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중심적 자아는 어떻게 진정한 성찰과 변화를 가로막는가? 공모(비평)

대상작품: 우상 (작가: 진주연, 작품정보)
리뷰어: K Rimmer, 2시간 전, 조회 12

참회록 혹은 자기합리화의 궤변?

진주연 작가의 ‘우상’이란 소설에 대해 편집부의 추천글을 보고 대략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한 줄 소개글을 본다.

‘사랑받고 싶어서 자신의 우상을 산 채로 불태운 남자의 참회록’.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 작품에서 얻게 된 질문이랄까, 그런 것을 공유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리뷰를 쓰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참회록’이라고 표현했지만, 필자는 화자(크로헨)가 자신의 열등감과 집착, 그리고 실수로 인해 죽은 친구 오스카에게 뒤늦게 보내는,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독백으로 읽었다.

이 소설은 어째서 한 인간은 진솔하게 자기성찰을 하지 못하고 자기합리화의 궤변으로 자신마저 속이게 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아닐 수 있다. 이 소설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크로헨은 오스카와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다. 오스카는 크로헨을 사랑했고, 크로헨 역시 오스카를 사랑하고 그로부터 인정받고자 했음이 작품에서 드러난다. 크로헨의 회고에 나타나는 대사들과 행동, 두 사람이 손을 잡았을 때의 감촉들의 묘사 등 이 두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단순히 십대 남자아이들이 우정 수준에서 그친 게 아님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오스카는 크로헨에 비해 약간 내성적이며,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다. 크로헨은 오스카를 좋아하면서도 그를 통제하고 싶어하며 그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오스카가 나무를 조각해서 비행선 모형을 만들자, 그것을 가짜라고 비하하면서 진짜 세계를 마주하라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크로헨은 오스카에 비해 조금 거칠고 감성적으로도 둔감하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죽은 친구에게 쓴 참회 서한문에서도 진짜 참회를 하지 못하고 자기 합리화로 가득찬 궤변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완전히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소설의 초반부에 그런 자신을 인식하고 기술하는 부분이 드러난다.

이 고백은 분명 징그럽고, 추하며, 뒤틀려 있겠지만, 결국 그 끝에선…

자기 객관화가 되는 부분은 ‘…뒤틀려 있겠지만’까지다. ‘결국…’ 이후부터는 99.9% 자기 합리화로 도배된다. 작중 화자인 크로헨 스스로도 말했듯이, 그것은 징그럽고, 추하며, 뒤틀려 있겠지만 결국 너(오스카)도 기뻐할 것이라 말한다. 크로헨이라는 캐릭터의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이 지점에서 확정된다.

 

소설 속 숨은 상징들

만약 이 소설을 만약 상징으로 해석한다면 오스카는 이상회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꿈, 크로헨은 과시적이고 외적인 인정욕구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리나(안나)는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유혹, 비행선은 둘 사이에 공유된 꿈이자 열망이다. 유령의 시약(수소)은 과학적 발견이자 동시에 위험한 지름길, 복숭아 씨앗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순수한 관계를 상징하며, 알렌은 크로헨에게 속죄와 재건의 기회를 제공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상징들만으로 이 서간문 형식의 단편소설을 해석해버리면 이 소설의 심층에서 아직 답해지지 않고 남아 있는 질문들이 많이 아쉽다.

 

여전히 답해지지 않은 질문들

크로헨이 오스카에게 쓰는 이 서한문 형식의 소설이 진짜 참회록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이 리뷰를 통해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과연, 작중 화자인 크로헨이 진짜 참회를 한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뭐가 부족해서 서한문을 쓰면서 자신의 집착과 과오로 죽은 오스카가 기뻐할 거라고 스스로 믿게 만드는 걸까?

인간이 인간답게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인간은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가? 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작품의 제목이 ‘우상’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우상을 품고 살아간다. 사람은 자기만의 우상을 동경하고 숭배한다. 그것이 신이든, 이성이든 가수든 돈이나 명예, 권력 같은 것이든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우상으로서 품고 대상화하면서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크로헨에게 우상은 오스카다. 오스카는 크로헨과 똑같은 나이의 남자아이였지만 크로헨에겐 친구이자 자신을 인정해주고 고향을 떠나갈 때 자신의 손목을 붙잡아준 연인이었으며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다 돌아왔을 때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그를 다시 반겨준 등대 같은 존재다. 왜 크로헨은 이 서한을 구구절절 쓰면서도 진짜 참회는 하지 못한 걸까?

필자는 그 이유를, 크로헨의 자기중심성(egocentrism)에서 찾는다. 크로헨의 자아가 너무 강했기 때문에, 너무도 자기중심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모든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의 아픔을, 감정을 헤아려보기 위해선 자아를 잠시 내려놓는 노력도 필요하다. 사랑한다면 그/그녀의 처지에서 무엇을 바랄지, 무엇이 부족할지를 그/그녀의 입장에서 느끼고자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에고센트릭한 경우는 이게 안된다. 오스카는 크로헨을 사랑했을 것이다. 오스카는 크로헨의 입장에서 이해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게 오스카가 십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크로헨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비행선 연구에 몰두한 이유다. 크로헨이 마을을 떠날 무렵, 오스카는 크로헨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쳐 못 가게 막고 싶었지만 보내줘야만 다시 돌아올 것 같아서 라고 말한다.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놓아줬던 오스카는 크로헨을 사랑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널 놓아줘야만 돌아올 것 같았거든.”

그러나, 크로헨은 지독히 이기적이었다. 가스라이팅도 서슴없이 했다. 그리고, 오스카를 폭발사고로 죽게 만든 이후에도 크로헨은 여전히 자기 중심적으로 속죄하고 참회한다. 크로헨에게 오스카는 ‘우상’일 뿐이다.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고 주체가 아니라 동경하고 숭배되고 파괴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우상이다. 자신의 편지가 징그럽고, 추하며, 뒤틀려 있겠지만 결국 그 끝에선 너도 기뻐할 것이라고. 크로헨이 오스카가 기뻐할 거라 생각하는 건 크로헨이 입양한 고아 아이 알렌 때문이다. 알렌이 만들어준 오른손 의수를 착용하고 알렌에게서 오스카와 같은 천재적 재능을 발견하고서 다시 비행선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는 생각에 오스카도 기뻐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과연 오스카가 저승에서 기뻐할까? 아마도 오스카는 천국에서 서글프게 웃고 있을지 모르겠다. 오스카가 그 오랜 세월 크로헨을 기다리며 비행선 연구에 몰두했던 것은 사랑하는 친구 크로헨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크로헨이 돌아온 후에, 비행선을 완성하지 못해도 상관없다고 말한 것은 크로헨이 이제 자신의 곁에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크로헨은 자신이 이제 필요없다는 말인가 하면서 그 말조차 자기 식으로 오해했다.

과연 크로헨이 놓친 것은 무엇인가? 크로헨은 오스카를 사랑하면서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오스카를 잃고난 후, 오랜 세월 후에 만난 알렌이라는 아이에게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희망을 재건한다. 다시 그를 통해 비행선의 꿈을 실현하려고, 소유하려고 한다. 언젠가 소멸하게될, 필멸자인 우리 인간들은 왜 그리도 소유하려고만 하는 걸까? 오스카가 비행선에 매달렸던 건 크로헨과 공유한 둘 만의 소중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크로헨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고, 참회록의 마지막 문장을 적는 지금까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망상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기기만 속에서 표류하는 자아

소설우상은 크로헨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내면, 특히 자기중심적 자아가 어떻게 진정한 성찰과 변화를 가로막는지를 보여준다. 크로헨의 독백은 참회록의 형식을 빌리지만, 그 본질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타인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인을 소유하려 했던 한 인간의 비극적인 자기기만의 기록이라 할 것이다. 오스카를 향한 그의 감정은 사랑과 집착, 동경과 열등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것이었으며, 결국 그의 소유적이고 인정에 집착하는 강박적 태도는 오스카의 죽음이라는 파국을 초래한다. 그리고 알렌을 통한 재건의 시도마저도 과거의 집착을 반복하는 새로운 순환의 시작일 수 있음을 암시하며, 독자에게 진정한 인간다움과 자기성찰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상’은 외부에 있는 무엇이 아니다. 바로 우리 머릿속, 상상 속에 존재하는, 우리 스스로가 창조해낸 괴물이며 외부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게 왜곡시켜 투사하는 정신적 필터이다. 크로헨은 오스카를 ‘우상’화하고 사랑했지만 진실은 오스카 그 사람 자체를 만나지 못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오히려 크로헨이 사랑하고 집착했던 건 오스카에게 덮어씌웠던, 자신이 만들어낸 필터였다는 것을 크로헨은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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