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속 인어의 세계는 크게 둘로 나뉘어져있다.
민간과 국가, 서울/수도권과 지방, 물 바깥과 웅덩이, 특수잠수사와 인어, 해랑과 영하, 인간과 인간 아님
주인공 해랑은 이 양분된 세계의 경계에서 생업을 일구는 사람이다. 민간특수잠수사라는 신분으로 웅덩이 속에 들어가 구조와 전투를 반복하면서 그는 위험속에 내던져져 있다. 사람들은 해랑의 도움으로 웅덩이에서 빠져나오거나 시체라도 건지게 되지만 정작 그가 위험에 빠지면 그를 구할 수 있는 이는 없다. 해랑이 위험에 빠졌을 때, 해랑을 구한 것은 집 안의 웅덩이(?)에서 나타난 기묘한 청년이다. 아무리 봐도 해랑이 속한 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해랑도 해랑의 동료들도 그것을 빠르게 눈치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교류를 막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재밌다고 느꼈던 부분 중에 하나는 해랑과 해랑의 동료들이 웅덩이와 웅덩이 속의 것들을 단지 위험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영하를 저쪽에서 온 존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지만 동시에 시리얼을 좋아하는 약간 바보같은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그 위험을 위험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해랑이다. 해랑은 텐타클에게 붙잡힌 사람들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해오는 일을 직장으로 가지고 있는데도 영하와의 호기심어린 스킨십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일까? 가장 위험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익숙해졌기 때문에? 아니면 사실은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니면 깊이 생각하면 죽을것 같아서? 그 모든 이유들은 그저 해랑의 위험한 일과 청년의 존재감 앞에 잠시 뒤로 밀려난다.
해랑의 직장은 위험하다. 생명의 위기에 매일 노출되는 직업이고 전투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일을 계속해서 해나간다. 그러나 해랑은 영하에게서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영하는 심지어 해랑을 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해랑의 일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 해랑이 직장에서 수행하는 일은 실제로 위험하고 목숨이 위태로운일도 맞다. 그러나 웅덩이 안의 텐타클과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된다면 위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방법을 찾기 위해 해랑이 바닷속 심도 5 이상으로내려가지 않는다면 그 방법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해랑이 가진 민간 특수잠수사의 규칙과는 어긋난 일이다.
두 개로 나눠진 세계에서 인간쪽의 규칙은 딱딱하다. 심도 5 이상으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인어라는 것은 망상이다, 텐타클은 위험하다, 웅덩이에서 놀아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영하가 보여주는 행동과 스킨십으로 발생되는 모든 감정은 해랑의 억측에 불과할까? 읽다보면 해랑이 억측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다.
해랑이 바다로 사라진 아버지만큼 나이먹고 그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 은퇴를 할 때가 되어서야 잠수사가 가진 규칙을 모두 깨고 경계를 넘었을 때, 그 자리에 영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드디어 만났다는 것도 기쁘다.
이렇게 미스테리하고 신비한 분위기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텐타클, 촉수, 인어, 알 수 없는 바다에서 온 이상하고 신비한 청년까지 웅덩이 속 인어에는 재미있어보이는 소재가 꽉 차있고, 해랑은 용맹하다. 다 읽고난 후에도 마음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