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정말 많았다. 그 중 가장 길고 진하게 남은 것은 UMC/UW라는, 지금은 래퍼보다는 팟캐스트 진행자 및 대안방송인으로 더 잘 알려진 양반의 명곡 ‘가난한 사랑노래’의 가사 몇 줄이었다. 나는 보통의 힙합을 자기과시적이고 어느정도는 퇴폐적이라고 보는데, UMC/UW는 그렇지 않았다. 이 래퍼는 현실의 이야기를 가공하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먹먹함은 ‘쉬바 앞으로 인생 어케 사냐, 매우 좋(게)되어꾼’ 쯤 되는 것이었다. 이 작품 ‘아이스크림은 빨간색으로’는 그와 비슷한 먹먹함을 내게 선사하였다.
물론 인생이 어쩌구 저쩌구 하기에 나는 아직 덜 자랐다. 새파랗게 젊은,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삶의 역겨움을 토로하는 것도 조금은 우스운 일일 테다. 그렇지만 이런 작품을 볼 때마다 나는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보편적 인생이라면, 찢어지게 가난하여 사랑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인생이라면, 그렇다면 이 나라를 탈출하는 것이 매우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아, 그래도 물론 외국어는 어느정도 할 수 있다는 걸 전제해야겠지만 말이다).
샴페인안에 반지를 넣어준다거나
아니면 꽃을 만땅채워놓고 차 트렁크를 열게하거나
정말로 멋진방법들이 많고 많던데
꽃을 그렇게 살려면 이달 방세는 포기야
차는 빌려쓰면되고 방은 빼줘야되는데
같이 살고야 싶지만 먼저 고백을 멋지게 해야지
그치만 시간이 있을까싶어
너는 하루에 열시간
오빠는 하루에 열두시간을 일하면서지나가고
한달에 이틀을 쉬는데
누워서 TV를 보던지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게 되더라
어쨋건 마음만은 제발 받아달라는
구질구질한 말들은 이제 하고싶지도 않다
–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TV 드라마 속에 나오는 연인들은 매우 반짝거린다. 그 나이에 준세단급 승용차를 기름값 걱정없이 몰고, 번쩍번쩍거리는 레스토랑에서 프러포즈를 하기도 하고, 방안 가득 꽃을 채워주고. 사실 사람은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다. 전 세계의 경제가 호황을 맞은 것도 너무 오래 전의 일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버려야 한다. 여자친구는 하루에 열시간이, 나는 하루에 열두시간을 일하면서 보내게 된다. 두 사람의 근무시간이, 이 작품의 연인처럼, 많이 어긋나있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서루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몇 주가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나는 사람으로서 사랑하고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자친구 없이 산 것이 벌써 3년쯤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지갑이 얄팍하고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어, 누군가와 사귀더라도 제대로 연인관계를 지속해나갈 자신이 없다. 그것이 사치스러운 사랑이 아니라 해도 그렇다. 마음으로는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해도, 가끔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튤립 한 송이를 선물하는 것에서부터 샴페인안에 반지를 넣어준다거나, 아니면 꽃을 만땅채워놓고 차 트렁크를 열게하거나 하는 ‘이벤트’ 말이다. 그런데 그런 멋진 방법으로 나의 사랑을 증명하고나면, 남는 것이 없다. 이달 방세를 포기하던가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 사랑을 하는데에도 어느정도의 자본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가 매우 비인간적인 체제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나는 어느정도 공산주의자이다. 나는 내가 주장하는 공산주의를 ‘극도로 발전한 과학기술을 토대로 하는 공산주의’라고 이야기한다. 북한과는 다른 것이다!).
눈이 꽤나 많이 오는 바람에
지난 겨울엔 걷기만 해도 분위기 괜찮았었는데
넌 잠깐 운적이 있었지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는게 이젠 지겹다고
오늘 너한테 술꼬장만 진탕하고 아무것도 못내밀고
집으로 돌아올래니까 니 생각이 또 난다
그치만 우리한테 자유가 없진 않아
우린 잡일하는 기계는 아니야
작년여름 피자집에서 일하고 있을때
배달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날 끌어안고 미친듯이 소리치던 넌 정말 예뻤어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를 순 없어
남자라면은 누구나 자기 여자에게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을 주고싶어해
옥상에서 빨래를 너는 니 옆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걸 알고 있어도 그래
–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그럼에도 이 작품이 사랑스러운 까닭은 어째서일까.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하루 쓰고 버려지는 존재로 살아가는데도, 이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 까닭은 결국 이들 스스로가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UMC/UW의 노래에서 여자는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는게 이젠 지겹다고 토로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 작품의 연인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지부진한 인생의 엿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은, 애당초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를 순 없어! 우오오오 사랑 만세!
하여튼 이러한 까닭에 나는 이 작품이 굉장히 서정적이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조금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라면 누구나 자기 여자에게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을 주고싶어하니까. 옥상에서 빨래를 터는 여자친구의 옆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걸 알고 있어도, 사치스러운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보석으로 꾸며진 반지를 선물하고, 천연가죽으로 꾸며놓은 자동차를 타고, 영화는 골드 클래스에서만, 비행기는 퍼스트 클래스. 돈이 된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여자친구를 사귀는 데 매우 주저하게 된다.
+ 하나 이상하게 느꼈던 것은, 새해 첫 일출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정부터 대기타는 것이 아니라, 해뜨기 한 시간 정도 전에 출발하는 게 보통 아닐까? 1월 1일이면 얼어죽을 날씨인데 도대체 왜 자정부터 해뜨는 거 보려고 대기하고 있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