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합성이 어긋나더라도. 감상

대상작품: 69년 남았습니다 (작가: 아침은삼겹살,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2시간 전, 조회 14

음모론은 재미있습니다.

과학은 명제를 통해 입증됩니다. 명제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입증 가능성과 반증 가능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음모론은 과학의 명제와는 달라야 합니다. 음모론은 절대로 증명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러니 동시에 반증할 수 없고 우리의 머릿속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것이죠.

여기에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음모론은 반드시 끔찍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에 대해선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부정적인건 귀신같이 기억하거든요.

‘법은…… 늘 늦어’

실제로 법이 늘 늦을까요? 물론 모든 안전수칙이 피로 쓰여진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법이 늘 늦는건 아닙니다. 그러나 제대로 작동해 막아낸 법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죠. 올해 봄 대형산불을 모두 막아냈다는 대통령의 트윗이 있었지만 그제서야 인식하는 것처럼요.

아니면 법이 반대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적기조례를 아시나요? 적기조례가 영국의 자동차 산업을 망가트렸고, 이를 통해 법이 어마어마한 자동차 사고와 산업재해를 막아낸 사례로 꼽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아무래도 과도한 규제 사례로 꼽을 것입니다. 인공지능 앞에 적기조례로 야마를 뽑는다면 법이 늦는게 아니라 잘못된 규제로 산업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죠.

작가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자유롭게 예시를 꺼내오고 그를 통해 말에게 눈가리개를 착용시키듯 독자의 시선을 고정시켜 자신이 원하는 결론으로 유도합니다.

작중 등장하는 음모론의 핵심 논리는 완벽한 자기 면역을 제공하는 신약이 수정체의 착상을 막을 것이라는 아이디어입니다. 그 앞뒤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부가적인 것에 불과하고 냉정하게 평하자면 ai와 별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섬뜩함을 주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문장길이에 주목해서 읽어보라고 주문하고 싶네요. 초반부 귀여운 고양이를 어필하는 장면에서는 문장의 길이가 대단히 길지만, 막내 작가를 돌려보낸 이후에는 문장의 길이가 대단히 짧아집니다. 단문, 아니 단어들.

이렇게

속도감에

취해

고개를

좌우도

아니고

아래위로

끄덕끄덕

하다보면

작가가 내놓는 이 카산드라적 예언에 흠뻑 취하게 되는 것이죠.

선동을 위한 후크도 대단히 매혹적인데, ai도 그렇지만 69년 이라는 숫자가 이 설득에 대단히 큰 역할을 합니다. 음모론과 명제에 대해 초반부에 써 두었듯, 이 숫자는 그럴싸할 뿐이지 실제로 증명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노인이 매년 숫자를 줄였을거 같진 않죠. 하지만 짧은 단어들을 읽으며 작가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 순간 이 숫자는 마지 절대적 진리처럼 뇌리에 세겨지게 됩니다.

잘 봤습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