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하이 의뢰(비평)

대상작품: 안녕, 아킬레우스 (작가: 해도연, 작품정보)
리뷰어: 후안, 17년 8월, 조회 94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글을 먼저 읽고 리뷰를 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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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리뷰 의뢰의 그 두 번째 작품입니다. 사실 제게 의뢰를 하신 이유가 글 중반부부터 나름 추측이 가능해지긴 했는데……(호, 호러?) 아무튼 의뢰에 감사드리며, 아무 말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아무 말 아무 생각이 담긴 개인적인 감상의 글입니다!

달바라기님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일정 수준의 작품성을 보여 줍니다. 글을 처음 시작한 작가라고는 보기 힘든 기본기를 보여주는데요. 첫 작품인 [에일르의 마지막 손님]부터 이달의 데뷔작 정도의 쇼킹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단 네 편 만에 호러 작가라면 누구나 영광의 자리인 [한국 공포 문학 단편선]에 작품을 올리게 됩니다. (브릿G가 발굴한 재능 작가의 대표중 하나죠.) 에일르도 참 좋았고,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도 참 좋았습니다. 제가 호러 작가를 표방하다보니, 호러 장르인 것에도 애정이 가고요. 하지만.

사실 도입부가 힘듭니다.

 

왜일까요? 글을 죽 읽어 내려가기 힘듭니다. 그래서 멈추고 맙니다. 저는 처음에 훅 하고 들어오지 않으면 글을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시작했습니다. 제 성향인 것도 있지만 저는 초반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보지 않습니다. 여기서 걸린다고 하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절대 비하의 표현이 아님을 유염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만 그런걸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공통적으로 달바라기님 글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초반에 힘이 너무 들어간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오전의 낮은 햇살이 건물 위로 새어 나오자 게으른 그림자들이 광장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광장 구석에 자리 잡은 카페 러닝터틀 앞에서는 카페의 주인이 느긋하게 파란 햇살을 받으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조금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으로 야외테이블 설치를 마친 그 남자는 아직 어두컴컴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기가 마실 커피를 내렸다. 카운터 테이블과 찬장에선 오래된 나무 향기가 흘러내리며 커피의 하얀 증기 속에 섞여들었다. 카페 전면을 덮은 유리벽을 통해 카운터 테이블 안으로 햇빛이 조용히 쏟아졌다. 커피가 쪼르르 흘러내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공간이었다.

 

도입부입니다. 첫 문단 두 문장에 광장 광장 카페 카페 햇살 햇살 반복입니다. 두 번째 문단 네 문장에 그 남자 커피 커피 커피 카운터 카운터 테이블 테이블 테이블 반복입니다.

제가 읽기 편한 스타일로 한 번 수정해본다면(쉽게 들어갈 수 있게 해본다면)

 

아침 햇살이 건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림자들이 바닥에 길게 늘어져 기지개를 켰다. 광장 구석에 위치한 카페 [러닝터틀] 앞에서 느긋하게 햇살을 즐기던 사내는 곧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일사천리로 야외 테이블 설치를 마친 그는 아직은 어두운 가게로 들어가, 자신이 마실 커피를 내렸다. 카운터와 찬장에서 오래된 나무 향기가 흘러내려 거품을 내는 하얀 증기에 섞여들었다. 카페 전면을 둘러싼 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조용히 쏟아졌다. 쪼르르 마무리를 짓는 커피 내림 소리를 제외하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공간이었다.

 

정도라고 할까요? (물론 이것은 정말 정말 정말 제 개인 성향이니 그냥 참고만 해주세요!)

 

힘이 너무 들어가서 굳이 안 하셔도 될 표현이 반복되고, 그것이 항상 달바라기님 글 도입부에 시작된다는 점이 전 항상 걸렸어요. 사실, 개인적으로는 차기 호러 작가로 주목하는 분인데 이 점이 늘 아쉬웠습니다.(자꾸 호러 작가로 몰아가는 감이 있지만, 본능을 거부하지 마세요!) 쉽게 말하면 멋부린다는 겁니다. 멋 안부리셔도 됩니다. 우리는 이야기꾼입니다. 이야기만 재밌으면 됩니다.

이야기꾼이 서장을 어렵게 시작하면 듣는 우리는 금방 흥미를 잃게 됩니다. 결국 우리들은 재미를 주는 (장르 작가라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입담꾼이고, 듣는 이들은 그 이야기가 재밌고 귀에 쏙 박히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어요. 초반에 진입을 멈추고 돌아간 독자들도 분명 많을 거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참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았거든요.

주제와 소재를 풀어내는 것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표현, 혹은 멋!(독입니다.)에 치중해서 꾸미려 하면 안 좋다고 봅니다. 굳이 그거 안 해도 재밌으면 장땡입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읽으려다 넘긴 글들이 많아요.

제 주제에 안 맞는 지적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공감이 되셨다면 충분히 이정도만 표현해도 될 거라 봅니다.

 

 

자, 그럼 이번에는 이야기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가장 적절한 비유는 등산인데, 전 산을 타보지 않았으니 달리기에 비해 보겠습니다.

러너스 하이 아시나요?

일정한 수준으로 달리다 보면, 고통에 이르다가 쾌감으로 바뀐다는 그 전설의 감정입니다.

이 글은 딱, 러너스 하이를 느끼게 해준 작품입니다.

초반에 들어오기 너무 힘들어서, 하지만 의뢰 받았으니 리뷰도 써야겠고, 내심 힘들여 들어왔는데, 서서히 몰입되다가 극 중반부터 오호라! 하는 쾌감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리고요! 놀라운 게 중반 서사가 진행될 때 달바라기님은 전혀 군더더기 없이 스피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초반입니다. 초반에 거창하게 힘 주셨다가, 이야기 그러니까 본격적인 썰을 풀기 시작하면 그런 게 모두 사라집니다. 저는 딱 두 가지, 문장 호흡과 재미로 그 글의 좋고 나쁘고를 보는데, 초반 도입부만 빼면 흐름이 진행되는 결정적인 순간부터는 전혀 단점을 못 느꼈습니다. 마스터의 행각이 드러나는 그 장면!(호러!) 피터가 고뇌하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플롯, 매력적인 두 여인 지니와 카메노. 19금!(우오오아이!) 달바라기님도 재밌게 쓴 부분과 억지로 쓴 부분, 있으시죠? 그거 독자들 다 알아요. 글에서 다 나옵니다. 결말도 좋았고, 쾌락에 탐닉하는 대표적인 두 인물에 내 자신을 투영해보기도 했으며, 내가 만약 저 상황이면 어떻게 할까 나름 감정이입 해보기도 했습니다.(저는 지니가 맘에 듭니다.)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궁금해서 계속 읽어 내려갔으니까요.

 

지금까지 본 달바라기님 글 들 중에는 가장 좋았습니다.

왜냐면, 서사가 진행되는 순간부터 힘을 딱 빼고 굉장히 기능적인 장르의 재미에 충실하거든요. 설명하려 들지 않는 것도 좋았고, 자꾸 머리를 굴려야 하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임리프 글들의 덫이 바로 복잡함인데, 이 글은 훌륭한 사건 진행으로 그 단점을 커버합니다. 끔찍함을 상세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사악함을 잘 드러냈고요.(저 사실 고어 그런 거 싫어합니다….응?)

잘 읽었습니다. 작가님 글 중 제일 좋았던 글입니다. 너무 재밌었어요.

1장 2장의 구성과, 제목과, 결말도 좋았고요. 확실히 센스가 있으십니다.

 

차기 작품을 기대하겠습니다.

 

PS. 이건 그냥 여담입니다. 작가는 작품을 내놓으면 그 작품에 대해 설명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생각합니다. 일단 작품을 내놓은 상태에서는 읽는 이들이 판단할 문제이고, 그 글의 의도라던가 작가가 숨긴 복선들을 몰라주었다고 해서 이해시키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작가 성향 차이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쉬울 수 있겠지만, 결국은 재밌는 글을 판단하는 건 독자들이니까요. 문의에 답변할 수 있겠지만, 나서서 설명하는 건 오히려 작가 프라이드를 내려놓는 부분이라 봅니다. 개인적 의견이니 흘러들으셔도 됩니다!(전부터 꼭 말씀 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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