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보여주기 위한 한 걸음 <스펙트럴(Spectral)> by Fonda Lee 공모(비평)

대상작품: [번역] 스펙트럴 (Spectral) by Fonda Lee (작가: 별빛의 조각들,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20시간 전, 조회 8

*

 

 

진짜가 아니라고 한 적은 없어요. 완전히 진정성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죠.”

(본문.P48)

 

 

*

 

 

‘가상세계의 또 다른 나’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을 많이 봐왔지만, 주제 면에서는 오히려 가상세계를 배제한 줄거리를 선보인 영화 ‘써로게이트’와 비교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까지도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주곤 합니다. 예시를 들자면, 가상현실 게임을 다룬 애니메이션 ‘소드 아트 온라인’의 경우, 가상세계라는 현실과 분리된 공간 안에서도 현실의 나와 게임 속의 나를 동일화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영화 ‘써로게이트’는 현실세계에서 또 다른 나를 창조할 수 있다는 설정을 보여줌에도, 본래의 나와 창조된 나 사이의 괴리감과 거리감을 강조하며 분리하기 위해 힘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흔히 ‘아바타(Avatar)’라는 말로 정의되는 이 또 다른 육체에 관해서 다룰 때 중요한 것은, 결국 그 육체가 머무르는 공간이 아닌 ‘본래의 나’와 ‘가공된 나’ 사이의 괴리감을 표현하는 데에 있다는 뜻도 되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스펙트럴(Spectral)> 또한 이런 가공된 ‘아바타(Avatar)’가 실용화 된 사회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스펙트럴’이라고 이름 붙여진 가상세계의 육체로 생활하는 것이 당연해진 사회를 배경으로, ‘스펙트럴’ 사용에 거부감을 가지며 나 자신을 보여주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로리’의 수난을 다루고 있습니다. 현실보다 가상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더불어, 나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는 것을 넘어 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을 두려워하는 세상을 과감하게 표현하며, ‘왜 나 자신을 지켜야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완벽한 메타버스를 꿈꾸며」

 

 

언젠가 ‘메타버스(metaverse)’라는 이름으로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의 융합을 제시한는 프로젝트가 유행했던 것을 기억하실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이 ‘메타버스’의 형태를 제시하기 위해 투자에 나설 만큼 커다란 열풍이 일었지만, 막상 그 형태가 우리가 상상하는 가상세계의 융합까지 도달하지 못 한 채 발화점이 꺼져버렸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은 직접 가상세계에서 활동하며 현실과 가상의 벽을 허무는 것이었습니다만, 실제로 나온 결과물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이용해 아바타를 조종하고 메일과 채팅 따위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심지어 CG로 조악하게 만든 맵을 탐험하는 것을 ‘메타버스(metaverse)’라고 포장하는 것은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죠.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 <스펙트럴(Spectral)>은 이런 현실과 가상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세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가상세계에 접속해서 ‘스펙트럴’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분신을 활용해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이 시스템으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스펙트럴’이라는 아바타로 덧씌운 채 만족스러운 삶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생활의 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회사 면접에조차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보다는 ‘스펙트럴’로 가공된 제 자신을 보여주는 것이 인정되는 수준입니다.

 

(P.25) 로리는 생각했다. 미셸 에사키가 실제로도 저런 모습일까? 프리미엄 스펙트럴과 마스크 스펙트럴이 흔해진 요즘, 로리는 자꾸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녀가 보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현실인지, 아니면 정교하게 꾸며낸 가짜인지.

 

흥미로운 것은 이 ‘스펙트럴’ 시스템이 불러온 현실과 가상, 그 역전의 관계입니다. 기본적으로 ‘가상세계’를 주제로 다루는 작품들은 그 현실적인 제약에 신경 쓰기 마련입니다. 가상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까지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제약하는 방식이 그러하죠. 아주 가볍게는 현실에서 밥을 먹고, 가상세계에서 시간을 보내는 식으로 일을 구분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경계를 완벽하게 융합한 사회를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가상세계를 통해 수만 리가 떨어진 장소에서 업무를 볼 수 있으며, 자신의 외모에 ‘스펙트럴’이라는 홀로그램을 덧씌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제시하는 문제적 의식은 이 벽을 허무는 것을 넘어 기울어지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P.28) “요즘 오프라인 행사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아주 좁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해요. 기업이 정말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초-위상― 그러니까 물리적인 현실, 가상현실, 그리고 스펙트럴- 전반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로리’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단편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만 봐도,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역전의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가상세계’라는 주체 덕에 생활이 넓어졌다는 의미가 아닌, 제약이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지. ‘오프라인은 좁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로도 들리지만, 어쩌면 그들에게 현실은 더 이상 고려할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P.72) 제가 운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대형 스펙트럴 이벤트에 가보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젊고, 잘생기고, 몸매도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현실이 아니죠. (중간생략) 이런 현상은 프리미엄 스펙트럴의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는 걸 꺼리게 만들죠….

 

‘로리’는 이런 사회의 균형에 대해 의문어린 시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각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녀는 ‘스펙트럴’을 가면처럼 쓴 채 면접을 보는 지원자에 대해 꺼림칙한 감상을 곱씹거나, 회사 바깥에서 ‘진정한 자신이 돼라’는 구호를 외치며 ‘스펙트럴’에 물들어버린 사회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도 그녀가 보여주는 사회적 문제에 대한 시각은 무척 현실적이고 정확합니다.

 

(P.48) “스펙트럴 사용을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로리는 항변했다. “진짜가 아니라고 한 적은 없어요. 완전히 진정성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죠.”

(P.60) “그렇다고 스펙트럴 안티라거나 그런 건 아냐.” 로리가 강조했다. “스펙트럴 기술이 많은 면에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꿨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내 말은, 너처럼 위스콘신에 살면서 D.C.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지.”

 

하지만 그런 주인공조차도 ‘스펙트럴’을 다루는 데에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입니다. ‘스펙트럴’을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그것을 공격하는 언어들을 몇 번이나 삼키고 수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사회를 바꾸고 싶다며 단체 활동까지 하는 그녀가, 오히려 사회적 눈치를 보고 있는 셈입니다.

 

(P.51) “진정성이 없다? 로리 씨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거야?”

(P.54) “하지만 스펙트럴 기반 행사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사업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한테 스펙트럴을 쓰지 말라고 하고 다니면 안 되지! 그렇게 사회 운동가가 되고 싶으면 마스크 스펙트럴 이라도 써서 직장에서의 정체성은 감추든지 해야 될 거 아니야.”

 

그녀가 자신을 낮추는 이유 역시, 그런 ‘스펙트럴’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비롯됩니다. 그녀가 스펙트럴에 거부감을 가지는 인식 자체를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라는 말로 비하하는가 하면, 오히려 그런 ‘스펙트럴’에 점령된 사회에서 오는 이윤을 역설하며 그녀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일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과장된 언어가 쉽게 나오는 것만 봐도, 이 사회에서 그 시스템의 가치는 뿌리이자 줄기나 다름없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이 모든 것이 회사라는 작은 사회에서 보이는 단면으로 묘사되지만, 그녀가 갖고 있는 인식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되는 셈입니다.

 

(P.102) 그녀에겐 돈이 필요했다. 안정적인 직장이. (중간생략) 프리랜서나 비영리 단체 일만으로는 지금 아파트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객사 회의에 가기 위해 스펙트럴웨이브를 쓰지 않는다면 더욱 그랬다.

 

심지어 로리 본인조차 ‘스펙트럴’을 이용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버틸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인 족쇄로 작용합니다. 즉, 그녀는 신념을 펼칠 수 있는 장 자체가 현실을 근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녀가 원하는 현실 자체가 무척 좁아졌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P.82) “커넥트 라이브라는 공익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한 말들 때문에 지난 몇 주 간 악성 메일을 좀 받았거든요.”

(P.86) 누군가는 이 년 집에 불을 지르고 얼굴에 염산을 뿌려야 한다.

(P.93) 2주후, 후드티를 입은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중간생략) 여전히 올가미를 든 채,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P.95) 로리는 일부러 자극적인 말을 한 적도 없었고, 누군가를 상처주려고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그녀만 이렇게 노리는 걸까?

 

때문에 로리는 이 사회에서 ‘반동분자’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습니다. 작게는 욕설이 담긴 메일부터, 크게는 ‘스펙트럴’을 타고 그녀 앞에 나타나서 위협하는 등 일상을 침범합니다. 그녀의 대응은 ‘시스템의 전원 코드를 힘껏 뽑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회를 쥐고 있는 가상세계와 제 현실을 단절시키는 것만이, 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수단이지만, 이미 현실 자체를 ‘스펙트럴’과 동일하게 보는 사회에서 그녀는 자신의 안전을 장담할 수조차 없습니다. 결국 그녀는 회사로 돌아가 제 자리를 찾습니다. 자신이 거부하던 세상에 결국 제 자신을 숨기기로 결심한 셈입니다.

 

(P.115) “로리?”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그 여잔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더라. 거드름을 피우고 돌아다니면서 남들은 무시하고. ‘진정한 자신이 돼라’는 헛소리나 해대면서, 마치 자긴 특별하고 완벽한 눈송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더라고. 그년은 겁을 좀 먹을 필요가 있었어. 다른 사람들처럼 숨어 사는 게 어떤 느낌인지 배워야 했다고.”

 

사실 이 구절은 로리의 사상에 반발하며 그녀를 괴롭혔던 범죄자의 변명치고는 많은 지점이 엿보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숨어 있다’라고 표현하며, ‘스펙트럴’로 제 자신을 감춰야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합니다. 이것은 가상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에 대한 역설입니다. 가상공간과 벽을 허물고 삶의 공간을 넓히는 것이 이 시스템의 목적이라는 것이 자명한데, 오히려 사람들에게 숨고 감출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껍질로서 작용하는 셈입니다.

 

(P.83) 캘드웰은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 정체성이 아니라 태어난 육체에 의해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협한 차별주의자다.

 

그런 심정을 고려하면, 로리에게 전달된 비난의 언어 중, 유독 이 구절은 눈에 밟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에게 숨어야하는 것은 ‘선택된 권리’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비록 ‘스펙트럴’이라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제 자신이 가공된 껍질이며, 그들이 만족하는 세상이 가공된 사회에 불과할지라도, 자신들의 눈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벽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로리가 이 가공된 세상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도구는. 다음 발췌한 대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P.117) “재판 때 증인으로 출석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변호사와 상의해서 원격 출석도 검토해보세요. 그게 더 낫다고 느껴지면요.”

(P.118) “아뇨.” 로리가 조용히 말했다. “아뇨, 직접 갈 거예요.”

 

형사는 선택지를 줍니다. 범죄자를 직접 마주하느니 거리를 둘 수 있으며 사회가 용인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 ‘스펙트럴’을 제시하죠. 하지만 로리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합니다. 로리는 제 발로 재판장으로 걸어가, 범죄자를 제 눈으로 바라보며 증언하기를 ‘선택’합니다. 로리가 선택한 이 방식은 어리석은 만용이 아닙니다. 신념에 의한 고집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죠.

 

가상과 현실은 그 구분이 명확해 보이지만, 이처럼 ‘선택’에 의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무엇을 가상에서 이룰 것이며, 무엇을 현실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야말로, 이 벽을 허물어야 하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로리의 방식을 ‘옳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재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는 가상과 현실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인간입니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선택했듯이, 로리 또한 자신의 가치를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점만은 염두에 두고 싶습니다. 그것 또한 가공의 아바타로 가릴 수 없는, 제 본질에서 나온 선택일 테니까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소설도 인상적인 작품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백포함 6100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