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이미지를 배달해드립니다 <마법사의 심부름> 감상

대상작품: 마법사의 심부름 (작가: 은진아, 작품정보)
리뷰어: 하얀소나기, 8시간전, 조회 3

어쩌면 ‘판타지(Fantasy)’는 인식하는 것보다 이미지 소모가 큰 장르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평가에 대해 선뜻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판타지(Fantasy)’는 말 그대로 ‘환상’을 주제로 한 장르입니다.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다루며, 현실에 함몰된 이야기에 틀을 깨는 것에 목적이 있는 장르죠. 그런데 ‘환상’에 이미지 소모가 크다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요? 이 ‘환상’은 그 무궁무진한 이미지로 승부를 거는 장르가 아니던가요.

 

제 개인적으로 환상성에 기반 한 이미지들이 소모되고 있는 흐름을 통틀어 ‘환상성의 정형화’라는 단어로 설명하곤 합니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결코 소모되지 않는 상상력을 무기로 삼는다는 기초적인 상식에 비해, 그 상상력이 고착화되며 대중적으로 소모되는 이미지 또한 정형화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환상성을 다룬 이야기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넘어, 그 비슷한 이야기들 자체가 환상성의 이미지를 뒤바꿨다는 아이러니도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세’를 다룬 이야기는 그 정형화가 심한 편에 속합니다. 당장 영화로는 ‘반지의 제왕’ 같은 신화적인 세상을 제시했고, 게임으로는 ‘드래곤퀘스트’ 또는 ‘파이널판타지’ 같은 작품들이 RPG라는 장르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현재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한때는 기사들이 칼을 휘두르고, 마법사들이 빛을 밝히고, 인간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대상에 다가가는 이야기에 눈빛이 형형했지만, 지금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 되어 예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이 돌아오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판타지’라는 장르에 애정을 가진 저로서는, 그 고착화 된 이미지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모두가 진부해졌다고 혀를 차는 그 장르에서 인상적인 이미지를 찾아다니는 과정은, 풍경이 익숙한 모래사장에서 빛깔이 예쁜 조개를 찾아다니는 소소한 재미가 있죠. 이번에 읽은 <마법사의 심부름>은 그 빛깔이 제법 예쁘장한 편입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마법사’라는 존재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후드를 둘러쓰고 길을 재촉하다가, 잠깐의 농담으로 숨을 달래는 그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인간’의 모습입니다. 더위를 못 이기겠다며 밤까지 기다리자고 투덜거리는 모습은, 이들이 ‘마법’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움켜쥔 존재들이 아닌, 이 세상을 바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아 있어 숨이 간지러워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 짧은 감상만 보면 우리가 바라는 ‘환상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무언가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 판타지 세계를 기대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가장 심심하게 배신할 수 있는 작품처럼도 읽히죠. 하지만 제가 앞서 말했듯, 이 작품을 읽고 인상이 좋았던 것은, 이 마법사들이 만들어주는 몇 가지 ‘이미지’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가가 제시하는 ‘마법’의 이미지입니다. 본인이 음치라며 너스레를 떠는 친구에게 다가가 마법의 목걸이를 걸어주는 장면을 봐볼까요?

 

 

전체적으로 빛깔이 따뜻하고 또 신비로운 작품입니다. 물론 제가 작품의 서사보다 이미지 그 자체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 자체의 서사가 앞뒤로 공백이 많은 편에 속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실제로 어들의 이유는 대화에서 짐작할 수 있는 친근함이 전부이며, ‘오루스’라는 새의 깃털 또한 그 용도를 끝까지 모호하게 남겨두는 것이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은 연작의 일부분으로 추정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 자체에서 느껴지는 ‘색’이 인상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좋은 소설의 요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개성 있는 문체, 탄탄한 서사, 매력적인 인물들이 그러하죠. 더 나아가, 그 작품을 읽고 남는 여운의 향기가 어떠한지 또한 분명 중요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