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모험담과 난해한 스릴러의 조합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동굴 속의 닻 (작가: BornWriter, 작품정보)
리뷰어: 알렉산더, 17년 8월, 조회 85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는, 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동굴 속의 닻’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로, 셰익스피어 교수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런던에 살게 된 글쟁이가 그녀의 연구 자료와 관련된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글쟁이 ‘베이커’가 겪는 런던 이야기와, 그가 꾸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꿈이 번갈아 제시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선 후자부터 말씀드리자면, 아주 흥미진진한 모험담입니다. ‘앵커’를 찾아 동굴 속으로 모험을 떠나, 괴물과 수상한 남자와 요정같은 미녀를 만나는 화자의 모험은 가슴을 뛰게 합니다. 다소 직선적이긴 해도 서브 플롯으로서 아주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묘사도 화자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한 아찔함을 느낄 수 있었고, 글 전반적인 호흡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런던에서의 이야기는… 제가 이해력이 딸려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읽기가 버거웠습니다. 퍽퍽한 빵을 꾸역꾸역 밀어넣다가 갑자기 끝나는 느낌이었어요. 일단 한 명의 독자로서 제가 느낀 바를 가감없이 쓰면,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작가님!).

 

1. 베이커, 대체 너란 놈은…

우선 글 전반적으로 포진된, 심혈을 기울였음이 느껴지는 디테일한 서술들 덕분에 분위기는 상당히 사실적으로 느껴집니다. 다락방에 콘센트가 없어 청소기 대신 물걸레로 청소하거나, 빈속에 고형식을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어 천천히 먹는다던가 하는 디테일이요. 노력으로 쌓아올린 실력이든, 원래 상상력이 풍부하신 것이든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도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현실감은 등장인물들이 의해 파괴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살인사건을 접한 후 주인공 베이커의 행동을 봅시다. 그의 행동거지는, 현실이었다면 긴장감 넘쳤을 상황이 작품에서는 이상하게 흐지부지된 듯한, 애매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베이커는 경찰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근데 영화 같은 데 보면 취조실에서 밥도 주던데요.”

이전까지는 연인의 유산을 쓰는 것조차 꺼려하고, 헉슬리가 보상을 준다는데도 ‘타인의 절실함을 빌미로 돈 뜯을 생각은 없다’며 거절하면서 (사실 베이커 자신도 병원비 때문에 절실한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름의 도덕관념을 보여주던 주인공이, 갑자기 살인 사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이코패스 내지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목표를 위해 사람을 죽이는 괴한이, 그것도 CCTV에도 찍히지 않는 유령같은 존재가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일반인이라면 두려움을 느끼고 발을 빼고 싶어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지 않을 용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헉슬리에게 연락해서 신변의 안전부터 확보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상자의 자료를 누군가가 훔쳐갔다는 것을 알고도 ‘이거 잘만 굴리면 스토리 괜찮겠는데?’라며 태연하게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베이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었습니다.

‘이보세요? 지금 당신 집이 도둑질을 당했다구요!’

물론 작중에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다 보니 화자가 이에 무뎌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이 각박한 세상에서 최후의 보금자리인 내 집에 누군가가 마음대로 침입했습니다.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만큼, 그가 마음만 먹으면 다시 내 집을 찾아와 위해를 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 자체로 충분히 공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자, 계속해서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레미 헤이즐과의 대화 끝에, 베이커는 알렉스 헤머즐리가 자료를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무단 침입하기로 결심하는데요.

여기서 저는 베이커 씨가 목숨이 아홉개 쯤 되는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호기심만 넘치는 캐릭터를 싫어해요. 쥬라기공원 같은 영화에서, 꼭 하지 말라는 걸 기어코 해서 스스로를 (또는 다른 사람들까지도) 위험에 빠뜨리는 발암 캐릭터가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순간 베이커와 연결되어 있던 감정이입의 줄을 놓아버렸습니다.

‘네, 당신은 죽으러 가기로 했군요. 안녕 바이바이.’ 하면서요.

‘접착제’라고도 하죠. 주인공이 적과 대결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는, 그리고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보상이라곤 그저 헉슬리를 도와 밥 한 번 먹는 것 뿐인데, 거기에 목숨을 거는 것이 타당할까요. 적어도 헉슬리와 함께 가야지요. 주인공은 그냥 시종일관 태평합니다. 문을 잠그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어지간한 사람 이상의 강심장이에요.

사실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베이커가 헤머즐리의 집을 찾아간 이유입니다. 날고 기는 범인들도 못 찾은 자료를 일반인에 불과한 베이커가 어떻게 찾아낸 생각을 한 걸까요. 게다가 그 자료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말이에요.

이와 더불어, 조연 캐릭터들의 경우에도 영혼이 빠진 채 대본에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령 의문의 여자는 왜 진작에 베이커의 집으로 찾아와 그를 고문하지 않았나요? 집에 들어와 조용히 박스를 털어간 것을 보면 언제든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 없이, 그냥 짜여진 대로만 움직이는 인형 같았어요.

 

2. 겹치고 겹치는 우연이니?

이야기의 진행이 다소 과하게 우연에 기대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는 극적인 연출을 위해서일수도 있겠지만, 자주 발생하다보니 그 약빨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알바를 하고 있는 베이커에게 강도가 찾아왔는데, 하필 그 때 변호사가 나타나 구해줍니다. 헤이즐의 사무실에서 시체를 먼저 발견한 것은, 사무실 주인이 아니라 하필 그 타이밍에 찾아온 베이커입니다. 그리고 그는 비어있는 헤이즐리의 집을 몰래 찾아갔는데 하필 그 때 찾아온 두 명의 괴한과 마주칩니다. 아무리 아홉수라는 복선을 깔아두긴 했지만, 우연에 의지하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헉슬리의 등장은 그나마 사진에 내장된 gps를 보고 온 것이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녀의 등장도 우연적인 면이 짙은 편입니다. 사진으로 베이커의 위치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가 위험에 빠졌는지는 알 길이 없었으니까요. 별 이유 없이 그냥 갑자기 베이커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 또한 우연이겠죠.

 

3. 모든것이 허무해지는 결말

진부한 전개를 피하려고 하신 것인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뭔가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회수되지 않은 복선도 그렇습니다. 레미 헤이즐 조교수와 베이커는 무슨 관계였나요? 레미가 집에 찾아와 말하는 투를 보면, 5분 내에 나온다는 베이커에게 시간을 재겠다고 하거나 자료를 옮기는 일을 당연히 도와주셔야 한다고 하는 등 고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상식적인 매너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초면에 이럴 리는 없으니 구면인 것은 분명한데, 베이커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혹시 ‘은사와 은사’에 나오나요?) 그리고 베이커는 왜, 그리고 어떻게 헤머즐리의 꿈을 꿨나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결이 있었던 걸까요.

레미 헤이즐이 리스트를 인쇄한 시점에 다락방의 상자는 애들린의 리스트에서 빠져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작품 내에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요? 그냥 실수로 빠뜨린 건가요? 그럼 그 여자는 어떻게 알고 리스트에도 없는 그 자료를 훔쳐간 거죠?

 

4. 시점의 변화
헉슬리가 병원에 찾아오는 부분에서, 해당 회차는 아래와 같이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그것은 논리보다 앞서 펼쳐지는 직감이었다. 헉슬리는 본능적으로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했다.

이후로도 계속 헉슬리의 입장에서 서술됩니다. 1인칭 화자인 ‘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헉슬리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은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지금까지의 전개에서 벗어나 제 3의 이야기가 시작된 건가 싶어서요.

사실 여기서부터 화자 베이커와의 대화가 시작되는 부분까지는 전부 불필요한 느낌입니다. 정 정보 전달이 필요했다면, 대화로 자연스럽게 설명해서 시점의 혼란을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5. 사족처럼 느껴지는 매력 포인트들

헉슬리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게 악수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은 나머지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았지만 악수하듯 흔들지는 않았다. 대뜸 헉슬리가 폭소했다.

“악수하자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 달라는 거였는데.”

“…잘 부탁한다고 말하면서 손을 내민다면 누구라도 악수하자는 뜻으로 알 거라고. 그건 그렇고, 스마트폰을 병실에 두고 왔는데. 노트랑 펜 있으면 내 번호라도 적어가는 게?”

“평상시에 노트랑 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어.갤럭시 노트라면 또 모를까. 그냥 내 폰에 번호 찍어줘.”

이러한 귀여운 개그 장면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괜히 이야기에 대한 집중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핸드폰이 없는 것이 뭔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도 아닌 것 같구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저 부분을 통째로 들어내고 ‘그녀는 연락처를 받고 돌아갔다.’ 라고만 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동굴 너머에 연못이 있는 등, 흥미롭게 설정된 세계관은 분명 매력적이었습니다. 연못 위에서의 광경은 신비로움을 만끽하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캐릭터… 그 놈의 캐릭터가 아무래도 아쉽네요…

뼈 님은 이미 브릿G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리뷰도)을 보여주고 계시는 분이지요. 앞으로도 슬럼프 없이 좋은 작품을 많이 보여주시길 기원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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