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을 위한 열린 공간 비평

대상작품: 증명된 사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7년 8월, 조회 154

각 장르는 그 장르만의 미덕이 있습니다. 호러가 가지는 최고의 미덕은 뭘까요? 책을 다 덮고 나서도 계속해서 나오는 개운치 못함이 그 미덕이 아닐까요?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 보고도 놀라야 합니다. 그렇기에 호러는 의미가 있겠죠.

그런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 보고도 놀라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바로 자라를 상상하는 그 힘이 필요하겠죠. 솥뚜껑이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상상력이요. 그런 상상력이 뛰놀 열린 공간을 제공해 주는게 호러의 미덕일 것입니다.

자라를 위한 솥뚜껑과 같이 침대 밑에 괴물을 위해선 어두컴컴한 침대 밑이 필요하고 프레디를 위해선 텅 빈 꿈 속이 필요하고 뭐 그런 것이지요. 다른 장르는 이렇게 빈 공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SF라면 철저하게 이 빈 공간을 과학으로 체울거고 판타지라면 상상력으로 로맨스라면 사랑으로 매우겠지만, 호러 작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죠. 그냥 음흉하게 웃으면서 한마디 할 뿐입니다. ‘상상해봐.’

단편 ‘증명된 사실’ 에서는 영혼이 실존한다고 못을 박고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는 아주 조용히 이 영혼이 죽어서 갈 곳을 독자들에게 제시할 뿐이에요. 그곳은 신성하지도, 유쾌하지도, 심지어 괴롭지도 않은 곳입니다. 독자들이 잘 모르는 곳이고, 아마 작가도 잘 모르는 곳일 거에요. 허공입니다. 우주라고도 부르지만 본질적으로 텅 빈 공간이죠.

독자는 영혼과 함께 이 텅 빈 허공에 도달합니다. 맨 처음에는 낭만적으로 보는 것도 가능해요. 그 다음에는요? 죠죠 드립같은걸 떠올려 보겠죠. 궁극생명체 카즈처럼 생각을 멈추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우리의 유쾌함과 낭만은 우주를 채우기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그 결과는 우주를 가득 메우는 압도적인 공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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