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아킬레우스

  • 장르: 호러, 추리/스릴러 | 태그: #타임리프 #루프물 #로맨스일까 #아킬레우스 #거북이
  • 평점×105 | 분량: 199매 | 성향:
  • 소개: 무허가 타임루프를 찾고 해체하는 일을 하는 피터. 그는 어느 타임루프 속의 카페에서 마스터라 불리는 남자와 지니라는 여자를 만난다. 타임루퍼인 마스터를 설득해 순조롭게 해결될 것 ... 더보기

안녕, 아킬레우스

미리보기

1장 – 아킬레우스의 시간

오전의 낮은 햇살이 건물 위로 새어 나오자 게으른 그림자들이 광장바닥에 길게 늘어졌다. 광장 구석에 자리 잡은 카페 러닝터틀 앞에서는 카페의 주인이 느긋하게 파란 햇살을 받으며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조금의 낭비도 없는 움직임으로 야외테이블 설치를 마친 그 남자는 아직 어두컴컴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기가 마실 커피를 내렸다. 카운터 테이블과 찬장에선 오래된 나무 향기가 흘러내리며 커피의 하얀 증기 속에 섞여들었다. 카페 전면을 덮은 유리벽을 통해 카운터 테이블 안으로 햇빛이 조용히 쏟아졌다. 커피가 쪼르르 흘러내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오랫동안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한 공간이었다.

커피의 마지막 몇 방울이 하나씩 떨어지며 잔 속에서 검은 물결을 일으키고 있을 즈음,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 여자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카페에서 일하는 지니였다. 어깨까지 내려온 지니의 검은 머리카락은 조금 젖어있었다. 지니는 카페 주인을 바라보며 팔을 높이 들어 올리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마스터!”

“지니, 오늘 늦잠이라도 잔 거냐.”

지니는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다는 듯이 헤헤 웃었다.

“봐요, 머리 말릴 시간까지 포기하고 시간 맞춰 일하러 왔잖아요. 그러니까 시급 좀 올려줘요.”

지니가 머리카락을 만지며 얘기하지, 그녀가 쓴 샴푸의 오렌지 향이 아스라이 퍼져나갔다.

“시간 맞춰서 오는 건 당연한 거고. 밖에 나가서 햇살에 머리나 말려.”

“와, 일광욕 시켜주는 건가요?”

지니의 눈이 둥그렇게 팽창했다. 마스터는 그런 지니를 보며 피식하고 웃고는, 마른 수건과 낡은 앞치마를 꺼냈다.

“아니, 일하라는 얘기야.”

지니는 얼굴을 반쯤 돌리고 마스터를 흘겨보며 웃었다. 그리고는 마른 수건과 앞치마를 받아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앞치마를 허리에 둘러맨 지니는 재빠르게 야외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낮고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에 조금씩 활기가 차오르고 있었다.

◆◆◆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피터는 광장 가장자리를 천천히 걸었다. 아침부터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움직임은 느긋했다. 피터는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골목 바람에 펄럭이는 그들의 옷깃도 피터의 관심사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광장의 사람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피터는 카페 러닝터틀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카페 앞에 가지런히 놓인 철제 테이블들은 오랜 세월을 증명하기라도 할 것처럼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었다. 하지만 정겨운 카페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기에 피터는 그 야외 테이블들이 좋았다.

피터가 테이블로 다가가 의자에 앉는 걸 본 지니는 설거지 하던 손을 앞치마에 털고 총총거리며 바깥으로 뛰어나왔다.

“오늘 날씨가 참 좋죠? 주문하시겠어요?”

지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장과 펜을 꺼내 받아적을 준비를 했다. 피터는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읽고는 가방에서 여행정보지를 꺼내며 말했다.

“아침식사 세트로 주세요. 차는… 아쌈차이로 부탁해요. 아, 그리고 차이에 들어가는 우유는 저지방 우유로 해주시고, 잔은 미리 데우지 말아 주세요.”

“이 마을엔 처음 오신 것 같네요.”

지니는 메모장 위에서 손가락과 펜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말했다. 피터가 지니의 얼굴을 올려다보자, 지니는 메모장과 펜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시선으로 여행정보지를 가리켰다.

“아, 네. 여기 근처에 출장을 왔거든요.”

“근데 여기가 그런 책에 실려있어요?”

지니는 놀란 표정을 조금도 감추지 않았다.

“아뇨, 일부러 이 책에 실리지 않은 곳을 찾아왔어요. 지도에 없는 길을 걷다 보니 여기가 나오더라고요.”

“그거 재미있네요. 꼭 운명이 여기로 이끈 것처럼 들려요. 첫 손님이 재미있는 분인 걸 보면 오늘도 덕분에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네요.”

지니가 얼굴에 큰 웃음을 띠자 피터도 기분이 들떴다. 피터는 지니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그녀의 모습을 지켜봤다. 이미 수십 번 본 광경이지만, 피터에겐 아침 햇살을 가로지르는 지니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펼친 적도 없는 여행정보지를 꺼내는 것도, 좋아하지도 않는 차이 따위를 까다롭게 주문하는 것도, 모두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피터는 지니가 다시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에게 주어진 일을 떠올렸다. 허가되지 않은 타임루프를 발견하면 그 루프를 끊고 등록되지 않은 타임루퍼를 회사로 영입할 것. 그리고 여의치 않을 땐 강제로 능력을 제거할 것.

피터는 카페의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타임루퍼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타임루퍼는 물을 끓이는 지니 옆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타임루퍼의 거친 손에 잡힌 커다란 부엌칼이 양상추와 토마토를 능숙하게 조각냈다.

몇 분 뒤, 피터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고 어제까지 반복되던 ‘오늘’과도 달리, 샌드위치와 차이를 가져온 것은 지니가 아니라 카페의 마스터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