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센셜_컨플릭트: 스페이스 사이버펑크 메가코프 워게임 비평

대상작품: #에센셜_컨플릭트 (작가: 안겔루스, 작품정보)
리뷰어: 창궁, 1시간 전, 조회 17

누군가가 이 소설이 어떤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저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스페이스 사이버펑크 메가코프 워게임

이라고요.

 

우선 사전에 밝혀두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기 불과 5시간 전에 저는 사이버펑크 2077 플레이타임 230시간 가량을 찍었고, 저의 개인적인 목표로서 마지막 업적작인 히든 엔딩까지 보고 온 참이었습니다. 딱히 의도한 일정은 아니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이 소설을 이렇게까지 ‘충만하게’ 읽을 수 없으리라 확신합니다.

달리 말하면 소위 ‘뽕’이 좀 찬 채로 리뷰하는 것이니 작가로서나 이 글을 접할 다른 독자들로서나 “쯧쯧 어쩌다가 저런 양반이…”라고 동정을 던져주시며 어느 정도 걸러 들으시길 바랍니다. 유감스럽게도 청각 임플란트는 코리아펑크 2026에선 보청기 정도가 한계네요.

물론 단순한 감상에서 그치진 않습니다. 그건 “사이버펑크를 좋아하시나요? 스페이스 오페라는요? 밀리터리 소설은 어떻고요? 셋 중 하나라도 좋아하시면 이 소설을 꼭 읽어보세요!”라는 한 마디로도 충분할 테죠. 그러니 이 소설이 어떻게 재미있는지를 조금 따져보고자 합니다.

 

1. 부조리에 순응했는가? 정말로?

본 작품은 단순히 장르적 클리셰나 통속적인 서사에 치중한 것은 아닙니다. 작품의 첫 문단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대개 두 가지로 나뉜다. 별 관심 없거나, 잔혹한 전장 속에서 피어나는 액션과 드라마에 열광하거나. 전쟁이 끔찍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사실 깊게 파고들어 보면 이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했다. 전쟁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속에서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직후 묘사되는 로페즈 소위가 처한 전장은 부조리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 스폰서 제품의 광고 멘트를 꾸준히 읊어야 하고, 이 모습을 촬영하는 드론이 계속해서 떠다니며, 자폭 드론은 CM송을 틀고 다니니까요.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로페즈의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가 작품을 붕 뜨게 만들지 않고 단단히 안착시킵니다. 일종의 중력처럼 붙잡아둔 이 기묘한 현실은 독자에게 있어 부조리로 인식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다시 첫문단으로 돌아가보죠. 본 작품의 첫 문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전쟁의 당사자가 아닌 자들은 모두 전쟁이란 부조리의 가담자라는 것이죠. 기피자나 해소자가 아니라요. 그럼 전쟁의 당사자는? 당연히 가담자로서 이미 죽었거나, 죽을 예정이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예카테리나 로페즈 역시 마찬가지죠.

로페즈는 부조리의 희생양이었으나, 곧바로 부조리의 가담자가 됩니다. 이 과정에 대해 로페즈는 ‘당연히 붙잡아야 할 기회’로 인식하면서, 그 당연함을 내팽개치고 저항한 다른 이들과 구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로페즈의 목표는 당연히 빌어먹을 고향을 탈출해 안정되게 사는 일이고, 그렇기에 자기를 동정하는 동기인 에페와는 미묘한 친분을 유지합니다.

훈련 기간 동안에 로페즈는 메가코프 워게임이라는 부조리를 똑바로 인지하지 못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유일한 기회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사적이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단순한 성공과 부, 명예를 추구하는 행보와도 결을 달리 합니다. 신속하게 전쟁을 수행하고, 살리는 이보다 죽이는 이가 많을 때 괴로움을 느끼며, 전투에 하등 도움 되지 않는 스폰을 거부하려고 했고, 전쟁에 휘말린 민간인에게 자비를 베풀고자 하며, 스폰서보다 눈앞의 부상병을 더 신경 쓰는 모습들이 바로 그러합니다.

미묘한 경계선 속에서 로페즈가 무너지지 않은 까닭은 딱 하나. 제41회 에센셜 컨플릭트가 끝나면 캄파스를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은 어떻게 됐죠? 지극히 클리셰적입니다. 로페즈는 특별함을 꿈꾸지 않은 서민처럼 보입니다. 간절하고 절박해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로페즈가 에페를 보는 시각을 봅시다.

로페즈 입장에서 에페는 이해할 수 없는 종자입니다. 잘 살고 있는데 굳이 죽고 죽이는 곳에 왔으니까요. 개척 함대 지휘권을 노리기 위해 민간인 따위 알 바 없는 부조리극에 참여하다니요. 거기에 빈민층 출신인 자신을 어려워하고 동정하는 태도 역시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입니다. 로페즈가 보기엔 에페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것이죠.

그럼 로페즈는요? 로페즈라고 해서 다를까요? 로페즈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걷어내고 나면, 로페즈의 어디가 특별할까요? 전장의 나이팅게일? 야매 경력을 살린 간호장교? 빈민층 출신? 사실 그런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습니다. E-웹을 통해 얼마든지 퍼뜨리고 열광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입니다. 카산드라가 그랬고, 페가수스가 그랬고, 그리고 로페즈 역시 그랬듯이요.

로페즈 역시 ‘캄파스를 탈출하기 위해 캄파스를 전장으로 삼은 전쟁에 참여한다’라는 부조리를 저지른 이상, 그것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비극을 강화시키기 위한 조미료에 불과하죠. 결국 로페즈도 부조리의 가담자가 되었고, 그런 부조리의 가담자가 뻔뻔하게 성공만 쥐고 유유히 퇴사해 다른 행성에 정착하는 건…… ‘신화’에 불과하죠. 다른 말로는 낭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로페즈 역시 부조리의 가담자로서, 부조리의 부품으로서, 부조리에서 벗어날 수 없이 제42회 에센셜 컨플릭트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본 작품의 서사는 조용히 완성됩니다.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하는 부조리 역시 부조리하죠. 부조리 서사로서 더없이 깔끔한 부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깔끔한 부조리란 표현도 참 부조리하지 않나요?)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은 독자 역시 인정해야만 합니다. 독자인 우리는 이 이야기에 열광하는 자고, 부조리를 안전한 거리에서 지켜보는 E-웹의 시청자 중 한 명이란 걸요. 로페즈의 이야기를 비극으로 느끼는 것 역시 로페즈의 이야기만 접했기 때문이라는 걸요. 로페즈가 죽인 수십, 수백 명의 이야기를 전부 접한다면, 아마 그땐 지금처럼 웃으며 떠들 순 없을 겁니다.

 

2. 스페이스, 사이버펑크, 메가코프, 워게임

본 작품은 클리셰를 매우 적절하게 뒤섞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떼어놓고 보면 클리셰지만, 합쳐놓고 보면 에센셜 컨플릭트라는 작가만의 고유한 무대와 서사가 나오죠. 플라스마 소총, 메가코프들의 이권 다툼, 시뮬레이션이 아닌 현실의 사람이 수행하는 워게임, 의안을 비롯한 임플란트, 전쟁 중에서도 멈추지 않는 광고, 자본의 논리가 빚어낸 부조리, 부품화된 인간들…… 어디선가 본 설정들이 분명합니다. 실제 작품에서 보든, 누군가가 커뮤니티에 푼 썰로 접하든, 혹은 본인이 스스로 떠올린 소재 속에서든 말이죠.

그러나 이 소재들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본 작품의 메인은 부조리극입니다. 부조리의 희생양이 부조리의 가담자가 되었으면서 부조리의 무대 속에서 탈출하리란 헛된 망상을 품었다가, 그것이 좌절 당함으로써 본인 역시 부조리극의 일부임을 깨닫는 서사입니다. 그걸 다루고 표현하는 소재가 스페이스 사이버펑크 메가코프 워게임일 뿐이죠.

그렇다면 서사를 다루는데에만 매몰되어 소재를 지나치게 편협하게 다뤘나? 그것도 아닙니다. 스페이스(궤도전 설정, 개척 함대, 많고 많은 행성 중 캄파스 행성 등), 사이버펑크(인간의 부품화, 자본주의의 그림자, 기업이 중심이 되는 세계 등), 메가코프 워게임(스폰서, 규칙이 정해진 전쟁, 후원과 중계 등)이라는 각 장르적 요소들이 ‘에센셜 컨플릭트’라는 거대한 설정 아래에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정말로 잘 짜인 무대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미래로서의 SF를 가리킨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계를 일단 허용하기만 한다면, 이 무대 설정이 불러일으킨 수많은 가능성과 이야기는 분명히 매혹적입니다. 언뜻 나온 카산드라의 이야기도 궁금해지고, 부조리의 승리자로 언뜻 비춰지는 페가수스의 이야기 역시 궁금해지죠. 지휘관이었던 대위는 어떻고 델타의 임원들의 이야기는 또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 독자와 닮은 E-웹의 시청자들은 어떻고요. 에센셜 컨플릭트는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로페즈 대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네, 뽕차서 하는 얘기니까 어느 정도는 걸러들으세요!)

 

3. 기타

문장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자면, 1인칭으로서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고, 반대로 지나치게 보여주기에 매몰되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감’이 좋았습니다. 사실 첫문단에서 반점이 묘하게 일부러 힘준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첫문단을 빼고선 그런 이질감은 잘 없더군요. 문체, 주인공의 기질, 그리고 서사까지 삼 박자가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작가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를 넘어서 뭘 쓸 줄 아는지도 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목 역시도 해시 태그와 같은 제목의 가벼움과 그렇지 못한 서사 전개가 빚는 괴리도 의도되었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우리는 E-웹의 시청자로서 로페즈 소위(대위 진)의 이야기를 접한 것이죠. 유감스럽게도요.

단점을 언급해보자면, 클리셰적인 단어와 설정만 끌어다 썼기 때문에 소설이 전달해주는 ‘이미지’ 자체가 다소 모호하고 약한 지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 작품에서 이미지를 보충하는 묘사까지 끼얹기엔 호흡을 ‘더욱 적절하게’ 배분하는 문제가 있고, 전쟁 특유의 긴박함을 살리기가 더 어려워지니 이미지 구축이 초반부에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뽕이 다 식고 나서야 찾아온)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는 사이버펑크 2077의 이미지들을 적절하게 우주 무대로 바꾸어서 상상해서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또한 각종 장르 클리셰들을 끌어다 썼다는 점 자체도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이 장르들이 서로 인접한 장르인 만큼 하나라도 좋아하고 알고 있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나…… 많은 클리셰는 많은 진입장벽으로도 작동하죠. 저는 모든 조건이 클리어됐기에 더없이 재미있게 읽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그럴지는 사실 확신이 잘 없습니다.

즉, 마니악하다면 마니악하겠네요. 그럼에도 그 마니악함 속에서 일반적인 부조리극을 끌어낸 것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사이버펑크가 부조리하면 부조리했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이버펑크는 무조건적인 부조리극이다!”라고 하기엔 본 작품의 부조리극은 정말로 잘 짜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 말만으로 부족한 줄 알기에 이 리뷰를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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