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짤막한 단편들의 장점은 잘 읽힌다는 거다. 문장이 담백하고 대사가 잘 읽혀서 따라가기에 좋다. 무드도 서늘하며, 주인공 서연의 옆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게 한다.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기대하게 한다. ‘무언가’ 예기치 못한 것이 나타나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를. 호러, 공포, 스릴러, 오컬트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바라는 건 어쩌면 하나다.
일상의 한 복판에서 마주하는 ‘비일상’, 그것이 주는 충격과 공포 동시에 반전의 미학까지. 특히나 오컬트는 ‘악’이 ‘선’을 이길 수도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이기 때문에 그 ‘반전’에는 인간 내면의 깊숙한 악 혹은 비틀린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 있길 바란다. 이 모든 게 이 장르를 사랑하는 독자의 기대다.
1. 아직도 앉아 있다의 경우 시작점에서는 분명히 무드를 잘 깔았고, 기대하게 했다. 아쉽게도 마지막 부분에는 독자인 내가 바라던 방식의 결말이나 반전은 없었던 것 같다. 실은 그저 ‘환영’이고, ‘질환’의 사정에 불과하다는 결론은 다소 김이 빠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무드 형성이 좋았기에 2. 의자를 자연스럽게 읽어 내려갔다.
2는 1과 서사적 연관성이 있진 않다. ‘앉아 있다’라는 동작의 연결은 있겠다. 의자를 보며 비정상적인 공포에 시달리는 민우라는 ‘상황적 설정’이 좋았다. 그 의자가 안락이 아닌,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도 흥미롭지만 아쉬운 점은 너무 짧다는 데 있다. 다 읽고 오싹하거나 스산하거나 눈물이 나거나 그런 감정은 내면에서 일지 않았다. 그냥 차가운 이성으로, 그렇구나 하고 만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리뷰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실은 리뷰를 쓰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다만, 한동안 리뷰어 활동을 쉬고 있는 나에게 찾아와 리뷰를 부탁한 작가님을 위해 짧게나마 감상평을 적어본다.
내가 오늘 읽은 두 편의 소설은 분량으로 따진다면 아주 짧은 엽편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설이 되기에는 아직 쓰여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인물, 사건, 배경이 이뤄내는 하나의 ‘세계’다. 짤막한 길이여도 마찬가지다. 초단편 소설로 유명한 소설을 생각해 봤는데, 헤밍웨이의 여섯단어로 이뤄진 소설이다. “팝니다: 아기 신발, 사용한 적 없음”(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아주 짧은 길이지만 서사를 엿볼 수 있다. 아이 신발을 파는 엄마를 주인공이라고 해보자. 사건은 ‘사용한 적 없음’에 묻어난다. 아이가 죽었다. 배경은 흔히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이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보다 많다. 배경은 인물과 사건 이외의 모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소설의 정서, 소재, 문체 같은 것들이다. 소설의 시공간은 알 수 없으나 소재는 있다. ‘아기 신발’이고, 정서는 우리가 유추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서글픔’일 것이나, ‘판다’라는 지점에서 생각 해 보면 ‘비정함’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잘 쓴 소설은 읽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다만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하도록 쉽게 쓰여져 있다. 만약 내가 헤밍웨이의 저 소설을 좀 더 길게 연장해서 쓴다면, 어느 부유한 사람과의 대리모 계약을 통해 아이를 낳은 여자가 그 아이를 뺏기고 그 아이의 신발을 파는 서사를 써볼 것 같다. 그리고 잘 살 거라 여겼던 아이가 실은 신빨 떨어진 무당의 새터니가 되는 바람에 여자에게 ‘기묘하게 뒤틀린 상태’로 되돌아 오는 한 장면을 쓰게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쓰게 될 소설의 장르는 오컬트가 될 것이고, 내가 이 모든 서사를 앞단에 깔고 들어간다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의 생모가 처하는 위기들을 보는 독자들의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을 ‘서스펜스’라 할 수 있겠다.
오늘 읽은 두 편의 소설은 여러 갈래로 확장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인물이 있고, 사건의 단초가 있으며, 무드가 있다. 여기에서 필요한 건 ‘어떻게’, ‘무엇을’, ‘왜’이다. 현재 진행되는 사건이 필요하고, 그로 인한 인물 내면의 균열이나 변화가 필요하다. 혹은, 인물에게 덮쳐오는, 몸으로 체감되는 위기가 있어야 한다. 그도 아니라면 ‘내적인 갈등’이 필요하다.
이를 테면 그렇다.
2번 소설의 경우라면, 민우가 의자를 보며 혼자 불안해하다가 계속 불안을 느끼다가 느닷없이 죽음으로 이행되는 게 아니라, 의자가 그를 향해 덮쳐온다거나 조금 더 ‘구체화된’ 공포가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독자로 하여금 민우의 감정에 휘말리게 해야 한다. 그와 함께 동요하다가, 마련되어 있는 반전에 도달하게 된다면, 실은 그가 사형수였다는 결말이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한다.
재미있게 읽었다. 리뷰를 쓰는 것도 오랜만이다. 이 리뷰가 정성스레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가에게 혹여나 상처가 될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맺는다. 아쉬움은 나의 몫이며, 궁금하다면 짤막한 소설이니 모두 스윽 읽어보고 저마다의 감상평을 만들어가길 바라며, 모든 분들의 건필과 즐거운 독서 생활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