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말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가. 의뢰(비평)

대상작품: 동굴 속의 닻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달바라기, 17년 8월, 조회 63

많이 늦었군요. 요즘 정신이 없거나 영혼이 없는 상태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리뷰도 사실 혼이 빠지도록 피곤한 상태에서 도무지 일에 집중을 할 수 없어 예정보다 일찍 쓰고 있습니다(기다릴 수록 리뷰 퀄리티가 오른다는 작가 분의 말이 두려워서가 절대 아닙니다).

“은사와 은사”에서 본 낯익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멋진 외국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글쟁이 주인공이죠. 그리고 이번 이야기에서도 1그램의 자비도 없이 고생길로 빠집니다.

전 “은사와 은사” 보다는 이 작품 “동굴 속의 닻”이 더 마음에 듭니다. 교차되는 이야기는 두 이야기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적절히 자극했고, 다양해진 인물과 사건들은 조금 단조로웠던 “은사와 은사”의 아쉬움을 해소해 줍니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지만, 작가 분의 문장은 표현력이 풍부하면서도 가독성이 좋아요. 개인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덜컹거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굴러갑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음??했던 부분이 몇 군데 있습니다.

다시 읽으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주인공의 동기와 개연성에서 충분히 설득되지 못한 것 같아요. 영국에서 유학까지 하고 영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주인공 글쟁이는 과외가 아니라 심야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히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셰익스피어 교수의 재산을 물려 받아요. 부동산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 그냥 집도 아니고 저택을 가지고 있는 대학 교수의 재산이죠. 그런데도 병원비 때문에 통장 걱정을 해요. 물론 교수의 재산을 쓰는 것이 불편하다고는 말해요. 그런 와중에 헉슬리가 주는 돈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끼면서도 이번엔 ‘속물’스럽다며 또 거절해요. “은사와 은사”에 나온 바에 의하면, 헉슬리는 돈이 아주 많은데 뭐가 미안해서 가뭄의 단비를 거절할까요? 전 이렇게까지 가난을 자초하는 주인공을 이해하기가 힘들었어요.

비슷한 어색함이 다른 인물에게서도 느껴집니다.

1. 외국에서 온 변호사가 다짜고짜 편의점 강도를 공격해 기절시킵나다. 그것도 벌칸인의 손가락 공격 같은게 아니라 고난도 무술로요. 물론 싸움에 자신이 있으면 그렇게 도와 줄 수 있죠.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런던에 저택이 있는)셰익스피어 교수가 고용한 변호사에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수행하러 바다와 대륙을 건너온 변호사의 행동이라기엔 너무 경솔하지 않을까요? 경찰을 부르거나(기다리거나), 굳이 도와줘야 한다면 무기를 뺏거나 몸을 제압하는 등의 방법의 선택지가 있을 건데 말이죠.

 

2. 레미 헤이즐의 행동 역시 위화감이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부터 글쟁이를 갑자기 찾아와 숨겨달라고 합니다. 게다가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대신 죽었다고 하죠. 그리고 누군가 집에 침범해 엉망으로 만들어놨어요. 즉,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거죠. 그런데.. 그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떠납니다. “더 늦기 전에 일어나야겠네요. 차 잘 마셨어요. 이야기 들어준 것도 고맙고요.” 라고 말해요. 조금전까지 죽을 것을 걱정하던 사람이 일요일 오후의 티파티를 즐긴 듯한 말을 하는거죠. 게다가 주인공 글쟁이, 즉 처참하게 죽은 셰익스피어의 애인이자 신상에 대해 아는 것도 별로 없는 낯선 아시아인에게 자기가 어디로 갈지를 알려줘요. 레미 헤이즐은 주인공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안심하고 의지하는 걸까요.

3. 우리의 헉슬리. 헉슬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주인공 글쟁이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결코 질투가 아닙니다..!). 그리고 헉슬리에 대한 묘사 역시 조금 붕 뜬 느낌이에요. 등장할 때마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 “뽀뽀”, “뺨에 닿은 입술의 감촉”와 같은 묘하게 성적인 묘사가 따라오지만, 거기서 확장되지 않아요. 그저 그녀의 성적매력을 거듭 강조할 뿐인데, 그럼에도 이야기의 흐름 어디에도 흡수되지 않아요. 게다가 10대 소녀의 모습이라는 것 때문에 이야기에 흡수되어도 그건 그거데로 조금 위험한 느낌이 있고요. 겹차원을 넘나들며 손님들을 때려잡는다는 건 충분히 강조될 만한 특징이죠. 하지만 헉슬리의 성적매력은 왜 강조되야 하는 걸까요?

4. 헉슬리가 주인공에게 알렉스 해머즐리와 고고학 팀의 뒷조사를 부탁하는 것 역시 그래요. 그정도 조사라면, 돈 많은 헉슬리라면 얼마든지 유능한 탐정을 고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같은 런던의 베이커 가 221B 주민이라든가). 왜 굳이 별다른 재주도 드러나지 않은 주인공 글쟁이에게 부탁할까요? 물론 ‘뒤틀림’을 경험했다는 특징이 있지만, 충분한 이유는 아닌 것 같아요.

5. 알렉스 해머즐리와 그가 동굴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로, 왜 그들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가 충분히 납득할 수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느껴지는 걸까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등장인물들이 장기말처럼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물들이 각자의 의지로 움직이기보다는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다는거죠.

단편을 쓸 때는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단편만 쓰는 제게 이야기 속 인물은 완벽한 장기말입니다. 그들에게 자유의지는 없어요. 제가 원하는 데로 움직여야 하니까요. 대신 그렇게 움직이기 위해 인물들이 속한 세계를 최대한 좁히고,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제한하거나 충분한 동기로 이어질 수 있는 보상을 주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모든 일이 그들의 선택인 것처럼 포장하는 거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장편, 그것도 더욱 거대한 세계관의 일부이며 특정 중요인물들이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렇기에 인물들이 그 세계관 속에서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각자의 개성과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주인공은 좀더 편하게 교수의 재산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변호사는 함부로 무력을 써서는 안되고, 레미 헤이즐은 더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고, 헉슬리는 예쁜 소녀라기보다 돈많고 강한 소녀이며, 조사를 위해 탐정을 고용할 수 있어야 해요. 앞으로의 이야기를 위해서라도 장편소설의 인물들은 단편소설의 인물들보다 훨씬 더 폭넓은 자유도를 가져야 하니까요.

이것이 장편의 어려움 중 하나이자 제가 장편을 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며, “동굴 속의 닻”에서 제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점에 대해 좀 길게 썼지만, 평가절하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작가 분께서 이런 스타일의 리뷰를 원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일전에 자유게시판에서 캐릭터에 대해 의견을 주신 것도 생각이 나서 이런 관점에서 봤습니다.

장편과 단편에서 인물을 다루는 방법은 전적으로 제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전 원래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을 그다지 읽지 않았고 작법론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실전적 글쓰기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어요.

오히려 제 의견은 영화의 관점에 더 가까워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단점 중 하나가 인물들을 장기말처럼 다루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 그렇게 인물을 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리고 단편영화와 장편영화를 보며 인물들의 자유도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이런 시선도 있다, 는 것 정도로만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

이상과는 별개로, 짧은 인상 몇 줄입니다.

1. 위기감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 유머가 나오니 긴장을 반감시키는 것 같아요.

2. 혼잣말이 많아서 연극의 독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3. 세계관은 여전히 멋집니다. 전작의 겹차원에 이어 게이트 아일랜드로 가는 길, 그리고 그곳의 풍경은 굉장히 신선해요.

4. 하지만 장편을 이끌어 가기에는 세계관의 매력만으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5. 시부야 어셈블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화로 치면 쿠키영상 같은 거였군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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