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는 현실감 있고 세심한 묘사가 장점인 호러물이다. 자신의 경험담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작품의 전개상 전부가 경험담은 아닐 거다.
작 중의 주리를 제외한 모임의 인물들은 돌아가며 밉상이다. 특히나 선하에게 유독 밉상 짓을 많이 한다. 그녀의 특징과는 반대로 시끄럽고, 불필요하게 나서며 정확하게 알고 있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인물이 밉기보다는 선하의 말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저도 알고 있어요.”
문장 그대로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닌 어딘가 선을 긋는 듯한 대답이다. 자신의 영역이자 일을 명확하게 선을 긋는 거다. 모르는 사람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건 작은 배려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침범이 된다. 마치 일부러 모자에 스티커를 떼지 않고 쓰는데, 누군가가 배려라고 “모자에 스티커 안 때셨어요.”라고 한다면 그건 거창하게 말하면 패션의 침범이 된다.
주리는 계속해서 선하의 영역에 발을 넣었다 뺀다. “그런데 왜 가만히 계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이게 선하는 답한다.
“걱정을 잘하시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보통 이쯤 되면 물러설 법도 하다. 하지만 주리는 계속해서 선하를 “배려”해버린다. 선하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고 재혁은 비판받아야 하기에 그만 선하에게 선의를 휘둘러버린다. 분명 주리의 동기는 옳고 그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하지만 주리의 세계관 내에서는 말이다. 주리는 다른 이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사실 주리 또한 그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보일 때가 있다. 선하의 거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도형,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까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윤주, 주리도 선하의 거절을 이해하지 못했고 자신의 세계관을 선하와 모임에게 적용하는 걸 굽히지 않았다.
선하는 말한다.
“그런 행동은 상대가 많이 불편할 수 있어요.”
그리고 덧붙인다.
“좋은 의도라도요.”
주리는 좋은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선하는 주리의 침범을 불편해했을 수 있다. 만일 주리가 조금만 덜 주도적이었다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면, 인간의 시각이 아닌 시각을 이해하려 했다면.. 마지막으로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는 때론 타인의 영역을 악의도 의식도 없이 침범하고야 만다. 그리고 대체로 그 대가를 치른다. 그게 차가운 분위기던 당신이 서서히 고립되건 말이다. 윤주도 재혁도 모두 대가를 치렀다. 의도가 비록 선할지라도, 아니 선하다고 믿더라도 그건 침범이다. 우리는 우리의 침범이 침범이 아닌 구원이라 한치의 티끌도 없이 믿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양심이 없거나 객관화가 부족한 사람이다. 주리의 걱정이 과연 천박한 호기심이 아닌 순수한 선의만이 존재했다 할 수 있을까? 포장지에 싸인 물건이 물에 빠졌다. 그걸 벗기려는 주리는 내용물이 궁금했을까, 혹은 물건의 내부가 젖지 않을까 걱정했을까? 선의라면 모든 침범은 용서될까? 모든 답은 소설의 결말에서 공개된다.
설화 원전 읽기 소모임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이야기,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마라”. 어쩌면 나도 작가의 영역을 침범했을지도 모른다. 평가와 소감을 적으며 나를 알리고, 내 해석을 자랑하고 싶은 알량한 마음가짐으로 글을 썼을지도. 그래도 난 선의로 썼다고 말하겠다. 하지만 변치 않는 건, 내가 작가의 선에 발을 들였단 사실이다.
설마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