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에 대해 제가 증명하고픈 사실들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증명된 사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7년 8월, 조회 606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추천하기에 읽어 본 작품입니다. 마지막 한 방이 꽤 강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좀 그런 쪽을 좋아합니다. 얼른 찾아와 읽었죠. 그 말이 맞더군요. 절로 ‘오!’ 했습니다. 결말에서 톰 고드윈의 ‘차가운 방정식’이란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한 소녀가 우주선에 몰래 숨어듭니다. 오래도록 만나지 못했던 오빠를 그렇게 해서라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죠. 소녀를 발견한 소설의 주인공은 곤혹스러워 합니다. 아니, 곤혹스럽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군요. 깊고도 치열한 갈등에 빠집니다. 바로 우주선이 견딜 수 있는 질량 때문이었죠. 우주선을 타고 우주 항해를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고속으로 운행하면서 우주에 적용되는 모든 물리 법칙을 섬세하게 튜닝해야 하는 우주선인만큼 원래 정해진 질량을 조금만 초과해도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타는 긴급 연락선과 같은 우주선엔 다음과 같은 사항이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밀항자는 발견 즉시 제거하라!’ 그래서 주인공은 갈등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순진무구한 소녀를 버리느냐 마느냐 선택해야 하니까요. 선한 주인공은 그래도 소녀를 살릴 방법이 있지 않을까 계산하고 또 계산합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차가운 방정식은 냉혹한 표정을 지으며 주인공의 기대찬 물음에 고개를 절래절래 지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결국… 네, 결말은 당신이 상상하는 그대로입니다. 자연은 차갑습니다. 그래서 더욱 무서운 것이죠.

이 결말에서 받은 느낌을 그대로 ‘증명된 사실’의 결말에서 받았습니다. 서늘하더군요. 사실 칠흙같이 어둡고 무한히 열린 공간에 홀로 버려지는 것만큼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도 없지요. 버려지는 것만 해도 두려운 일인데…

그러나 아무리 강한 한 방이라 하더라도 결말 혼자서 그만한 힘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만한 한 방을 뻗으려면 만화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원기옥을 만들듯, 기승전에서 골고루 힘을 모아놓아야 합니다. 기승전이 제대로 구축되어 힘을 발하지 않으면, 토대가 약한 건물이 으례 그러하듯이 설령 아무리 놀라운 결말이라 한들 그런 힘을 쓰기도 전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결말이 사람들이 말하듯이 제대로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면 앞 부분의 이야기도 제대로 세공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앞부분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마지막까지 잘 이끌고 갑니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두 영역, 이성과 비이성의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라 할 만한 물리학과 영혼과 사후세계를 접목시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이러나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다음 문장으로 눈을 가게 만듭니다. 이만하면 좋은 작품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지요. 흡인력만큼 다 읽고 난 뒤에 좋은 이야기를 읽었다는 뿌듯함을 주는 건 또 없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가 가진 한 가지 매력이 더 있습니다. 그건 좋은 이야기란 독자 스스로 읽은 그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상력이나 사유를 통해 이야기의 곁가지를 계속 만들어 나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도화지가 된 것과 같아서 독자로 하여금 그 위에다 자신의 상상과 사유의 풍경을 마음껏 펼쳐 그리게 한다는 것이죠. 분명 이 작품을 읽은 분들 역시 저처럼 결말을 빌미로 이런저런 상상을 펼쳤을 것입니다. 아닌가요? 어쨌든, 이런 이유로 저는 이 작품을 좋은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모처럼 일상 속에서 잘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작품 때문에 상상 속에서 한동안 가지고 놀아봤네요. 때로 이야기의 가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늘 몸을 내리누르는 일상의 중력에서 얼마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그러고 보니 흔히 말하는 3대  SF 작가 중의 하나인 아서 클라크‘유년기의 끝’이라는 소설에서 인류 최종 진화의 형태를 이 작품처럼 완전히 중력을 벗어난 순수 에너지가 되는 것으로 묘사한 적이 있지요. 중력에서 자유롭기에 인류는 마음만 먹으면 우주 어디에나 있을 수 있어 우주 전체를 자신의 놀이터로 삼습니다. 이처럼 중력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다란 해방의 단계로 진입하는 것일 지도 모르죠. 우리가 자꾸 이야기를 찾고 즐기는 것이 비록 잠깐이나마 해방의 감각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라면 저는 후자에 판돈을 걸고 싶군요. 연주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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