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팬들을 만족시키는 방법을 이해하려는 방향을 찾아가는 방식이… 감상

대상작품: 거구의 남자 (작가: 섭현창, 작품정보)
리뷰어: 태윤, 52분 전, 조회 13

영화나 소설 같은 대중 매체가 등장한 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순수 문학을 비롯하여 SF나 호러, 미스테리 같은 장르들은 저마다의 방향성을 가지고 발전을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중에서도 호러 장르의 발전 방향에 흥미가 많았습니다.

영화의 경우 예전에는 동양과 서양의 장르 구분이 확실했다면 최근에는 서로의 영역 같은 건 개나 줘 버리고 어떻게든 적은 예산으로 대중의 편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점점 거대해져 가는 헐리웃의 영화 시장과 그에 도전하려는 건지 덩치를 키우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을 보면 오히려 크기를 키우지 않고 수작을 만드는 것이 아직 미덕으로 남아 있는 호러 장르는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지켜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현재 동 서양의 호러 장르 색깔 구분은 크게 의미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이면에 흐르는 정서는 여전히 차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양의 호러 장르에서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요인을 인물의 외부에서 찾고 동양의 장르는 내부에서 찾는다는 점도 그 중 하나입니다. 서양 호러 장르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겪게 되는 불운한 상황에 대해 거의 책임이 없습니다. 억지로 꼽는다면 과한 호기심 정도겠지요. 안전하지 않은 상황에 대한 공포가 그들의 편도체를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게 아닐까 혼자만의 생각을 해 봅니다.

동양 호러의 색깔은 권선징악, 인과응보로 표현할 수 있겠지요. 귀신은 절대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본인의 한을 깨끗하게 풀고 사라집니다. 개연성 없는 전개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할까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플롯의 단순함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영적 존재를 통해 돌파해보려 한 게 아닐까 싶구요. 목만 날아다닌다거나 과도하게 피칠갑을 한 영화 속 연출들도 아마 그런 맥락일 겁니다.

이런 흐름에 거대한 변화를 준 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J-호러입니다. ‘링’ 을 필두로 ‘주온’ , ‘착신아리’ 같은 작품들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큰 인기를 얻었는데, 제가 봤을 때 그 작품들에 등장하는 사다코나 가야코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의 허약해 보이는 뼈대를 채우고자 한 것 뿐이지 사실 그 작품들의 핵심은 규칙 괴담에 서양 호러의 색을 입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매우 과도하게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어떤 행동을 하면 죽는다’ 에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같은 개연성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거기 있었으니까, 그 비디오를 집어 들었으니까, 그 집에 들어갔으니까, 기분 나쁜 착신음이 울리는 전화를 받았으니까… ‘텍사스 전기톱 학살’ 이라던가 ‘Wrong turn(한국 개봉명 데드캠프)’ 을 보면 희생자들이 잘못한 건 살인마가 있는 장소에 함께 있었다는 것 뿐입니다. 미국식 호러 감성에 첨가된 것이 규칙 괴담이라는 조미료인데 일본 호러는 보통 저주가 있고 그 저주에 대한 파훼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비틀려고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링’ 에서 저주에 걸린 사람들은 저주를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대부분 실패합니다. ‘주온’ 에서는 더욱 깔끔하게 [저주 받은 집에 들어감→ 죽음] 만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이런 흐름은 서양 호러의 그것에 더욱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 작품 [거구의 남자]는 어떨까요? 서두가 지나치게 길어서 연습장에 쓸 내용을 왜 여기에 적어 놨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 작품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호러의 동양적 감성과 서양적 재미를 모두 담으려고 시도한 작품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일단 소설은 영화와는 달리 시각적 자극을 주기 어렵습니다. 독자의 상상력에 의존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소복 입은 긴 머리의 여자’ 는 실제로 보면야 극한의 공포겠지만 머리 속에서 신선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올리기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이상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반바지에 멜빵 바지를 입은 장신의 백발 할아버지’ 가 제게는 더 큰 자극을 주는데, 왜냐하면 이미 귀신이라는 정의에 익숙한 이미지가 아니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걸 ‘기괴하다’라고 표현하는데 저는 공포 소설에서는 이런 기괴한 분위기가 강한 작품을 아주 좋아합니다. 기괴한 상황과 기괴한 인물은 제 머리 속에서 뻔하게 그리려 했던 공포의 이미지를 비틀어 놓으면서 점점 더 부풀어오르는 듯한 공포를 줍니다. 바로 이 작품의 등장 인물인 ‘거구의 남자’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최근 보았던 그 어떤 작품에서도 보지 못했던 이 독특한 존재는 제가 어렸을 적엔 잘 보지 않던 서양 호러에 빠지게 했던 여러 캐릭터들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일단 이 존재의 행동엔 개연성이 없습니다. 왜 그러는지 아니면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한국적인 오컬트 분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살아있는 사람인지도 확실치 않아 보이는 이 존재는 이 작품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무섭지만 매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작품의 내용은 사실 설명 드릴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만,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최근작 ‘콜렉터’ 나 예전 작품 ‘호스텔’ 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만족하실 단순 명료한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설이다 보니 영화에서는 직접 봐야만 하는 끔찍한 장면들을 독자의 상상력으로 적절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독자는 그저 세 명의 썩을 놈들이 기괴한 존재에게 맘껏 유린당하고 고통받는 것을 찬찬히 즐기시면 됩니다. 세 명의 등장 인물이 천하의 몹쓸 놈이라는 것도 괜찮은 설정입니다. 가끔 미국의 작품을 보다 보면 ‘죄 없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조금 불편해진 적도 있는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불편함이 전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인물 구성이 매우 좋았습니다. 분명 세 사람과 거구는 관련이 전혀 없지만 독자는 세 사람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과응보 하고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고 세 명은 그저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만 저는 ‘이 자식들 꼴 좋다’ 하는 상쾌한 기분으로 완독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말머리가 너무 길어서 중간을 건너 뛰셨을 분들을 위해 작품의 장점을 말씀드리자면

1. 매우 기괴한 상황과 그보다 더 기괴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것 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2. 이야기 전개가 깔끔하고 공포물에 어울리는 상황의 극적인 전환이 매우 뛰어납니다.

3. 개연성이 중요치 않은 이야기지만 뭔가 후련한 느낌을 주는 소설 내 장치들이 좋습니다. 다 읽었을 때 찝찝하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브릿G에 발을 들였을 때, 저를 놀라게 했고 밤 새게 했던 멋진 작가님들과 작품들이 있습니다. [거구의 남자] 를 읽으면서 저는 지금은 활동이 뜸하신 정 도경 작가님이 떠올랐네요. 그 분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 기괴한 분위기와 재기 넘치는 문장에 감탄을 했던 당시의 감동을 오랜만에 다시 느낀 것 같습니다. 호러를 좋아하시는 독자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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