는데 ‘대고려제국 남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왜적들도 소개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왜적들이 트롤을 동원하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정신이 아득해지는 측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갑자기 왜구의 장군으로 등장하는 아기장수는 ‘아기장수 설화’의 맥락을 독자들이 떠올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을 것입니다. 겨우 떠올린다 하더라도 이것이 적절한 배치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말입니다.
아, 근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건 비웃음이나 농담이 아닙니다. 19 페이지밖에 되지 않지만 이 작품에는 순수한 재미가 있습니다. 조금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는 측면이 있지만, 그런 만큼이나 독자로 하여금 함박웃음을 짓게 만드는 면이 분명히 있단 말입니다.
첫째로 작품 자체가 순진하기 때문입니다. 작가 본인이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를 꾹꾹 눌러담아서 쓴 티가 확실히 납니다. ‘여말선초’라는 분위기에 작가 본인도 흠뻑 취해 있는 느낌이 독자로 하여금 기분 좋게 만듭니다. 감정에는 미숙함이 드러나지만, 그렇기에 겉만 번드르르한 꾸밈이 없습니다.
둘째 또한 작품의 순진함인데, 이는 ‘여말선초’를 좋아하는 것과는 궤가 다릅니다. 언뜻 보면 ‘여말선초’라는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북부대공’이라는 어휘나 드워프와 트롤, 다크엘프들 말이죠. 조금은 이 친구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습니다. <워해머>(40K와 AOS, 판타지를 가리지 않고, 셋 다요.)의 느낌이 조금 납니다. 굳이 안 어울릴지도 모르는 요소를 강경하게 대놓고 넣은 것도, 이 요소들을 좋아하시기 때문이겠죠.
이 두 가지 ‘순진함’이 시너지를 일으켜서, 굉장히 강한 펑크 록 같은 효과를 냅니다. 그 점에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창작의 본연 같은 걸 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장편 개작에 대해서 문의주셨는데, 사실 어떤 말씀을 드리기는 껄끄럽습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의 항해에 괜히 한 소리 했다가 배가 가라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면에선 자신의 항해 방식은 자기 자신만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구요.
그럼에도 이 두 가지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는, 일단 끝까지 써 보면 본인이 알게 되실 거라는 겁니다. 무엇을 알게 될 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 지조차 그건 완결을 내 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 점에서 어떤 형태가 되었든, 끝까지 써볼 것을 한번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천천히 하셨으면 하는 겁니다. 어차피 써야 할 팔자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원래 창작자라는 인간들이 한 작품만 만들고 죽지 않습니다. 작품의 완결이 인생의 완결이 아니니까요. 조금 호흡을 길게 잡고, 천천히 마라톤하듯 완주하셨으면 하는 약간의 바람이 있습니다.
작가님이 오래 꾸준히 창작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면 창작을 이토록 좋아하시는 분이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