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같은 과장된 목소리? 감상

대상작품: 중저음 목소리의 함정 (작가: 노르바, 작품정보)
리뷰어: 영선, 1시간 전, 조회 12

우선 제가 성우덕임을 밝힙니다. 성우연기 감상에 관한 독립 출판 에세이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현재 흉악한 악성 재고… 폐지로 내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작품을 즐겁게 읽었음을 먼저 전제하고… 다만 작중 “성우의 과장된 연기 같은” 이라는 언급이 있어서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게 저 같은 오래된 성우덕(9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주로 덕질했습니다)에게 이것은…다소 마음에 좋지 않은 말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우들은 에세이나 인터뷰에서 성우 연기 같지 않게 연기해 달라고(=성우 특유의 과장된 연기는 지양해 달라고) 주문 받았다고 증언하거나, 비성우 연기자가 캐스팅된 애니메이션 관련 기사에서도 자연스러운 연기 운운하기도 했었고요. 한국어 목소리 연기 싫어하는 원어더빙주의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한국 성우들의 연기가 현실적이지 않고, 일상적 분위기와 괴리된 오버연기라는 인식과 비난 때문에, 한국어 목소리 연기는 부당한 비난을 받아야 했고, 한국어 더빙을 배제한 원어더빙+자막방송이나 비성우 연기자 더빙연기를 정당화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성우들의 연기를 비판적으로 듣는 사람들은 한국 성우들의 연기가 오버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이고, 위의 내용에 대해 “틀린 비난이 아니잖아”하고 반론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또한 그런 비판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국 성우들의 연기도 시대에 발맞춰 진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있습니다). 다만 제 요점은, 인물의 과장된 목소리가 어떠한지에 관한 정보를, “성우연기”라는 표현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이 성우덕의 마음에 좋지 않은 감정을 심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오해는 말아주세요! 작가님께 “나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책임져라”라고 비난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실 문제의 문장을 보면 성우들이 과장된 연기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우가 하는 오버연기”라는 의미로도 읽힙니다. 아마 그쪽이 작가님 의도 아니었을지?

다만 작가가 전혀 악의 없이, 창작자로서 표현 의도에 의해 사용한 표현이, 의도치 않게 부수적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항상 잠재해있는데, 이런 문제는 참으로 곤란하구나, 하고 생각해 보았을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성우덕이고, 해당 표현에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음에도, 해당 문구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성우처럼 과장된 목소리”만큼 간결하고 명징하게 정보를 전달하는 표현은 달리 없었겠다고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무심결에 상처를 줄 수 있는 표현이란 건 작가가 일일이 체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또 이것이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정확하고 쉬운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하면, 작가로서 회피하기 어렵다는 점이 분명 있습니다(정보 전달은 정확하고 간결할수록 좋겠지요).

비슷한 처지(?)의 표현이라면 “깜깜이”라던가 “촌스럽다” 등이 있겠지요. “병신” “지랄”등도 있겠습니다. 이들 표현은 문제점이 좀 더 널리 알려져있지만, “성우의 과장된 연기 같은…”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는 독자는…. 어쩌면 지구상에 저 뿐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성우덕들은 그냥 넘길지도 모를 일입니다(이 문제에 대해 다른 성우덕들과 논의해 본 적이 없어서 저도 잘 모릅니다).

그런 마당에 제가 작가님에게 “해당 표현은 성우덕에게 큰 상처가 되니, 반드시 다른 표현으로 바꿔라!”라고 요구한다면 저는 블랙컨슈머나 될 뿐이겠습니다. 이 부분을 또 생각해보면, 독자 입장에서도 작가의 표현을 문제삼아 비판하거나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서부터 어디일지 하는 점도 고민해보게 합니다. 웹툰 웹소설의 댓글창 운영에 관한 논쟁도 떠오르는군요.

 

하여튼 작중에서 슥 지나가듯 나온 표현 하나 때문에 이리저리 빙글빙글 생각이 깊어져서, 마침 재미있게 읽기도 했어서 몇 자 남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작중 “성우의 과장된 연기 같은…”이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만, 이 작품처럼 성우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작품이 또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성우덕으로서, 남주가 우스꽝스러운 중저음으로 뭔가를 어필하려 했다는 설정이 매우 매력있게 느껴졌습니다. 남자 연기자들이 종종 중저음만 가지고 뭔가 어필해보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저는 자주 있었습니다(사례를 언급하면 특정인 저격이 되므로 생략합니다). 목소리로 뭔가 어필하는 것은 간지 중저음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이건 제가 성우덕이라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즉 이 남자가 억지 중저음을 쓰는 모습을 쉽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과장된 중저음을 억지로 쥐어짜며 코믹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남주가, 내추럴하면서도 친숙하고 그리하여 사랑스러운 본 목소리를 드러내는 로맨틱한 순간 – 을 전문 목소리연기자만큼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황금가지는 「중저음 목소리의 함정」의 오디오북을 진지하게 고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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